전기차 배터리 영업비밀 유출여부를 놓고 소송전에 돌입한 LG화학(051910)SK이노베이션(096770)이 이번에는 소송으로 인한 기술유출 가능성으로 대립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배터리 핵심기술이 담긴 자료가 로펌과 미국 법원에 제출되어 경쟁국으로 유출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LG화학은 "외부로 유출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맞서고 있다. 두 회사가 소송을 위해 관련 기술 자료를 해외로 보내려면 정부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정부가 이를 승인해줄 지도 주목된다.

LG화학은 지난달 29일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와 델라웨어 지방법원에 "SK이노베이션이 2017년부터 2년간 76명의 핵심인력을 빼가는 등 영업 비밀을 침해했다"며 소송을 냈다. SK이노베이션은 "공개채용을 통해 자발적으로 지원한 경력직 후보자들 중에서 채용을 해왔다"며 반박했다.

전기차 배터리 소송을 위해 LG화학은 세계 최대 규모 로펌인 덴톤스를 선임했다. SK이노베이션은 미국 대형 로펌인 코빙턴 앤드 벌링을 법률 대리인으로 선임해 맞서고 있다.

LG화학 직원들이 오창공장에서 생산된 중대형 리튬이온 배터리를 살펴보고 있다.

◇ "배터리 기술 입증 위해 해외 보내려면 정부 승인 받아야"

문제는 소송이 진행되면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이 정부 검토를 거쳐 영업비밀 관련 자료를 로펌과 법원에 제출해야한다는 점이다. 현재는 LG화학이 정부의 승인을 받기 위한 절차를 밟은 상황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SK이노베이션과 LG화학의 전기차 배터리 기술은 국가 핵심 기술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어서 관련 정보(기술)를 ITC 등에 제출(수출)하려면 정부 검토를 받아야 한다"며 "신청이 들어오면 정부 부처로 구성된 산업기술보호위원회가 국익을 고려해 심사한다"고 말했다.

기술 개발 과정에서 회사가 정부 보조금을 지급받았다면 기술을 수출하겠다는 신청서를 제출하고 국가 승인을 받아야 한다. 보조금을 받지 않은 경우에도 수출 신고 과정은 거쳐 산업부의 검토를 받아야 한다. 단, 국가핵심기술에 해당하는 기술은 신고를 한다고 100% 수출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최근 산업통상자원부와 국가정보원, 특허청은 SK이노베이션과 LG화학 소송과 관련해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법’ 등에 따라 기술 유출 가능 여부를 심의하기 위해 회의를 열기도 했다. 각 사가 기술수출에 대한 신고 및 승인을 구하기 전에 상황을 파악해본 것이다.

최태원(가운데) SK그룹 회장이 이달 19일 충남 서산에 있는 SK이노베이션 전기차 배터리 공장에서 현장 직원들과 함께 설비를 둘러보고 있다.

◇ LG화학 "유출 가능성 없어" vs SK이노 "기술 유출 위험"

LG화학은 소송과정에서 각사의 영업비밀이 유출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는 입장이다.

LG화학은 "제출 자료를 모두 ‘영업비밀정보(Confidential Business Information)’로 제출할 계획이라 법원의 강력한 ’비밀보호명령’으로 관리되어 정보가 외부로 유출될 위험성이 전혀 없다"며 "한국기업을 포함해 전세계 유수의 기업들이 미국에서 소송을 진행했지만, 증거자료나 주요 기술이 외부로 유출된 사례가 없었다는 점은 이를 뒷받침해 준다"고 했다.

증거개시절차 과정에서 영업비밀 관련 자료의 경우에는 법원의 강력한 ‘비밀보호명령(Protective Order)’을 통해 상대방 당사자나 제 3자에게는 열람, 공개가 금지되고 해당법원과 소송 대리인(접근 인원, 로그 기록 관리) 등 법에 의해 허가된 자에게 소송목적에 한해서만 열람이 한정되는 보호조치를 받게 된다는 설명이다. 법원의 ‘비밀보호명령’을 위반한 경우에는 위반 내용에 따라 중범죄에 해당되는 형사처벌까지 받을 수 있으며, 영업비밀 보호법 위반에 의한 별도 처벌까지도 가능한다고 한다.

하지만 SK이노베이션은 "LG화학이 주장하는 인재 유출, 기술탈취는 한국법인에서 일어난 일이라 미국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기술유출 우려로 위험한 일"이라며 "국제적 망신이 될 수 있다"고 했다.

LG화학은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소송을 진행하게 된 이유 중의 하나는 미국 ITC와 연방지방법원이 소송 과정에 강력한 ‘증거개시(Discovery)절차’를 두어 증거 은폐가 어렵고,이를 위반 시 소송 결과에도 큰 영향을 주는 제재로 이어지기 때문"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