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얼 세대(1980~2000년대 출생한 인구 집단)는 자동차를 소유하기보다 공유하길 원합니다. 제 딸(대학생)은 미국에서 싼타페를 샀는데, 아들(대학생)은 운전면허 딸 생각을 안 합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이 22일 세계 3대 사모펀드인 칼라일그룹의 이규성 공동대표와 가진 대담에서 이같이 말하자 청중은 큰 웃음을 터뜨렸다. 이 대표가 "차량 소유에 대한 젊은 층의 생각이 바뀌고 있다"고 화두를 던진 후다. 정 부회장은 "우리 비즈니스를 서비스 부문으로 전환한다면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할아버지(고 정주영 명예회장)와 함께 살며 새벽에 아침식사를 함께 했는데, 그때 수차례 말씀하셨던 '시류(時流)를 따라야 한다'는 말의 의미를 이제 조금 알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의선(왼쪽)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이 이규성 사모펀드 칼라일그룹 공동대표와 22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열린 금융 포럼 ‘2019 서울 투자자 콘퍼런스’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는 이날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칼라일이 주최한 '2019 서울 투자자 콘퍼런스'에 초청돼 이규성 대표와 30분간 영어로 대담했다. 180여 명의 국내 연기금·은행·보험·증권·자산운용사 CEO(최고경영자)와 CIO(투자책임자) 등 거액을 굴리는 '큰손'들이 모인 자리에서다. 현대차 관계자는 "평소 교류가 있던 이규성 대표의 제안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한국계 미국인으로 글로벌 금융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한국계로 꼽힌다. 자동차 산업 경영자인 정 수석부회장이 금융포럼에 참석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각본 없이 현대차의 비전과 변화를 얘기하자 분위기는 금세 화기애애해졌다.

정의선 "현대차, 고객 중심으로 돌아가는 중"

정의선 부회장은 이 대표가 "현대차그룹의 전략적 우선순위가 무엇인가"라고 묻자 주저 없이 '고객'이라고 답했다. 그는 "고객 중심으로 회귀가 필요하다"며 "모든 직원이 고객을 중심으로 의사 결정을 하도록 하고 있다"고 했다. 아버지인 정몽구 회장이 '품질 경영'에 집중했다면, 정의선 부회장은 '고객 경영'을 강조하고 있다. 작년 말 해외법인장 회의에서는 "고객들이 어떻게 하면 우리 차를 사줄까만 생각했던 초심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그는 가장 큰 도전 과제를 묻자 "미래 트렌드에 대응하는 것"이라면서, "파트너십(협력)을 도모하는 문화를 조성하는 것이 중요한 미래 성공 요소"라고 했다. 최근 동남아 차량공유업체 그랩, 고성능 전기차업체 리막 등 다양한 기술 기업에 투자를 단행하고 있는 현대차의 변화를 염두에 둔 것이다. 그는 또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님의 리더십은 직원들이 일사불란하게 따르는 강력한 리더십이었다"며 "지금은 직원들과 아이디어를 나누려고 한다. 앞으로 우리는 스타트업처럼 더 자율적인 문화로 변할 것"이라고 했다.

◇금융권과 소통 강화… 정의선의 리더십 알리기 '성공적'

사실 정 부회장 입장에선 금융권과 소통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동안 현대차 주가가 많이 떨어져 투자자들의 불만이 쌓여 있었고, 지난해 추진하다 금융권의 지지 부족으로 보류됐던 지배구조 개편 작업도 남아 있다. 여기에 현대차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개발 비용 3조7000억원 중 절반을 외부에서 조달하기로 해 투자 유치도 필요하다.

그는 이날 지배구조 개편과 관련해 "투자자들과 그룹 모두가 만족하기 위해, 최대한 많은 의견을 경청할 것"이라며 "여러 옵션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GBC와 관련해선 "현대차그룹은 핵심 사업인 자동차 분야에 주력하기 위해 관심을 가진 투자자를 확보하려고 한다"며 "좋은 투자자들과 공동 개발해 수익을 내고 현대차그룹 핵심 사업에 재투입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