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어음 사업자들, 결과 기다리느라 적극적 사업 못해
영업정지까지 거론하다 과태료만 부과…"혼란 부채질"

최태원 SK그룹 회장에 대한 불법 개인대출 혐의로 영업정지, 임직원 직무정지 등의 중징계를 받을 것으로 예상됐던 한국투자증권(한투)이 과태료 5000만원의 '경징계'를 받으면서 금융감독원이 머쓱해지게 됐다. 증권업계에서는 금감원이 한투 제재건에 대해 중징계를 예고하면서 수개월을 끌어 혼란을 부채질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투자증권 외에 발행어음 사업권이 있는 NH투자증권(005940)이나 다른 준비업체들은 한투 제재를 계기로 SPC(특수목적회사)에 대한 대출 자체가 막힐지 모른다고 우려해 적극적으로 사업을 검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금감원은 지난해 5월 한투 종합검사에 돌입했고, 12월 20일 제재심 이후 사전통지를 통해 한투에 일부 영업정지, 대표이사 직무정지 등을 예고했다. 한투는 발행어음을 발행해 SK실트론 지분 19.4%를 인수한 SPC인 '키스아이비제16차'의 전자단기사채를 인수했는데, 이 SPC가 최태원 회장과 총수익스와프(TRS) 계약을 맺고 있다는 점이 문제였다. 주식 소유권은 SPC에 있지만 수익과 손실이 최 회장에게 귀속되는 구조라 한투가 사실상 최 회장 개인에게 돈을 빌려준 셈이라고 금감원은 봤다. 한투는 "개인에 대한 지원이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법에 명시돼 있지 않기 때문에 불법은 아니다"라고 맞서왔다.

◇5개월간 진통…결국 경징계로 마무리

아직 금융위 의결이 남긴 했지만, 증권선물위원회 논의 결과 한투 징계는 경징계로 끝났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지원건만 놓고 보면 과태료 5000만원만 부과됐고, 개인 징계도 주의 및 감봉으로 끝났다.

증선위에 앞서 금감원장은 관련자 6명에게 주의 및 감봉을 통보했다. 개인 제재는 금감원장 결정 사항이며, 주의는 '자율 개선'을 요구하는 징계라 경징계 중에서도 낮은 징계로 분류된다.

증선위에서는 최태원 회장에 대한 한투 대출이 개인 대출이 아니라는 소수 의견도 있었다. 증선위는 보도자료를 통해 "일부 위원은 신용공여(대출) 해석과 관련해 법령 형식상 지나친 확대해석은 곤란하고, TRS 계약 주체로서 SPC의 존재가 인정되기 때문에 개인대출로 보기 어렵다는 소수의견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금감원은 지난해말 중징계를 예고했지만, 제재심에서조차 논리가 빈약하다는 지적을 받으면서 수위가 점차 낮아졌다. 제재심은 지난해 12월 20일과 올해 1월 10일 열렸다가 논리 보강을 위해 4월 3일까지 3달 가까이 법무실 검토를 받았다. 4월 3일 제재심에서 이미 과태료 5000만원, 임직원 주의 및 감봉이 결정돼 금감원은 체면을 구겼던 상황이다. 증선위에서도 난항이 거듭됐다. 한투 제재 안건은 지난 4월 19일, 5월 8일에 이어 전날까지 3차례 논의됐다.

◇업계 "금감원이 혼란 부채질"

업계 일각에서는 금감원이 선전포고를 너무 요란하게 하는 바람에 사업자들이 혼란을 겪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발행어음 자금으로 SPC와 거래했다간 한투처럼 징계를 받을 수 있다는 염려가 대표적이다.

이는 증선위도 일부 인정하고 있다. 증선위는 보도자료 부대의견을 통해 "이번 한투 제재가 SPC를 활용한 정상적인 거래와 위험 헤지 등을 위한 TRS 거래를 제약해서는 안될 것", " 발행어음 자금으로 SPC 거래를 금지하는 것은 아님" 등을 명시했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초반에 너무 중징계를 밀고 나가는 바람에 발행어음으로 조달한 자금을 어디부터 어디까지 쓸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불확실성이 컸다"면서 "이 정도라면 발행어음 라이선스가 필요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증권사 사장이 있었을 정도"라고 했다.

금감원은 제반 사실관계와 회사측 입장 등을 면밀히 따진 뒤 징계수위를 낮춘 것이라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법이 불명확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금감원이라는 조직의 주요 업무가 법을 우회하는 사안을 적발해내는 것이라는 입장도 밝혔다.

금감원 한 관계자는 "SPC나 TRS가 법을 우회하는 수단이 되거나, 발행어음 자금이 대주주 개인의 지배력 확대 수단으로 사용되거나 공정거래법상 부당이득 제공 수단으로 활용되는 것은 엄격히 감독해나갈 예정"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