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일 낮 12시 30분쯤 서울 성수동 이마트 본사 6층 협력사 상담실. 정면 대형 전광판에 이마트 구매담당자(buyer)와 제조·협력회사 납품 담당자들의 미팅 일정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블루보틀코리아' 같은 유력 브랜드부터 왕만두·찐빵 맛집, 중소 가전업체 등 회의 일정이 잡힌 곳이 모두 204개에 달했다. 로비에서 만난 식품업체 관계자는 "대형마트에서 신규 코드 하나 따내는 일('입점'을 의미)이 쉬운 줄 아느냐"며 "까다로운 절차를 뚫는 기업은 100곳 중 1~2곳에 불과하다"고 했다.
#2. 30분 뒤, 이마트 본사에서 특별한 행사가 시작됐다. 처음으로 '오디션' 형식을 빌려 이마트를 포함, 트레이더스·PK마켓·삐에로쑈핑·노브랜드·부츠 등 계열사에 입점할 신규 협력업체를 공개 모집한 것이다. 303개 신청 업체가 이날부터 60곳씩 5일간 부스를 차리고 400여 명의 이마트 임직원·소비자 평가단의 심사를 받게 됐다. 행사장 입구에는 심사위원들이 쓸 서류 결재판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부스 설치와 행사 진행비는 이마트가 부담했다.
콧대 높은 유통 대기업이 스스로 '입점 문턱'을 낮추는 실험에 나섰다. 입점 신청에서 판매까지 걸리는 6~7단계 프로세스를 대폭 줄이고, 심사 기준을 완화하는 '패스트트랙(fast track)'을 도입했다. 시시각각 변하는 소비 트렌드에 민첩하게 대응하지 못하면 온라인몰에 유통의 주도권을 완전히 빼앗길 것이라는 위기의식에서 비롯된 전략이다. 이마트는 지난해 4분기에 이어 올해 1분기까지 연속 어닝쇼크(실적 충격)를 기록했다.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은 74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1.6% 급감했다. 노재악 이마트 상품본부장은 "온·오프라인 유통의 경계가 무너진 시대에 기존 관행에 의존해서는 혁신 상품을 유치할 수 없다"고 했다.
◇어묵떡볶이·부분 안마기·'대박'소시지…대형마트 도전
이날 행사장에선 국수처럼 기다란 어묵을 젓가락으로 먹을 수 있는 '어묵 떡볶이', 소시지 겉면에 코코아 성분으로 '시험 대박' '사랑해' '넌 최고' 같은 글씨를 새긴 '캐릭터 소시지', 소셜미디어에서 인기인 '신체 부위별 안마기'와 체중 조절용 '냉동 닭가슴살' 등이 눈에 띄었다. 대형마트 측에 간절한 눈빛을 보내는 소규모 업체도 있었지만, 이미 온라인 채널의 강자(强者)로 통하는 곳도 보였다. 만화 '뚝딱맨' 캐릭터 장난감으로 입점 신청에 나선 엔터테인먼트사(社) 관계자는 "제품을 만든 뒤 중간 거래상(완구 유통사)을 거쳐 대형마트와 계약을 뚫어야 했던 관례와 달리 직접 납품할 수 있는 통로가 생겨 도전했다"고 했다.
◇혁신 상품 발굴 경쟁 치열
이마트는 이번 '공개 오디션'을 통해 입점 심사에서 판매까지 걸리는 시간이 6개월에서 1개월로 단축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동안 협력업체들이 마트 입점을 '하늘의 별 따기'라고 말했던 까닭은 단계별로 변수가 많아 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홈페이지를 통해 입점 신청을 하면 1차로 개별 구매담당자가 '임의 평가'로 심사 대상을 걸러낸다. 1차 상담 후에는 품질·경영상태 평가가 이어진다. 이후 팀장, 상무 등 직급별 심사를 거쳐 본부장(부사장급) 결재까지 받아야 계약이 성사된다. 이 과정이 통상 6개월 정도 걸렸다.
이런 방식은 유행 주기가 짧고 빠르게 변하는 '스낵 컬처(과자처럼 간편하게 소비하는 문화)' 시대에 걸맞지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미 백화점 업계는 '팝업(pop up·한시 판매) 매장' 형태로 유행 아이템을 발 빠르게 들여와 집객(集客) 효과를 보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이마트는 한날·한시·한곳에서 상품 시연 행사를 열어 20대 사원부터 부사장급 임원이 한꺼번에 '원샷 심사'에 나섰다. 선정된 상품은 오는 7월부터 주요 매장에서 3개월간 시험 판매된 뒤 정식 계약을 맺게 된다.
혁신 상품 발굴 경쟁에 뛰어든 것은 경쟁 마트도 마찬가지다. 홈플러스는 실무자 개개인에 따라 심사 기회가 엇갈리지 않도록 관리 시스템을 만들었다. 지난해부터 거래를 희망하는 개인·법인이 입점 신청을 할 경우 담당자가 3일 안에 답변하고, 상품부문장이 처리 결과를 매일 모니터링하도록 했다. 롯데마트는 창업진흥원·중소기업유통센터와 함께 매달 1회 품평회를 진행하며 발굴 기업에 대해서는 기본 신용등급 요건을 면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