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 밤 9시가 넘은 시각, 중국 베이징 지하철 14호선 왕징난역의 A 출입구 외부. 음식 냄새를 따라가 보니 출입구 바로 옆에서 앞치마를 두른 남성이 팔팔 끓고 있는 기름 냄비에 취두부를 튀기고 있었다. 작은 테이블 하나만 덜렁 놓고 음식을 만들어 파는 길거리 장사다. 주변엔 막 퇴근한 것으로 보이는 젊은 여성 몇이 포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은 음식이 만들어지길 기다리는 동안 코팅된 종이에 그려진 모바일 결제 알리페이와 위챗페이의 QR코드를 휴대전화로 스캔해 음식값 6위안(약 1000원)을 결제했다. 판매자인 남성은 결제가 제대로 됐는지 확인하지도 않고 요리에만 열중했다. 판매자도 구매자도 번거로워 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이 근처에선 또 다른 남성이 바퀴 3개짜리 소형 전동차 위에 기다란 판자를 깔고 파인애플을 깎아 팔고 있었다. 결제는 같은 방식으로 이뤄졌다.

이제 중국에선 모바일 결제 수단이 없으면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현금이나 신용카드를 아예 받지 않고 모바일 결제만 받는 가게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중국 중앙은행 런민은행의 통계에 따르면, 2018년 중국의 모바일 결제 규모는 277조4000억위안(약 4경7757조원)을 기록했다. 2017년 대비 36% 늘었다. 중국 인터넷 관리 기구인 중국인터넷정보센터(CNNIC)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인구의 약 42%인 5억8300만명이 모바일 결제를 썼다. 이들이 모바일 결제를 이용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간편하고 쉽기 때문이다.

올해 1월 서울시 A구의 주민자치위원 B씨는 구청에서 ‘제로페이 모바일 가맹 접수 교육’을 받았다. 상점의 제로페이 가입을 권유하는 교육이다. 한 시간 남짓 교육을 받은 후 그는 가게들을 돌아 다니며 제로페이 가맹점 모집에 나섰다. 10여 개 상점의 주인을 상대로 ‘영업’을 했으나 그중 두 곳만 가입했다. 일주일 후 그의 통장엔 중소기업중앙회 이름으로 5만원이 입금됐다. 가맹점 유치 건당 2만5000원의 수당을 받은 것이다. B씨는 "공무원들이 할당량을 채워야 해 자치구와 동별로 경쟁이 붙었고 통장과 주민자치위원들도 모집책으로 동원됐다"며 "막상 업주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고 말했다.

제로페이는 지난해 12월 서울시가 주도해 출시한 모바일 간편 결제 서비스다. 자영업자들의 신용카드 수수료 부담을 낮춘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카드사의 개입을 없애고 구매자 계좌에서 판매자 계좌로 직접 결제 금액이 빠져나가는 방식이다.

서울시와 중소벤처기업부는 올해 제로페이 홍보 예산으로 98억원을 배정했다. 홍보 효과는 있었을까. 금융감독원이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종석 자유한국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은행권의 제로페이 결제 건수는 6만1790건, 결제액은 13억6000여 만원으로 집계됐다. 월평균 결제 건수는 2만건, 월평균 결제액은 4억5000만원 수준이다. 공무원들조차 제로페이를 외면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쓰는 사람이 없는 데도 서울시와 정부는 제로페이 가맹점 수 늘리기에만 급급한 실정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달 8일 서울 지역 제로페이 가맹점 수가 10만곳을 넘었다며 제로페이가 이제 대세라고 했다.

‘세금 낭비’ ‘관제 페이’ 지적에도 아랑곳없다. 기획재정부는 지난달 24일 추가경정 예산안을 공개하며 제로페이 인프라 확충에 76억원을 추가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소비자들은 왜 제로페이를 쓰라고 하는지, 제로페이를 쓰면 자신에게 무슨 혜택이 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서울시와 정부가 내세운 소득공제 혜택만 봐도 그렇다. 제로페이 사용액의 40%에 소득공제 혜택을 준다고 하는데, 공제율 자체는 신용카드(15%)나 체크카드·현금영수증(30%)보다 높다. 그러나 소득공제 40% 혜택을 모두 챙기려면 제로페이로만 연소득의 25%에 해당하는 금액을 결제해야 한다. 대다수에게는 작지 않은 금액이다.

소비자는 ‘소상공인에게 도움이 된다’는 홍보 문구에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불편하면 바로 돌아선다. 무엇보다 자신에게 쓸모가 있어야 손이 간다. 그게 시장 원리다. 관치가 무조건 통하던 시절은 지나지 않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