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상상하기 어렵겠죠. 곧 애완용 로봇 시장이 열릴 겁니다. 우리는 세계 시장으로 가기 위해 여기 왔습니다. 우리를 세계와 연결해주세요."(토룩)

"매년 지구상에 6억명이 세균에 감염됩니다. 이 소형 레이저로 초고속 박테리아 검출 기술을 갖춘 우리가 지구에서 가장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스타트업입니다."(더.웨이브.톡)

될성부른 벤처를 골라 그들의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현실이 되도록 투자자와 가교(架橋) 역할을 하는 스타트업(초기 벤처기업) 경연 대회 '피치앳팰리스 코리아 1.0'이 제10회 아시아리더십콘퍼런스(ALC)의 대미(大尾)를 장식했다.

15일 오후 서울 신라호텔 다이너스티룸에서 열린 경연에선 17대1의 경쟁을 뚫고 본선에 오른 14개 업체 대표가 수백 명의 투자자 앞에 섰다. 대형 스크린에 'IT'S YOUR TIME(당신의 차례)'이라는 문구가 뜨자 청중이 환호성을 질렀다. 긴장한 젊은 사업가에게 주어진 발표 시간은 똑같이 3분. 1초만 넘어도 수문장 복장을 한 진행원이 나발을 불고, 징을 울려 시간 종료를 알린다. 나발 소리가 날 때면 청중석에선 탄식이 터져 나왔다. 피치앳팰리스 영국 행사에선 왕실 근위병이 대형 나팔을 불어 끝을 알린다.

15일 저녁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10회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의 스타트업 경연대회 ‘피치앳팰리스 코리아1.0’ 행사에서 영국 앤드루 왕자가 경연에 참가한 14개 스타트업 대표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최종 순위를 발표하고 있다.

핀테크, 헬스케어, 농업, 로봇 등 다양한 분야의 사업 아이디어가 모두 발표되자마자, 250여 명의 심사위원은 각자 스마트폰으로 투자하고 싶은 기업 3곳을 클릭했다. 피치앳팰리스를 설립한 영국 앤드루 왕자도 한 표, 투자자를 비롯한 일반 참가자도 공평하게 한 표를 행사했다.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스타트업은 손가락 끝을 귀에 대면 전화 통화를 할 수 있는 신개념 스마트 시곗줄 '시그널'을 내놓은 '이놈들연구소'였다. 삼성전자 사내 벤처 프로그램 C랩이 배출한 스타트업으로, 이미 국내외에서 주목을 받았다.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쉽고 빠르고 싼 해외 송금 서비스를 선보인 핀테크 업체 '모인', 물병 크기의 휴대용 수력발전기를 내세운 '이노마드'가 각각 2위와 3위를 차지했다.

1~3위 업체는 올해 말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글로벌 경선에 참가한다. 1위를 차지한 이놈들연구소 최현철 대표는 "발표자 중 영어도 제일 못했는데 심사위원들이 우리 기술의 미래 가치를 인정해준 것 같다. 영국 본선이 기대된다"고 했다. 헬스케어용 스마트 벨트를 개발한 '웰트', 가정용 인공지능 로봇 업체 '토룩' 등은 아깝게 순위에 들지 못했지만, 청중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앤드루 왕자는 최종 순위 발표를 위해 무대에 올라 "지난 3~4년간 본 아이디어 중 최고였다. 전혀 과장이 아니다"라며 놀라워했다. 그는 "이렇게 좋은 아이디어를 가진 사업가들은 단지 돈이 필요한 게 아니다. 어떤 멘토를 연결해줄 수 있을까, 어떤 네트워크를 만들어줄 수 있을까, 여러 방면에서 도움을 달라"고 호소했다.

피치앳팰리스 코리아 1.0은 예선 단계부터 스타트업 업계에서 큰 화제가 됐다. 애초 피치앳팰리스 영국 본부는 12개 스타트업만 본선에 올릴 예정이었다. 예상을 뛰어넘는 202개 스타트업이 참가하면서 예선 경쟁률이 17대1 수준으로 치솟자 본선 진출 자격을 추가로 줬다.

심사위원 중 한 명인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청년 사업가의 기발한 아이디어에 내내 감탄이 나왔다"면서 "정부 차원에서도 이 간절한 청년들이 꿈을 펼치는 데 더 적극적으로 도와줄 방법을 고민해보겠다"고 말했다. 임영진 신한카드 사장도 "스타트업들이 기술력·창의력을 발현할 수 있는 세계적인 피칭의 장(場)이 국내에서도 마련된 것만으로도 굉장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본선 시상식이 끝난 뒤에는 앤드루 왕자를 비롯한 피치앳팰리스 관계자들과 심사위원, 참가자들이 모두 어울리는 '치맥 파티'가 신라호텔 영빈관 잔디밭에서 열렸다. 피치앳팰리스 참가 기업은 물론, ALC에 참석한 연사들이 한데 모여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축제 마당이었다. 앤드루 왕자는 3위를 차지한 이노마드 박혜린 대표에게 "재생 가능한 소재로 제품을 만들면 더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며 이전 피치앳팰리스에서 선발된 업체들을 소개해주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