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금리 시대에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개인들이 증권사 랩어카운트(일임형 종합자산관리계좌)로 몰려가고 있다. 랩어카운트란 증권사가 고객의 돈을 대신 굴려주고 수익을 돌려주는 상품이다. 랩어카운트는 다양한 유형의 자산을 고객 입맛에 맞춰 운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최근에는 국내 주식에서 벗어나 선진국 우량 주식이나 채권·부동산 등과 같은 방어형 대체 투자 상품까지 영역을 넓히면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이 같은 변신에 힘입어 자금 유입에도 속도가 붙고 있다. 15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기준 랩어카운트 잔액은 116조6371억원이다. 올 들어서만 4조1726억원의 자금이 유입됐다.

박진환 한국투자증권 랩운용부서장은 "자문사 랩이 지난 2011년을 정점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구가했지만 쏠림 투자에 따른 부작용으로 운용 성과가 저조해지자 결국 외면당했던 일이 있었다"며 "그러나 증권사들이 천수답 방식의 국내 시장에서 탈피해 해외시장 투자형과 대안형 상품들을 내놓으면서 신규 자금이 유입되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시장에 눈 돌린 랩 속속

지난달 KB증권은 홍콩계 운용사(클리어워터)의 아시아 지역 부동산의 선순위 담보 대출 펀드를 랩어카운트에 담아 판매해 150억원의 자금을 모았다. 호주·뉴질랜드 등지에서 지어지고 있는 대형 빌딩을 담보로 잡고 자금을 대출해 준 뒤 투자자들에게 이자 수익을 나눠주는 구조다. 최저 가입액이 1억원이고 만기가 3년6개월로 길었지만, 연 수익률이 7%로 예상되자 개인들의 여유 자금이 몰렸다. KB증권은 조만간 2호 상품을 출시한다.

미래에셋대우가 최근 출시한 글로벌X포트폴리오 랩은 인공지능(AI)이나 핀테크와 같은 4차 산업혁명 관련 종목의 ETF(상장지수펀드)에 투자한다. 주가가 다소 출렁거리더라도 성장성이 높은 혁신 산업에 투자하겠다는 투자자 자금이 한 달 동안 100억원 몰렸다.

신영증권의 플랜업 Wide Moat 20랩은 워런 버핏의 투자 철학(경제적 해자·안전 마진)을 적용해서 20개 내외 선진국 주식을 골라 투자하는 재밌는 상품이다. 최근 6개월 성과는 18.2%로 같은 기간 코스피 수익률(9.4%)을 압도한다. 삼성증권은 미국의 대형 운용사인 루미스 세일즈와 손잡고 우량 성장 기업에 장기 투자하는 '올캡그로스랩'을 판매 중이다.

신한금융투자는 미국 증시에 상장된 ETF에 투자하는 '쿼터백 글로벌 로보랩' 상품을 선보였다. 컴퓨터 시스템으로 선정한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종목을 고른다. 한국투자증권은 미국에 신규 상장되는 종목 중심으로 투자하는 '한국투자유니콘랩'을 준비 중이다.

◇방어형 투자한다면 채권랩

미·중 무역 분쟁으로 증시가 불안해지자 안정적인 자금 운용처를 고민하는 투자자들을 겨냥한 채권형 랩도 각광받고 있다. 원래 채권형 랩은 은행과 증권이 결합해 문을 여는 복합 점포 열풍 속에 기획된 상품이었다. 예금과 적금 같은 안전 자산만 고집하는 은행 고객을 증권사 투자자로 전환시키기 위해서였다.

신한금융투자의 '스마트 전단채랩'은 2016년 출시 이후 꾸준히 팔리는 스테디셀러로 지난달 말 기준으로 잔액이 1조3733억원에 달한다. 전자단기사채(전단채)란 기업이 단기 자금 조달을 목적으로 발행하는 만기 1년 이하의 채권이다. A2등급 이상인 전단채만 편입해서 안정성을 추구한다. 한국투자증권의 '단기채 플러스랩'은 3개월 만기 상품으로 연 2.5%(세전) 수익을 목표로 한다. 우량 채권이나 기업어음(CP), 전단채 등으로 운용해서 예금 금리보다 높은 성과를 노린다. 유안타증권은 단기채권형랩, NH투자증권은 단기채스텝업랩으로 예금 대비 플러스 알파 수익을 원하는 투자자 자금을 모으고 있다.

오경호 KB증권 랩운용부 팀장은 "랩은 실적 배당형 상품이므로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다"며 "만기까지 중도 환매가 불가하거나 혹은 환매할 때 수수료가 붙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여유 자금으로 가입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랩어카운트(Wrap Account)

감싼다는 뜻의 '랩(wrap)'과 계좌를 의미하는 '어카운트(account)'를 합친 말이다. 증권사 전문가가 고객이 맡긴 돈을 주식·채권·부동산 등 다양한 자산에 투자한 뒤 사고팔아 수익을 내는 종합자산관리 계좌를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