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금융지주가 옛 외환은행 대주주였던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에서 제기한 1조6000억원짜리 손해배상 소송에서 100% 승소해 한 푼도 물지 않게 됐다.

하나금융은 15일 "사건을 맡은 국제상공회의소(ICC) 산하 국제중재재판소에서 완전 승소했다는 공문을 받았다"고 발표했다. 금융권에서는 사건 당사자가 한발씩 양보하는 형태로 마무리되는 일이 많은 국제 중재에서 한쪽이 '완승'을 거둔 것은 이례적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이 사건이 주목받는 이유는 론스타가 우리나라 정부를 상대로 낸 5조5000억원짜리 소송의 전초전(前哨戰)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론스타-정부 소송을 맡은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는 이르면 올해 9~10월 결론을 낼 것으로 알려졌다.

론스타는 지난 2003년 외환은행을 인수한 이후 2012년 하나금융에 매각하는 과정에서 "정부 개입으로 매각이 지연돼 손해를 봤다"고 주장하고 있다. 2012년에 한국 정부를 상대로 먼저 소송을 제기했고, 4년 뒤인 2016년에는 하나금융에 대해 소송을 냈다. 두 소송은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이라는 하나의 사건에 뿌리를 둔 만큼 금융계에선 하나금융의 완승이 대(對)정부 소송에 영향을 끼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매각에 정부 개입했다"는 론스타 주장 인정 안 돼

론스타와 하나금융 간 분쟁의 핵심 쟁점은 '하나금융이 정부 핑계를 대고 외환은행 인수 대금을 깎았는지 여부'였다. 론스타는 2012년 1월 외환은행을 3조9157억원을 받고 하나금융에 넘겼다. 하지만 론스타는 2016년 싱가포르에 있는 국제상공회의소에 "하나금융이 매각가가 높으면 정부 승인을 받기 힘들다고 했다"며 소송을 냈다. 정부 핑계를 댄 하나금융 때문에 5000억원을 깎아줘 손해를 봤다는 것이다.

2010년 외환은행 매매 계약을 맺는 하나금융 회장과 론스타 회장 - 지난 2010년 11월 영국 런던 시내의 한 호텔에서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의 존 그레이컨 회장과 당시 하나금융지주 김승유 회장이 외환은행 주식 매매 계약을 맺은 뒤 악수를 하고 있다. 그러나 론스타는 2016년 "하나금융이 매각가가 높으면 정부 승인을 받기 힘들다고 해 매각 때 손해를 봤다"며 하나금융을 상대로 1조6000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고, 15일 국제중재재판소는 하나금융이 100% 승소했다는 판정을 내렸다.

중재재판소는 론스타의 주장을 일절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날 하나금융에 따르면 재판소는 론스타의 주장에 대해 "론스타는 하나금융이 매각 가격을 깎아주지 않으면 금융 당국의 매각 승인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협박했다고 주장하지만, 하나금융에 속은 게 아니라 스스로 매각 가격을 낮추지 않으면 승인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믿었다"고 밝혔다. 또 "하나금융은 론스타와 충분한 협의를 하는 등 계약을 위반하지도 않았다"며 오히려 하나금융에 이번 중재 판정과 관련해 쓴 변호사 비용 등을 물어주라고 했다.

하나금융 완승에도 정부 부담은 여전

금융권에서는 하나금융의 완승이 정부와 론스타의 싸움에 끼칠 영향에 더 주목한다. 두 갈래의 해석이 있다. 우선 론스타 주장의 신빙성이 낮다는 결정이 한국 정부 측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정부-론스타 사건을 맡은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도 깊은 관련이 있는 이번 결정을 면밀히 살필 것이기 때문에 정부의 배상 부담을 줄이는 요소가 된다는 뜻이다. 정부 측 희망 사항이기도 하다. 금융위 관계자도 이날 "원칙적으로 하나금융 소송과 정부 소송은 쟁점이나 판정하는 곳도 완전히 다른 데다 독립적이어서 서로 상관이 없다"면서도 "론스타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 정부 소송에 최소한 불리한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대 해석도 있다. 중재재판소가 정부 개입 여부에 대해 직접 판단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부가 안심할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금융이 승소해 책임을 면하게 된 것이 오히려 정부 부담을 키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한 국가의 정부와 민간 기업이 분쟁을 벌여 국제 중재를 받을 때, 상대적으로 힘이 센 정부보다는 기업에 좀 더 유리하게 결정하는 경향이 있다는 시각이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결과적으로 론스타가 피해를 배상받을 곳은 한국 정부밖에 없게 된 상황이라 정부가 하나금융처럼 한 푼도 내지 않고 이길 확률은 높지 않다"고 말했다.

또 론스타가 정부를 상대로 낸 소송은 매각이 지연되면서 본 손해뿐만 아니라, 외환은행 매각 과정에서 부당하게 세금을 냈다는 주장도 포함돼 있다. 하나금융 사건에서 론스타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더라도 세금 문제에서 정부가 덜미를 잡힐 수 있는 것이다.

정부-론스타에 대한 ICSID 판정 결과는 이르면 9~10월쯤 공개될 것이란 예상이 많다. 만약 정부 책임이 인정돼 배상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 정치권과 정부, 금융권 안팎에서 책임 공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최악의 경우 조(兆) 단위를 넘길 수 있는 배상액을 국민 세금으로 메워야 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와 매각, 각종 소송 제기가 김대중 정부부터 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정부까지 이어지고 있어 파장이 적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