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기가 좋으면 한국, 중국 등 수출 주도형 국가들의 경기까지 좋아지던 시대는 끝났습니다. 미국의 혁신을 이끄는 기업에 직접 투자해야 합니다."
조성식 미래에셋생명 자산운용부문 대표는 지난 8일 본지 인터뷰에서 "4차 산업혁명으로 불리는 기술 변혁을 주도하고 활용하는 기업 대부분이 미국 기업"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조 대표는 10조원에 달하는 변액보험 적립금을 글로벌 시장에 분산 투자해 우수한 성과를 올리고 있다. 미래에셋생명의 대표적인 변액보험 상품인 'MVP(Miraeasset Variable Portfolio) 60' 펀드의 연초 이후 수익률은 12%, 출시 이후 5년간 누적 수익률은 25%에 이른다. 그는 "전체 자산의 50%를 주식에, 주식의 절반 이상은 미국 시장에 투자하고 있다"며 "글로벌 연·기금과 유사한 비율로 투자 꾸러미를 구성하고, 그에 준하는 수익률을 추구한다"고 말했다.
◇코스피 제자리 기는 동안 나스닥 90% 상승
현재 조 대표의 주식 포트폴리오에서 미국 비중은 53%인 반면, 중국은 13%, 한국은 5%에 불과하다. 조 대표는 "기업별로 미래 가치를 평가해 투자하는데 지금은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기업이 많이 포함돼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5세대 이동통신(5G), 인공지능(AI), 자율주행 등 새로운 기술 변혁이 2~3년 내 일상생활을 완전히 바꿔 놓을 것으로 본다"며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테슬라, 엔비디아 등 변화를 주도하는 대부분 기업이 미국에 있으니 미국 투자 비중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조 대표는 "미국 경기가 좋으면 중국, 한국 등 이머징 국가들도 수출이 늘고 경기가 좋아지는 선순환의 고리가 끊어졌다"며 "미국의 제조업 부흥(리쇼어링) 정책과 보호무역주의 때문"이라고 말했다. 10년 전 글로벌 금융 위기를 겪기 전까지는 미국 경제가 금융, IT(정보기술), 부동산 등 고부가가치 산업 중심으로 굴러갔다. 제조 기업들은 중국, 인도 등 신흥국에 공장을 지어 속속 빠져나갔다. 조 대표는 "금융 위기의 원인을 분석한 미국 정부는 제조업이 받쳐주지 않으면 나라 경제가 일순간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2013년 이후 미국은 기업 법인세·전기료 등을 깎아주는 등 적극적인 일자리 유인 정책을 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정책이 효과를 거두면서 미국 주가지수는 지속적인 우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조 대표는 "미국의 나스닥 지수는 지난 5년간 90% 오른 반면 한국의 코스피 지수는 5년 전이나 지금이나 2100 안팎에서 왔다갔다 한다"며 "미국과 글로벌 경제가 함께 굴러가는 시대는 끝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 보호무역주의 정책을 펴는 것이나 한국과 유럽에 국방비를 분담하라고 요구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말했다. 저렴한 중국 제품에 관세를 붙여 미국의 제조업을 보호하려는 것이며, 더 이상 전 세계의 자유무역 시스템을 지키기 위해 미국의 세금을 쓰지 않겠다는 것이다.
◇중국서도 미래형 비즈니스 기업 찾아 투자해야
하지만 조 대표는 "미국 기업이라고 해서 모두 잘되는 것은 아니고, 중국이라고 해서 전부 피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미국 자동차 회사 포드 주가는 5년 전보다 35% 이상 떨어져 회복하지 못하고 있고, 130년 역사의 시어스 백화점은 최근 전자상거래 시장에 밀려 파산 신청했다"며 "미래형 비즈니스 모델이 주목받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국 기업 중에는 텐센트, 알리바바, 항서제약, 탈에듀케이션 등 미국이 대신할 수 없는 기업이 유망하다고 했다. 그는 "무역 분쟁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중국 시장이 큰 변동성을 겪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회복할 수 있는 기업들"이라고 말했다. 조 대표는 "한국 기업 중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이 전 세계적으로 대체하기 어려운 높은 경쟁력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시간이 자기 편인 주식 골라라"
조 대표는 가장 중요한 투자 원칙으로 "시간이 자기 편인 주식을 고르는 것"을 꼽았다. 그는 "5G가 됐건 AI가 됐건 앞으로 미래 사회를 바꿀 기술을 가진 기업에 투자했다면, 미·중 무역 전쟁을 포함한 어떤 이슈가 있더라도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리면 된다"고 말했다. 그 기술이 일상생활을 눈에 띄게 바꾸는 순간이 오면 훨씬 더 많이 오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조 대표는 아마존을 예로 들었다. 그는 "아마존은 전자상거래 확대라는 일상생활의 변화를 주도했고 IT 원천 기술은 없지만 물류 창고에 로봇을 도입하고 AI를 활용해 고객의 데이터를 축적한다"며 "첨단 기술을 한껏 활용해 고객의 집에 화장지가 떨어질 때쯤 가까운 물류센터에 같은 브랜드의 화장지를 들여놓는 깜짝 놀랄만한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조 대표는 "라이프스타일의 변화에 부합하는 기업, 기술의 진보를 활용하는 기업, 깜짝 놀랄 만한 고객 경험을 가져다 주는 기업, 이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하는 기업이라면 길게 투자해도 좋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