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서울 성수동 구두 장인(匠人)들이 낮은 임금에 고생한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유명 브랜드·대기업의 횡포라는 댓글도 있었지만 저는 패션 업계 종사자로서 독창적인 디자인 등으로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28일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2층 매장에는 뉴욕의 패션 디자이너 유나 양(41)씨가 사회적 기업과 협업해 내놓은 제품이 팔리고 있었다. 양씨는 생존 경쟁이 치열한 뉴욕 패션계에서 외부의 지원을 받지 않고, 자기 브랜드의 힘만으로 살아남은 몇 안 되는 한국계 디자이너다. 그녀가 한국의 사회적 기업을 돕기 위해 발벗고 나선 것은 이런 '생존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돼야겠다는 문제의식 때문이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패션디자이너 유나양씨가 28일 본인이 멘토링한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본점의 '사회적 기업 가방·구두 팝업스토어'에서 제품들과 함께 포즈를 취했다. 오른쪽 사진은 2016년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기금 모금 행사인 '메트 갈라'에 앞서 테슬라 창업자 일론 머스크의 어머니이자 모델인 메이 머스크의 옷을 피팅해주고 있는 유나양.

"한국 구두 장인이 힘들게 제품을 내놓지만 디자인은 유명 제품과 비슷한 경우가 많아요. 새롭고 신선한 디자인으로 바꾸면 가격을 적절하게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죠."

양씨는 당시 코트라 김종춘(현 부사장) 북미지역 본부장과 이런 아쉬움을 이야기하며 "장인들을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적극 돕겠다"고 말했다. 이후 코트라가 본격적으로 프로젝트를 기획했고, 양씨는 흔쾌히 응했다. 양씨는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패션 브랜드 '조셉앤스테이시'의 허지숙 대표, '뮤지엄 재희'의 김재희 디자이너와 '패션계 프로팀'(멘토팀)을 구성해 지난 4개월 동안 1대1로 3개 기업을 지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신었던 구두로 유명한 구두 브랜드 '아지오' 등이 포함됐다.

양씨는 이화여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이탈리아 패션학교 마랑고니, 영국 런던 세인트마틴스쿨에서 디자인을 공부했다. 이후 2010년 뉴욕에서 단독 패션쇼를 열며 미국 시장에 데뷔했다. 그때부터 한 차례도 빠지지 않고 패션쇼를 개최해 올 9월이면 20번째 패션쇼를 갖는다. 그의 이름을 딴 브랜드 '유나 양(Yuna Yang)'은 테슬라의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의 어머니이자 유명 현역 모델 메이 머스크가 'MET(메트) 갈라' 행사에 입고 나와 미국 사회에서 화제가 됐다.

양씨는 이번 프로젝트에서도 전문성을 강조했다. 사회적 기업을 지원하는 문제를 비즈니스 차원이 아닌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차원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맘에 드는 상품을 발견했는데, 만든 곳도 사회적 기업이어서 더 좋았다는 식으로 구매가 이뤄져야지 안쓰러워 도와주겠다는 구매는 일회성에 그치고 오래갈 수가 없다"고 했다.

양씨는 "무형의 창조물을 만들어내는 디자인이라는 것은 많은 시간을 고민해서 나오는 나만의 철학인데, 한국에서는 트렌드를 따라가고 어디서 본 듯한 상품을 비슷하게 만들어내는 것으로 생각해 온 것 같다"며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이면 '안 보던 것인데 이런 것이 팔릴까요'라며 오히려 겁내는 일이 많았다"고 했다. "소비자들 지갑을 열게 하는 것은 신선하고 세상에 없던 제품"이라고 설득해 결국 선보일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양씨는 "보통 이런 팝업스토어는 1주일간 하는데 롯데백화점의 배려로 2주일 동안 운영하고 있다"며 "판매 시작 전에는 '어렵게 브랜드를 운영하시는 분들께 괜한 새로운 시도로 폐를 끼치는 건 아닐까' 걱정도 많았지만 소비자들 반응이 좋아 다행"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