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재정위기 당사국 중 하나인 포르투갈이 올해 균형재정을 달성할 전망이다. 40여년만에 처음으로 재정적자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2012년 마이너스 4%까지 추락했던 성장률은 재작년에 2.8%로 뛰어올랐다. 2000년 이후 최고 기록이다. 작년과 올해 성장률도 2%대 초반을 유지하고 있다. 한때 17%를 웃돌았던 실업률은 최근 6.7%로 떨어졌다.
주목할 부분은 포르투갈 경제 회복이 사회당 정부의 성과라는 사실이다. 사회당 정부는 2015년 말 출범 이후 EU와 IMF 등이 구제금융 조건으로 요구했던 긴축정책을 상당 부분 뒤집었다. 2년에 걸쳐 최저임금을 20% 올리는 등 포르투갈식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폈다. 많은 우려가 있었지만 결국 성장과 고용, 재정 개선의 세 마리 토끼를 잡았다.
포르투갈은 유럽식 사회민주주의 노선의 이례적 성공사례로 꼽힌다. 지난 몇년간 유럽에선 프랑스 사회당을 비롯한 중도좌파 정당들이 대부분 국민의 지지를 잃고 지리멸렬했다. 그런 와중에 포르투갈 사회당은 괄목할 만한 성과로 재집권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 '대서양의 작은 기적'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그러나 기적이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사회당 정부가 잘한 부분도 있지만 대외여건 호전이 결정적이었다는 것이다. 우선 유럽 경제의 회복세와 세계적인 관광붐이 포르투갈 경제의 디딤돌 역할을 했다. 금융위기 이후 저금리 체제와 유럽중앙은행의 국채 매입으로 원리금 상환 부담이 크게 줄어든 덕도 봤다.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다.
유럽의 골칫덩이인 그리스 경제가 살아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리스는 작년 성장률이 2.2%로 2007년 이후 최고를 기록했다. 8년 만에 구제금융 프로그램에서 공식 졸업했다. 그리스 경제에 대한 긍정적인 전망을 반영해 최근 국채 금리가 14년만의 최저 수준으로 낮아지기도 했다. 세계 경제 회복과 관광붐이 그리스의 숨통을 터줬다.
같은 기간 한국 경제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새로운 기록이 쏟아졌다. 유감스럽게도 '최악', '최저'같은 부정적 수식어가 붙은 경우가 많다. 세계 경제 회복세를 타고 '유럽의 환자(患者)'들이 기사회생하는 동안 한국 경제는 거꾸로 갔다. 대외의존도가 높아 세계 경제의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한국 경제로서는 이례적인 일이다.
작년 취업자수 증가폭은 9만7000명으로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이후 9년만에 최저치였다. 월별 기준으로 실업자수와 청년실업률 등이 1999년 이후 19년만에 최악을 기록하기도 했다. 상위 20% 소득을 하위 20% 소득으로 나눈 소득 5분위 배율은 2003년 관련 통계 작성이후 가장 악화됐다. 월 평균 가계 소비지출은 2006년 조사 시작 이후 최대 감소폭을 나타냈다.
지난해 국내 기업의 해외 직접투자액은 478억 달러로 1980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모두 사상 최대였다. 기업의 해외 직접투자 자체는 부정적으로 볼 일이 아니다. 그러나 국내 투자가 부진한 가운데 해외 투자만 늘어나고 있는 게 문제다. 국내 기업들의 해외 대탈주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올 들어서도 '신기록 행진'이 이어지고 있다. 1분기 성장률은 마이너스 0.3%(전분기 대비)로 2008년 4분기 이후 가장 낮았다. 국내 설비투자 증가율은 마이너스 10.8%로 21년만에 최저였다. 경기 동행·선행지수 순환변동치는 관련 통계가 작성된 1970년 이후 최장의 동반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 대해 '마이너스의 손'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지경이다. 금융위기 같은 중대한 사태가 터졌다면 또 모르겠다. 지난 2016년 하반기부터 세계 경제는 뚜렷한 회복세를 보였다. 'PIGs' 국가 중에서도 가장 약골이고 문제가 많은 그리스가 살아날 정도로 세계 경제에 훈풍이 불었다. 이런 상황에서 최저·최악의 기록이 쏟아진 것은 누가 봐도 비정상이다.
청와대와 여권(與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처음엔 지난 정부 탓이라고 했다. 그 다음엔 '경제 실패 프레임'이나 '가짜 뉴스'라고 주장했다. 최근엔 세계 경제 둔화와 대외 불확실성을 이유로 들기 시작했다. 시절 좋을 때는 엉뚱한 데 정신을 팔고 있다가 이제 와서 무슨 염치로 대외 여건 핑계를 대는지 모르겠다.
한편으로는 "경제가 개선되고 있다는 지표가 많은데 부각이 안 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긍정적인 지표를 찾아내 적극 알려야 한다"는 지시가 있었다고도 한다. 억지로라도 그런 지표를 몇 개 찾아낼 수는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참담한 경제 성적표를 감출 수 없고, 암울한 경제 전망도 바꾸지 못한다.
민간 경제연구소와 해외 금융회사들이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줄줄이 하향조정하고 있다. 일본 노무라증권과 ING그룹은 전망치를 1.8%와 1.5%까지 낮췄다. 1%대 성장은 거의 초유의 일이다. 국가적 비상사태가 있었던 이듬해인 1980년, 1998년, 2009년 등 세 해를 제외하면 1956년(0.7%) 이후 가장 낮은 기록이다.
물론 그 정도로 나빠지지는 않을 것이다. 필요하다면 올 하반기에 또 한번 추경을 해서라도 2%대 성장률을 지킬 수는 있다. 하지만 한국 경제체질이 최근 몇년새 눈에 띠게 허약해졌다는 사실은 그대로 남는다. 민간 부분의 활력이 꺼지면서 재정에 기대 근근히 버티고 있는 게 한국 경제의 현실이다.
여러 원인이 있지만 적대적 기업 정책과 과도한 규제, 강성 노조의 횡포 등이 핵심이다. 시장을 이기겠다는 정부의 무리수와 오만, 착각의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한국 경제가 이대로 더 가라앉기 전에 근본적인 정책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 먼저 '정책 오류'와 '정부 실패'부터 인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