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호 영리병원으로 추진된 ‘제주 녹지국제병원(이하 녹지병원)’ 사업자가 병원사업 철수 의사를 밝혔다. 중국 자본에 의해 설립된 영리병원이 실패로 끝나면서 중국과 무역 마찰 가능성도 점쳐진다.

녹지병원 사업자 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 유한회사(이하 녹지제주)는 지난 26일 구샤팡 대표 명의로 병원 근로자 50여명(간호사 등)에게 우편물을 보내 "병원사업을 부득이하게 접을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중국 자본 녹지그룹의 녹지제주는 외국계 의료기관으로 영리병원 개설을 추진해 왔다.

제주도는 지난 17일 "정당한 사유없이 의료법이 정한 시한내에 병원을 개원하지 않았다"며 녹지제주 병원 개설허가를 취소했다.

녹지제주는 "여건상 회사가 병원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그렇다고 여러분들과 마냥 같이할 수 없기에 이 결정을 공지한다"면서 "법에서 정한 절차에 따라 근로자대표를 선임하면 그 대표와 성실히 협의토록 하겠다"고 말했다.

녹지제주는 "도에서 외국인 전용이라는 조건부 개설허가를 했으나 조건부 개설로는 도저히 병원개원을 할 수 없었다"면서 지난 2월 도청 조건부개설허가에 대한 취소를 요구하며 행정소송을 제기까지 했다"고 병원철수 이유를 밝혔다.

또 "행정소송과 별도로 도청에 고용유지를 위해 완전한 개설허가를 해주던지, 개설허가가 어렵다면 도청에서 인수하거나 다른 방안을 찾아 근로자 고용불안문제를 해결해달라고 여러 차례 제기했으나 아무런 답을 얻지 못했다"고 말했다.

녹지병원은 2017년 병원 준공 당시 의사 9명을 포함해 직원 134명을 채용했으나 이후 절반 이상이 퇴직해 현재 간호사 등 50여 명만이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녹지병원은 이들 근로자와 고용은 해지하지만, 병원사업 운영 경영자가 나타나면 근로자가 우선 채용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했다. 하지만 운영자 변경 이후 병원 고용 직원 채용이 담보될 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앞서 녹지제주는 2014년 11월 법인설립신고를 하고 서귀포 헬스케어타운에 의료사업을 추가했다. 2015년 2월 보건복지부 사전 승인을 받아 영리병원 사업에 착수, 2017년 7월 녹지병원 건물을 준공해 같은 해 8월 간호사 등 병원 직원을 채용했다.

도는 의료법이 정한 병원 개설 시한(90일)을 넘기고도 녹지제주가 병원 운영을 하지 않아 허가 취소 전 청문을 시작했다. 지난 17일 병원 개설을 취소했다.

국내 첫 영리병원 개설은 결국 무산됐다. 녹지병원 철수, 결정 번복에 따른 파장도 클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제주도와 녹지병원은 내국인 진료 제한 위법성을 놓고 행정소송을 진행 중이다. 당장 1000억원 안팎 예상 손해배상 책임과 지역주민 반발이 예상된다. 녹지제주는 지난 2월 조건부 개원 허가를 취소하라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소송 결과에 따라 도가 의료법상 개원 취소를 했더라도 불허 효력이 바뀔 가능성도 있다.

사업자는 승소하더라도 개원을 하기보다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가능성도 제기됐다.

녹지제주는 지난 3월 청문을 통해 "제주도와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요구로 778억원을 들여 건물을 준공, 2017년 8월 진료를 시작할 시설과 장비, 인력 등 확보를 완료했다"고 밝혔다. 이어 "개설허가가 1년 4개월가량 미뤄져 8억5000만원 순손실이 발생했고, 내국인 진료 제한 조건이 붙어 불복소송을 진행하고 있어 개원이 어려웠다"고 강조했다.

녹지병원 개설 취소 이후, 병원 부지가 포함된 제주헬스케어타운 정상화에도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제주헬스케어타운은 2018년 12월 완공될 예정이었지만, 중국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반발과 외화반출 축소정책 등 영향으로 2017년 5월부터 공사가 중단됐다.

늑장으로 조건부 허가를 내준 제주도도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 도는 녹지병원 조건부 허가 취소 처분을 내렸다. 원희룡 지사는 "국내 첫 투자개방형 병원인 녹지국제병원 조건부 허가 취소 처분을 내린 것은 원칙과 절차에 따른 결과"라고 말했다.

원 지사는 "녹지병원 측이 정당한 사유 없이 현행 의료법에서 정한 3개월 기한을 넘겨서도 개원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개원을 위한 실질적인 노력도 없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원 지사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청와대 복지부 등도 녹지병원 사태 책임을 져야한다는 의견도 있다. 복지부는 박근혜 정부 당시인 2015년 녹지병원 사업을 승인했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녹지병원 개원 허가를 암묵적으로 허용했다는 지적이 있다. 녹지병원은 지난해 12월 5일 제주도를 방문하는 외국인만을 대상으로 개설 허가를 받았다. 제주도가 허가 여부를 결정할 당시, 쟁점은 ‘병원이 내국인이 아닌 외국인만 진료를 해도 되느냐’ 여부였다. 당시 녹지병원은 ‘외국인 전용 병원’으로 알려지며 논란을 낳았다. 내국인 진료 제한이 문제였다.

제주도 영리병원 개설 및 운영에 관한 기초 틀인 ‘제주특별법’ 상에 내국인 진료 제한을 둔 명확한 규정이 없다. 제주도는 ‘내국인을 대상으로 진료하지 않더라도 의료법 위반(진료거부)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복지부 유권 해석이 나왔다. 2015년 복지부가 녹지국제병원 사업계획승인 당시, 녹지 측이 사업계획서에 '외국인 의료관광객 대상 의료 서비스 제공'으로 명시했다는 점을 들어 조건부 허가는 타당하다는 입장이다.

복지부는 지난해 제주도 측 질의에 ‘내국인 진료 제한은 의료법 위반이 아니다’는 유권해석을 전달했다. 정경실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장은 "녹지병원 개설 조건에서 제주도가 개원을 허가하면서 진료 대상을 '외국인'으로 한정하는 내용이 명문화돼 있다면, 복지부가 '내국인 환자 대상 진료를 하지 않을 경우 진료거부'라고 볼 수 없다"면서 "조건부 허가를 했기 때문에 복지부는 그 허가 조건에 맞춰 유권해석을 해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국의 부동산개발회사인 녹지그룹이 100% 투자해 설립된 녹지국제병원은 병원 운영으로 생긴 수익금이 투자자에게 돌아가는 영리병원이다. 녹지그룹은 사업 투지 순실에 대한 손해배상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녹지그룹은 "조건부 허가 등은 한중 FTA(자유무역협정)에 따른 외국 투자자 적법한 투자기대 원칙을 위반한 것"이라며 "녹지는 제주도 강요로 인해 영리병원 투자계약을 체결한 외국인 투자자"라고 주장했다.

한국 정부와 제주도가 허가해 준 병원이 개원에 실패하면서 '한중 무역 분쟁' 가능성도 있다. 녹지 측은 투자자·국가 분쟁(ISD) 제도를 통해 한국 정부를 상대로 직접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녹지그룹이 중국 정부를 움직여서 한국 정부에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면 또 다른 정부 간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제주녹지국제병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