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디자인진흥원(KIDP) 윤주현 원장실엔 다른 기관장 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럴듯한 집무용 책상이 없다. 집무용 책상은 PC 작업용으로 한편으로 밀어놨고, 윤 원장은 회의용 탁자에서 주로 일한다. 원장 명패도 아예 회의용 탁자에 올려뒀다. 윤 원장은 "직원들과 함께 격식 없이 둘러앉아 의논하면서 일하기 편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윤 원장은 첫 여성이자 최연소 KIDP 원장이다. 카이스트와 뉴욕대를 거치며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윤 원장은 전문디자인기업 최고경영자, 디자이너로 일했고, 서울대 교수로 재직해왔다.
◇"잠재력 충분한 한국 디자인산업"
취임 1주년을 맞은 윤 원장은 지난 26일 인터뷰에서 우리나라 디자인 역량은 충분한데도 산업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디자인 산업 규모가 지난 7년간 2.5배 성장했지만, 전체 산업에서 비중은 1~3% 수준에 그치고 있다"며 "우리나라에서도 글로벌 디자인 회사가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윤 원장은 "디자인을 사치라고 생각하고, 산업 자체로 보는 게 아니라 서포터(지원자)로 보는 게 안타깝다"고 했다. 이어 "외국에 나가보면 디자인이 좋아 한국 제품을 산다고 한다. BTS(방탄소년단)가 해외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디자인과 디자이너 역할이 컸다"고 말했다.
그는 "다이슨의 창업자인 제임스 다이슨도 디자이너 출신인데 디자이너 한 명이 1만명을 먹여 살리지 않느냐"며 "기술과 디자인은 공존해야 하는데 우리는 하드웨어 기술 중심이어서 디자인은 마치 공짜로 얻는 줄 안다"고 했다.
하지만 윤 원장은 "외국인들은 우리나라 찜질방, 노래방 같은 방(房)문화나 보자기, 한복 같은 우리 문화에 관심을 보인다"며 "우리가 과소평가한 한국적인 멋과 맛, 끼와 꼴, 깡(끈기)과 꾼(전문성)은 한국디자인(K디자인) DNA이며 엄청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넓어지는 디자인 영역
디자인의 영역은 단순히 제품 외관만 개선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다. 요즘은 새로운 사업 모델을 제시하고, 라이프 스타일을 이끌어가면서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 윤 원장은 "앙드레김이 옷 만드는 것만이 디자인이 아니다"라며 "남의 입장에서 가장 필요한 걸 찾고, 문제를 해결하고 미래 시나리오를 예측하는 창의성이 디자인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디자인은 자동차, 반도체보다 2배 이상 부가가치율과 취업유발 창출 효과가 있다"며 "기업을 혁신하고 성장하는 데에도 디자인에 답이 있다"고 했다. 윤 원장은 메이크업 팔레트와 스마트폰 케이스를 일체화해 해외 수출에 성공한 '필릿'이나 CES(세계 최대 IT 전시회)에서 1만달러 수출 계약을 따낸 고양이 전용 트레드밀인 '리틀캣' 등을, 디자인을 통한 기업 혁신 사례로 들었다. 모두 KIDP 세대융합창업캠퍼스 사업의 도움을 받았다.
윤 원장은 "기업조직에서부터 제조업·서비스 혁신, 사회문제 해결, 국가 혁신까지 디자인 영역은 끝이 없다"고 했다.
◇내년 창립 50년 맞는 KIDP
KIDP는 내년 창립 50주년을 앞두고 있다. 올 11월 '디지털 변신'을 주제로 열릴 '디자인코리아' 행사 준비도 한창이다. 한국 디자인사(史)를 아우를 디자인진흥 50년사도 펴낸다. 표준화된 디자인 프로세스를 통해 중소·중견기업이 대기업 수준의 디자인 체계를 갖출 수 있도록 '디자인 플랫폼'을 구축할 계획이다. 윤 원장은 "국토부가 추진 중인 도시재생뉴딜사업, 공공서비스 혁신모델 개발사업인 '국민UX개선사업', 코리아·스웨덴 영디자인 어워드 등 인재 육성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취임 이후 디자인통합민원센터를 구축하고 디자인 대가 기준 마련을 위한 공청회를 갖는 등 디자인 권리와 전문성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여러 제도를 추진해왔는데 올해도 이를 지속적으로 강화해 갈 계획"이라고 했다.
윤 원장은 "디자인뮤지엄을 만드는 게 꿈"이라고 했다. KIDP는 디자인 원로로부터 희귀 자료 3000점을 기증받았는데 이를 바탕으로 우선 도서관이자 세미나장인 '디자이너 서재'를 구축해 운영한다. "디자인은 기업 생존에 필수입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디자인의 힘을 믿고 디자인에서 답을 찾아야 합니다." 윤 원장은 "시작이 어려우면 KIDP 문을 두드리시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