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경동맥 내막(內膜)이 보이나요? 0.96㎜로 좀 두꺼운 편이네요."

지난해 12월 서울 구로구 힐세리온 사무실에서 류정원(오른쪽)대표가 휴대용 초음파기기 '소논'으로 환자의 혈관 상태를 진단하고 있다.

지난 10일 서울 구로동 구로디지털단지역 근처에 있는 의료기기 스타트업(초기 벤처기업) 힐세리온 사무실. 류정원(46) 힐세리온 대표가 리모컨처럼 생긴 막대를 직원의 목에 갖다 대자, 와이파이로 연결된 태블릿PC 화면에 흑백으로 갑상선과 경동맥의 모습이 나타났다. 병원에서 보던 초음파 화면이다. 이 회사가 개발한 휴대용 초음파기기 '소논'은 이렇게 막대 하나와 스마트기기에서 사용 가능한 앱(응용 프로그램)으로 이뤄져 있다. 류 대표는 "대학병원에서 쓰는 대형 초음파 기기가 전문가를 위한 DSLR(디지털일안반사식) 카메라라면, 우리가 만든 소논은 언제 어디서나 부담없이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스마트폰 카메라"라며 "사고 현장, 의료진이 없는 외딴 섬에서도 간편하게 초음파 검진을 할 수 있어 쓸모가 많다"고 말했다.

의사 경력 살려 창업, 휴대용 초음파기기 시장 열어

류 대표는 본래 서울대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과학도였다. 1998년 벤처붐이 일자 전기공학을 복수 전공했고, 졸업 후 디지털영상장비 벤처 '디지젠'을 창업했다. 하지만 공동경영자와의 의견 충돌로 자신이 창업한 회사를 그만뒀다. 그때 그를 사로잡은 것이 AI(인공지능)였다. "AI 연구를 위해 인간의 뇌와 신경에 대한 연구서를 닥치는 대로 읽었어요. 그러다 보니 갑자기 의대에 가고 싶어지더군요. 그래서 2005년 가천대 의학전문대학원에 입학했죠."

의전원 졸업 후 서울의 한 종합병원에서 일하던 류 대표의 진로가 또 한 번 바뀐 것은 지난 2012년, 응급실 근무 중 한 지체 장애인 산모가 아프다는 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숨지는 사고를 목격한 뒤였다. 그는 "응급실에 산모와 태아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간편한 휴대용 초음파 기기가 있었으면 살릴 수 있었다는 아쉬움이 컸다"고 했다.

류 대표는 "세상에 없다면 내가 만들겠다"며 창업에 나섰다. 첫 3년은 제품 개발에만 몰두했다. 소프트뱅크벤처스아시아, 산업은행 등에서 받은 투자금 60억원을 몽땅 R&D(연구개발)에 썼다. 2014년 나온 시제품이 바로 이듬해 미국 FDA(식품의약국)의 의료기기 승인을 받았고, 한국, 유럽, 일본, 중국, 러시아 인증도 받았다. 그는 "창업 초기부터 글로벌 시장을 노렸다"면서 "지난해 매출 40억원 중 90%는 해외에서 나왔다"고 말했다.

류 대표는 "해외 대기업과 경쟁도 자신 있다"고 했다. "소논이 출시된 후에 필립스나 GE 같은 글로벌 기업도 비슷한 휴대용 제품을 내놨어요. 하지만 가격이나 성능 면에서 우리 제품을 따라오기엔 멀었죠." 해외 대기업 제품은 한 대 가격이 2000만원을 넘는다. 소논은 900만원으로 절반 이하로 저렴하다. 진단기(스틱)와 화면도 무선으로 연결되어 있어 훨씬 쓰기 편하다.

3년 안에 글로벌 시장 10% 목표… AI도 접목

휴대용 초음파기기는 아직 전체 초음파기기 시장의 5% 정도밖에 안 되는 작은 시장이다. 류 대표는 "하지만 10년 안에 전체 시장의 50%까지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퓨처마켓인사이츠는 응급 의학과 원격 진료 등에서 휴대용 초음파기기의 사용이 늘면서 지난해 3800억원 수준이었던 세계시장이 2024년엔 6300억원으로 급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국내만 해도 4만개 정도의 1차 병원이 있고, 일본은 그의 3~4배"라며 "대기업들은 관심이 없는 '동네병원' 시장을 공략해 몸집을 키울 것"이라고 했다.

힐세리온은 현재 5% 수준인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3년 내에 10%까지 늘리는 것이 목표다. 이를 위해 소논과 연결되는 앱에 AI를 탑재할 계획이다. 류 대표는 "소논으로 초음파 영상을 찍으면 수만장의 초음파 영상과 사진을 학습한 AI가 신체 부위의 위치와 건강 여부 등을 분석, 좀 더 정확한 진단을 도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