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조선]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 석유 기업 아람코의 첫 자본시장 데뷔 무대였던 회사채 발행에 목표의 10배가 넘는 자금이 몰렸다. 사진은 사우디아라비아에 있는 아람코 유전.

100억달러 모집하는데 1000억달러 이상의 주문이 몰렸다. 4월 9일 아람코 회사채를 사려는 투자자들이 뭉칫돈을 들고 밀려들었다.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 회사 아람코가 진행한 회사채 입찰은 예상대로 대성공을 거뒀다. 10일 아람코는 애초 계획을 웃도는 120억달러를 최종 발행했다.

엄청난 인기에 채권 가격도 올랐다(가격상승, 금리 하락). 아람코는 3년물, 5년물, 10년물 등 총 6종의 채권을 발행했는데, 최종 금리는 처음 발행사가 제시했던 금리 ‘미국 국채 금리+125bp(1bp=0.01%포인트)’보다 낮은 ‘+105bp’로 정해졌다. 보통 최종에서 처음 제시했던 금리보다 10~15bp 정도 낮게 정하는 것을 감안해도 하락폭이 컸다. 특히 사우디 국채 금리가 ‘+127bp’인 것을 생각하면 아람코 채권이 사우디 국채 가격보다 비쌌다. 이례적이었다.

아람코의 회사채 발행은 올해 초부터 금융 시장 관계자들의 관심을 끌어모은 ‘메가딜’이었다. 보통 회사채 발행 규모가 5억달러 수준인 것과 비교하면 물량부터 100억달러로 ‘블록버스터급’이다. 여기에 아람코가 단 한 차례도 자본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해 본 적이 없다는 점도 화제를 모았다.

그런데 여기엔 그 이상의 의미가 또 있다. 회사가 시장에서 투자자를 끌어모으려면 재무 상황을 공개해야 한다. 국제 신용평가사는 이를 토대로 등급을 지정하고, 투자자들도 채권 가격(금리)을 예상할 수 있다. 아람코 회사채 발행은 사우디 왕가 소유 비(非)상장 기업인 탓에 그동안 철저한 비밀에 부쳐졌던 아람코의 회계장부 공개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번 회사채 발행에 참여했던 국내 투자자는 "발행 전부터 아람코 속살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이 많았다"고 전했다.

실제로 4월 1일 80년간 베일에 싸여 있던 사우디 왕실의 금고가 세상에 공개되자 반응은 충격적이었다. 왕실이 벌어들이는 돈이 상상 이상이었다. 아람코가 공개한 투자설명서에 따르면 지난해 영업이익은 2239억달러(약 255조원), 순이익은 1110억달러(약 127조원)를 기록했다. 이전까지 영업이익 1위였던 애플과 삼성전자, 로열더치셸의 영업이익을 모두 합해도 아람코의 영업이익에 미치지 못했다.

아람코는 무엇으로, 어떻게, 이 막대한 돈을 버는 것일까. 아람코가 채권 발행을 추진하면서 공개한 469쪽에 달하는 투자설명서를 통해 사우디 왕실의 금고를 분석했다.

포인트 1ㅣ원유 독점 생산권 가진 아람코

아람코의 돈줄은 땅속에 묻힌 어마어마한 규모의 원유다. 사우디의 확정 원유 매장량은 2668억배럴로 베네수엘라(3009억배럴)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수퍼 메이저’라고 불리는 민간 사업자 브리티시 페트롤륨(BP), 엑손모빌, 로열더치셸, 토털, 쉐브론의 보유량 합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아람코는 사우디 땅에서 나는 원유를 독점으로 채굴·개발·판매하는 권리를 갖고 있다.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 사업 부문도 원유 생산에 거의 모든 초점이 맞춰져 있다. 영업이익 기준으로 땅속에 있는 원유·가스를 탐사·생산하는 ‘업스트림’ 부문의 비중이 98%에 달한다. 나머지 2%가 캐낸 원유를 정제하고 석유·화학 제품으로 만들어 유통하는 ‘다운스트림’ 부문이다.

아람코는 이 막대한 생산량을 기반으로 생산 원가를 확실히 낮췄다. 아람코의 원유 생산 원가는 배럴당 2.8달러다. 수퍼 메이저의 생산 단가가 배럴당 11~14달러인 것과 비교하면, 20%에 불과하다. 주관사 JP모건과 모건스탠리는 "대규모 유전이 모여 있는 지리적 이점으로 인프라와 물류 시너지 효과가 큰 데다, 원유 고갈률도 낮아 생산 단가를 경쟁력 있게 유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포인트 2ㅣ아람코 움직이는 빈살만 왕세자

아람코의 시작은 1938년 사우디에서 유전이 발견되면서부터다. 자원을 가진 사우디와 기술, 자본을 가진 미국이 참여해 ‘아라비아 아메리칸 석유 회사(Arabian American Oil Company)’의 약자로 ‘아람코’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중동 원유가 세계 경제 붐의 원천이 되면서 중동에서 국유화 바람이 불었다. ‘검은 황금’ 석유 패권에 눈뜬 사우디 왕실도 1980년 미국 측이 갖고 있던 지분을 전량 회수하며 ‘사우디 아람코’로 사명을 바꿨다.

지금도 아람코의 지분은 100% 정부가 갖고 있다.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의 보고서와 외신을 종합하면 사우디 정부 재정의 87%를 아람코가 충당한다. 법인세, 로열티, 배당 등을 정부에 납부하는 식이다. 지난해 아람코가 정부에 환원한 이익은 회사 매출(3560억달러)의 60%에 달한다. 왕실 재정의 상당 부분을 아람코가 담당하는 ‘아람코 의존 경제’다.

이런 아람코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은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다. ‘미스터 에브리싱’으로 통하는 사우디의 실세다. 11명으로 구성된 이사회 의장은 ‘사우디 왕실의 금고지기’ ‘빈살만 왕세자의 오른팔’로 불리는 칼리드 알팔리 에너지산업광물자원부 장관이다. 빈살만 왕세자는 2021년을 목표로 아람코 IPO를 추진하고 있다.

포인트 3ㅣ사우디 개혁·개방 실탄으로

회사채 발행을 시작으로 IPO까지 추진하려는 아람코의 움직임은 사우디 경제 구조를 바꾸려는 빈살만 왕세자의 계획과 깊은 연관이 있다. 빈살만 왕세자는 ‘비전 2030’으로 대표되는 의욕적인 개혁·개방 정책을 2016년부터 펼치고 있다. 2020년까지 석유 의존에서 탈피하는 것이 골자다.

회계 장부를 보면 그동안 아람코의 이익은 국제 유가와 천연가스 가격에 따라 움직였다. 2016년 아람코 순익은 132억달러로 지난해(1110억달러)의 10분의 1 수준이었다. 당시 브렌트유 가격이 배럴당 평균 45달러 수준으로 낮았던 탓이다. 역대급 순익을 낸 지난해, 유가는 배럴당 최고 80달러를 넘어서는 등 고공 행진했다.

아람코는 이번 회사채 발행으로 모은 자금을 사업 다각화에 활용할 예정이다. 사우디 국부펀드인 PIF가 보유한 석유·화학 업체 사빅(SABIC)의 지분을 인수하는 데 쓸 ‘실탄’이다. 원유 생산 부문에 집중됐던 무게추를 정제 부문으로 이동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됐다. 한편 PIF는 아람코로부터 확보한 자금을 빈살만 왕세자의 개혁·개방 투자에 쓸 것으로 보인다. IPO로 확보한 자금은 미래형 도시 ‘네옴’ 건설에 쓸 예정이다.

◇PLUS POINT

아람코 자회사 에쓰오일 급여 1억3700만원 국내 1위

지난해 국내에서 직원 평균 급여가 가장 높았던 기업은 에쓰오일이었다. 취업 포털 잡코리아가 4월 2일 국내 시가총액 상위 100대 기업 중 2018년 사업보고서를 낸 80개 기업을 분석한 결과다. 에쓰오일의 직원 평균 급여는 1억3700만원으로 삼성전자(1억1900만원)를 뛰어넘었다. 분석 대상 기업의 1인 평균 급여(8100만원)의 1.7배다. ‘직장인이 부러워하는’ 회사 에쓰오일의 뒤에도 아람코가 있다.

1998년 외환 위기 시절 아람코의 유럽 지역 자회사 아람코 오버시즈가 쌍용정유의 지분을 사들이며 최대주주가 됐다. 현재 지분율은 63.71%다. 아람코의 자회사는 한국을 비롯해 사우디산 원유 수입 의존도가 높은 중국, 인도, 일본 등 아시아 지역에만 있다. 한국에서 에쓰오일이 하는 사업은 원유 정제, 석유·화학 사업이다. 에쓰오일은 아람코와 원유 장기 공급 계약을 하고 아람코 원유를 수입해 유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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