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엔 본전만 돌아와라 했는데, 팔고 나서 자꾸 오르니 괜히 팔았나 싶네요."

올해 코스피지수가 야금야금 10% 오르면서 개미(개인 투자자)들의 한숨이 커지고 있다. 소심한 마음에 진득하게 묻어두지 못하고 원금이 되자마자 팔아버렸는데 그 이후에도 주가가 쉼 없이 오르고 있어서다.

올 들어 개인들은 국내 코스피·코스닥 주식을 4조4000억원어치 팔아치웠다. 국내 주식형 펀드에서는 1조5000억원의 자금이 빠져나갔다. 과열 신호로 꼽히는 코스피 신용 융자 잔액은 16일 기준 4조7472억원으로 오히려 작년 말보다 2% 줄었다. 개인들은 빚내서 주식을 사야 할 만큼 투자 매력은 없다고 보는 것이다. 40대 투자자 이모씨는 "올해 상장사 실적이 나빠진다길래 코스피도 크게 빠질 줄 알았는데 깻잎 수준으로 딱 붙어서 자꾸 오른다"면서 "지금이라도 외국인들이 사는 주식을 추격 매수해야 하는 건 아닌지 갈팡질팡한다"고 말했다.

◇"개미 필망(必亡)… 외인 따라 사라"

올해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들은 막강한 자금력과 정보력으로 '승률 100%'를 뽐내고 있다. 17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외국인들이 사들인 순매수 상위 10개 종목은 모두 플러스 수익률을 올렸다. 외국인들이 선호한 종목은 시총 1~2위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인데, 연초 이후 지난 16일까지 각각 22%, 33% 올랐다. 코스피 투자 자금의 69%가 2개 종목에 집중됐다. 반면 개인들이 선호한 상위 10개 종목은 한진칼(30.5%), 삼성SDI(5.3%) 정도만 성과가 양호했고, 나머지 8개 종목은 모두 마이너스였다. 특히 통신주인 LG유플러스의 수익률은 -17%로 가장 많이 하락했다. 운 좋은 극소수 개미를 제외하고는 대다수 개미들이 백전백패한다는 '개미 지옥'이라는 말이 나올 만했다. 기관들의 성적표도 신통치 않았다. 올해 기관이 많이 사들인 10개 종목 중 8개 종목은 올랐지만, KB금융과 셀트리온 등 2개 종목은 마이너스였다. 이정빈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현재 코스피지수는 외국인 수급이 주도하면서 상승하는 만큼 외국인들이 사들이는 종목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면서 "자동차, IT 가전, 화장품, 호텔레저, 건설 등의 업종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코스피 상승률은 G20 중 14위 그쳐

올해 나타난 외국인들의 한국 주식 사재기는 주식시장 지역 배분(선진국→신흥국)의 일환이란 지적이 많다. 17일 신영증권에 따르면 선진국 주식형 펀드에선 최근 1주일간 32억달러(약 3조6320억원)가 유출되는 등 4주 연속 자금이 빠져나가고 있다. 반면 신흥국 주식형 펀드에는 최근 1주일 새 6억달러가 순유입됐다. 민병규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올해 연간 이익 추정치 기준으로 신흥국은 최근 3개월간 0.7% 하향 조정된 반면 선진국은 2.2% 하향 조정됐다"면서 "신흥국 경제의 42.5%를 차지하는 중국이 선전하면서 선진국과 격차를 벌리자 투자 심리가 개선되고 있다"고 말했다.

G20(주요 20개국)의 대표 지수와 비교하면 한국 증시는 '남들 뛸 때 기어간' 수준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 들어 16일까지 중국은 30.5%, 이탈리아 19.6%, 러시아 17.5%, 프랑스 16.9% 상승했다. 한국은 같은 기간 10.2%로 14위에 머물렀다.

외국인 자금의 지나친 종목 편식과 변심 가능성에 주의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김상호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올해 외국인 랠리는 미·중 무역 협상 해결과 경기 반등 신호 등 우호적인 환경 속에 나타난 것"이라며 "다음 달 글로벌 주가지수(MSCI)의 편입 비중 변경으로 한국 주식 비중 축소가 예정되어 있는데 이때 외인 자금이 유출되면 주가가 흔들릴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올 1분기(1~3월) 기준으로 '바이코리아'에 나선 외국인 자금의 59%가 케이맨제도·버진아일랜드·룩셈부르크 등과 같은 조세 회피 지역에서 왔다는 점도 변수다. 이런 국적의 자금은 대부분 소수의 투자자에게 자금을 모아 운영하는 헤지펀드인데, 단기 투자 성격이 강하다. 이들이 갑자기 차익 실현 목적에서 매도로 돌아서 대규모 물량을 쏟아내면 주가가 버텨내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