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을 자주 하는 소비자가 보험을 들면 해외에 있는지 여부에 따라 보장 효과가 '켜졌다가 꺼지는' 온오프(On-off) 보험 상품이 연내에 나온다. 현행법에 따르면 소비자는 해외여행을 갈 때마다 별도의 보험을 들어야 한다. 당연히 매번 상품 설명을 듣고, 가입 서명까지 해야 해 번거롭다. 그런데 이번에 선보이는 상품은 금융규제 샌드박스법(금융혁신지원특별법)에 따라 예외를 인정받아 해외여행 중에만 보험 효력이 살아나도록 설계돼 그런 불편함을 없앤 것이다. 금융위원회는 17일 이런 내용을 포함한 혁신금융서비스 9건을 지정해 발표했다. 금융계에서는 "굵직한 규제 혁신이라기보다는 소비자 편의를 조금씩 개선한 것들이 대부분"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금융 분야서 첫 혁신 사례 9건 나와
규제 샌드박스란 미래 성장 가능성이 높은 혁신 사업에 대해 시한을 정해 기존 규제를 없애주는 제도다. 우리나라는 작년 말 국회에서 산업융합촉진법(산업통상자원부), 정보통신진흥및융합활성화등에관한특별법(과학기술정보통신부), 금융혁신지원특별법(금융위원회 소관) 등 3개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올해 1월부터 제조업과 IT 분야에서 혁신 서비스가 하나둘 선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금융 분야는 국회에서 법의 발효 시점을 4월 1일로 정하는 바람에 첫 서비스가 석 달 늦게 나왔다. 권대영 금융위 금융혁신단장은 "시작은 늦었지만, 사전 심사를 통해 19건의 심사 대상을 정해 그중 9건을 먼저 지정한 것"이라며 "앞으로 매달 설명회를 열어 다양한 혁신 시도가 나오도록 독려할 것"이라고 했다.
◇QR코드 결제 등 '소소한' 혁신이 주류
이날 허용된 9개의 혁신금융서비스는 모두 금융산업의 틀을 흔들 만한 굵직한 시도보다는 소소하게 소비자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데 초점을 맞춘 것들이다. 가입자가 해외에 있는지 여부에 따라 보험의 보장 효과가 살아났다가 사라지는 온오프 보험이 대표적이다.
QR코드로 노점상이나 푸드트럭에서 간편하게 물건값을 결제하는 서비스도 내년 초쯤 등장한다. QR코드란 바코드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담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격자무늬의 2차원 코드인데, 보통 스마트폰으로 그 내용을 읽어낼 수 있다. '중국에선 거지들도 QR코드를 앞에 놓고 구걸을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QR코드 사용이 일상화돼 있는데 우리나라는 이제야 가능해진 것이다. 비씨카드는 관련법상 사업자 등록을 해야 QR코드를 이용할 수 있는 여신금융전문업법(이하 여전법) 규제에 예외를 신청해 혁신금융서비스로 인정을 받았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이 서비스가 허용되면 소상공인들이 별도 단말기 없이 물건값을 받을 수 있고, 외국인 관광객들도 쉽게 스마트폰으로 물건값을 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신용카드만으로 경조사비를 내거나, 중고물품 장터에서 물건값을 내는 서비스도 내년 초에 출시된다. 신한카드는 은행 잔고가 없어도 자사 카드만 있으면 대금을 결제하는 서비스를 제안해 이번에 금융 당국의 승인을 받았다. 여전법에 따르면 카드로 이런 결제 서비스를 받으려면 가맹점 사업자로 등록을 해야 하는데, 소비자 편익을 위해 예외를 인정받은 것이다. 이 밖에 카드 사용 정보를 활용한 개인사업자의 신용평가 서비스(신한카드·올해 10월), 문자(SMS) 인증 방식의 온라인 간편결제 서비스(페이플·올해 7월), 개인투자자 간에 주식을 빌려주고 수수료를 받을 수 있는 서비스(디렉셔널·올해 6월) 등도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돼 조만간 선을 보일 전망이다.
금융위는 이날 허용한 9건 이외에 우선 심사 대상으로 선정된 남은 10건도 5월 초까지 허용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사전 신청을 받은 86건의 사업 아이디어에 대해서도 5월 중에 정식 접수를 해 상반기 중에 허가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