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주주 지분율 적고 지배구조 불투명한 기업 '타깃'
"오너 사익추구 견제" 평가 속 "한탕주의" 비판도

행동주의 주주 열풍 속에 과도한 배당을 요구하는 일부 소액주주들의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최대주주 보유 지분율이 낮으면서 배당 규모가 적은 기업들은 이들 '한탕주의' 세력에 타깃이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기업의 장기적인 발전을 도모하는 건전한 행동주의 문화를 정립하기 위해서는 주주 제안 요건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16일 증권업계에서는 최근 소액주주의 주주 제안으로 홍역을 치른 한솔홀딩스(004150)의 사례가 회자되며, 주주 행동주의의 다음 표적이 될 유력 기업들이 거론되고 있다. 한솔홀딩스는 지난달 26일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외국인과 기관투자자들의 지원 덕에 유상감자 및 김택환 사내이사 선임 안건을 간신히 막을 수 있었다.

당시 소액 주주 연대는 한솔홀딩스 측에 주식 136억원어치를 사들여 소각하라는 제안과 함께 주당 250원의 현금 배당을 요구했다. 또 김택환 씨를 사내이사로 선임하라는 요구도 했다. 250원 현금 배당 안건은 배당가능 이익이 없어 안건으로 상정하지 못했으나 나머지 유상감자나 사내이사 선임 안건은 주총에서 표 대결을 벌여야 했다.

한솔홀딩스는 지난해 당기순손실 321억원을 기록한 상황에서 순현금(차입금을 뺀 현금보유고) 218억원 중 상당 부분을 주주환원에 쓸 경우 기업의 장기 투자 재원이 없어진다고 보고 이 안건을 필사적으로 저지했다.

한솔홀딩스의 조동길 회장과 한솔문화재단 등 특수관계인이 보유한 지분은 20.4%에 그친다. 주총 표대결에 소액주주 연대가 20% 넘는 표를 모아오며 상당한 위협이 됐으나 국민연금(1.76%) 등 기관 투자자들과 외국인이 한솔홀딩스의 손을 들어주면서 가까스로 위기를 면했다.

조선DB

한솔홀딩스는 지난해 387억원의 순손실로 배당가능 이익이 부족해 배당 결의를 하지 않겠다고 지난 2월 발표했다. 대신 한솔홀딩스 측은 무상감자 및 중간 배당을 실시할 수 있도록 정관 변경을 추진했다. 무상감자로 인해 주식 가치가 하락할 것이란 부정적 인식으로 소액주주의 불만이 고조되고, 일각에서는 무상감자가 오너 일가 지분의 상속세를 낮추기 위한 것 아니냐는 소문이 돌자 한솔홀딩스는 열흘 만에 무상감자 계획을 철회했다.

증권업계에서는 김택환 씨가 다음으로 어떤 기업을 택할 지 주목하고 있다. 한솔홀딩스 오너 일가에 위협적 존재로 주목을 받은 김 씨는 앞서 2015년에도 소액주주로 성창기업지주(000180)를 상대로 액면분할 및 배당확대를 이끌어냈다. 당시 소액주주들을 규합해 상근감사에도 선임돼 화제가 됐다.

성창기업지주는 불투명한 기업지배구조 문제로 오랜 기간 소액주주와 갈등을 겪어왔다. 이사회 내에 사외이사 후보추천위원회나 보상위원회가 없고, 감사위원회도 없는 상황에서 2002년 오너 일가 소유의 개인회사에 부동산 등을 헐값에 매도해 수천억원 대 차익을 실현한 사건을 두고 논란이 지속돼 왔다. 2013년 3월 오너 3세에 넘긴 일광개발 지분 60% 중 19.61%를 83억7900만원에 매입해 11년 만에 500배 넘는 차익을 실현하는 등 사익 추구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컸다.

2017년에는 우노앤컴퍼니가 타깃이 됐다. 당시에도 김 씨는 지분율 0% 대의 소액 주주로서 현금배당, 주식배당, 유상감자 등을 요구했고 사내이사 및 감사 선임 주주제안을 냈다. 우노앤컴퍼니가 일본 기업과의 무리한 특허 소송으로 거액의 소송 관련 비용을 쏟아붓는 등 경영에 대한 소액주주들의 불만이 고조된 가운데, 장내 매수로 지분율을 늘린 개인투자자 김승호씨와 최대주주 오너 간 경영권 분쟁이 심화된 틈을 타 주주환원 정책을 요구하려 했던 것이다.

업계에서 김 씨를 바라보는 시각은 온도 차가 크다. 김 씨가 소액주주를 모아 경영 참여를 꾀했던 이들 기업 모두 대주주 지분이 10~20%대 수준이며 기업 지배구조가 불투명하고 주주환원 정책이 미진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런 문제들이 소액주주의 경영 참여로 개선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는 긍정적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대주주 지배력이 미약한 기업들을 골라 무리한 배당을 요구하는 등 기업의 장기 발전을 고려하지 않는 한탕주의에 가깝다는 비판도 나온다. 한 상장사 관계자는 "장기적으로 지분을 보유한 주주가 아니라 주주제안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요건만 갖춘 채 기업의 장기적 성장보다는 단발적이고 무리한 규모의 주주환원을 주장하고 있다"며 "오히려 장기 투자자의 이익을 저해하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부작용을 막기 위해 주주제안 제도를 더 엄격하게 운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상법은 상장사의 경우 주식 1% 이상(자본금 1000억원 이상은 0.5%, 금융회사는 0.1%)을 6개월 전부터 계속 보유한 자에게 주주제안 자격을 부여한다.

또 다른 상장사 관계자는 "비상장사의 경우 주주제안 자격 기준을 지분 3% 이상으로 두고 있는데, 이에 부합하는 수준으로 제도를 바꿔야 한다"며 "기업에 대한 장기 투자를 독려하는 정책 방향에 발맞춰 지분 보유 기간도 1년으로 변경한다면 지금보다 좀 더 건설적인 주주제안이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