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시흥에 있는 자동차 실린더 헤드 제조업체 A사. 이 회사는 지난해 말부터 올 초 사이 180명의 직원을 추가 고용했다. 현재 직원 수는 660명으로 1986년 설립 후 가장 많은 수준이다. A사가 고용을 늘린건 주 52시간제 도입으로 근무 형태가 2조3교대에서 3조2교대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A사 관계자는 "주 52시간 근로제를 맞춰 현 생산량을 유지하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문제는 앞으로다. 매출 2400억원(2017년 기준)을 기록한 A사는 주로 현대자동차에 제품을 납품한다. 하지만 올 들어 자동차 경기가 나빠지면서 물량이 점점 줄고 있다. A사 관계자는 "인력을 늘려 인건비는 증가했는데, 물량이 나오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직원 300인 이상의 중견기업이 이달 1일 시행된 주 52시간 근로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내 중견기업 대부분은 대기업에 제품을 납품하는 협력업체다. 이들이 주 52시간 근로제를 위반하지 않고 대기업의 물량 납기를 맞추려면 줄어든 근로 시간만큼 인력을 고용해야 한다. 법적으로는 한 주에 기본 근무 40시간과 12시간의 추가 근무가 가능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대한상의가 지난해 대·중견기업 317개사를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32.7%가 주 52시간 근로시간제로 근무 시간 관리에 부담을 느꼈다. 31%는 납기와 연구개발(R&D) 등 주요 업무에 차질을 겪을 것으로 내다봤다. 15.5%는 인건비 상승 문제를 예상했다.
그렇다고 중견기업이 대기업에 '납품 기한을 미뤄 달라' '물량을 줄여 달라'고 말할 수는 없는 형편이다. 대기업과의 거래가 끊기면 회사 문을 닫아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 중견기업 사장은 "정부가 대기업 물량에 의존하는 중견기업의 현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며 "납품단가 인하 등 대·중소기업 간 구조적 문제를 풀겠다고 한 게 엊그제인데 또 다른 잘못된 구조를 만드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고 말했다.
가장 큰 문제는 앞으로 경기가 그리 좋지 않다는 점이다. 주 52시간 근로제로 울며 겨자 먹기로 직원을 늘렸는데, 물량이 줄었다고 인력을 감축하는 것은 쉽지 않다.
조병선 중견기업연구원 원장은 "근로 시간을 줄이고 고용을 늘리려면 해고 등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여야 한다"며 "호황일 때는 문제가 없지만, 불황으로 물량이 줄면 중견기업이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이지만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근로 시간 단축으로 고용을 늘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숙련공은 채용하는 것 자체가 힘들고 비숙련공은 자동화 기계가 대체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