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부터 주기적으로 회계법인 변경해야지만
회계사가 이직해서 같은 기업 맡아도 제재 못해
외부감사인의 독립성을 높이기 위해 기업이 주기적으로 감사인을 변경하도록 하는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가 오는 10월부터 본격 시행되지만, 제도 허점을 이용해 실질적으로 감사인을 변경하지 않을 수 있는 방안이 업계 일각에서 논의되고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일 회계업계에 따르면, 기업과 회계법인들은 감사인 변경에 따른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변경 지정될 회계법인으로 기존 감사인이 이직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논의하고 있다. 가령 삼성전자(005930)의 감사인이 삼일회계법인에서 A회계법인으로 변경된다면, 삼일회계법인에서 삼성전자의 감사를 담당해왔던 감사팀이 A회계법인으로 이직해 그대로 삼성전자 감사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방식이다.
지난해 도입된 신 외부감사법에 따라 2020년 회계연도부터 주기적 지정 감사제도가 시행된다. 이는 기업이 6년 간 자유수임을 하고 이후 3년은 금융당국이 지정해 주는 감사인을 수임하도록 하는 제도다. '자유수임 6년'은 제도 시행과 동시에 소급 적용이 되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올해 감사인 계약부터 변경해야 한다. 자산 규모 등을 감안해 대기업 220곳에 우선 도입, 삼성전자 등 주요 기업들은 대부분 해당될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당국은 5~9월까지 회계법인으로부터 감사인 등록 신청을 받고, 9월부터는 우선 적용 기업 220곳을 선정한 후 해당 기업과 컨설팅 계약 등 이해관계가 있는 회계법인이 어디인지 등을 솎아내는 작업을 할 예정이다. 이어 10월 말께 결과를 종합해 기업과 회계법인 지정해 발표할 것으로 예상된다.
오랜 기간 동일 감사인과 계약을 맺어왔던 기업들은 감사인 변경에 따른 위험이 심각하다고 보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감사인을 변경해야 하는 기업은 기존 감사에서는 유연하게 반영됐던 내용이 지정감사로 뒤집어질 수 있는 위험이 있다.
새로 지정된 감사인도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길지 않은 시간동안 방대한 분량의 자료를 검토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삼성전자의 경우 해외 지사나 계열사의 재무제표는 물론, 자산 가치 평가의 근거가 되는 전문 자료들을 분석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업계에서 가장 유력한 방안으로 거론되는 것이 '감사인의 이직'이다. 예컨대 금융당국이 A상장사의 지정 감사인을 선정해 발표하면 기존에 A상장사의 감사를 맡아왔던 회계사가 지정 감사인이 된 회계법인으로 이직해 A상장사의 감사를 그대로 수행하는 방식이다.
한 회계법인 관계자는 "기존에도 회계사가 회사를 옮기면 그 회계사가 감사를 맡았던 클라이언트(기업)도 함께 따라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며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는 금융당국이 회계법인을 지정하는 것이지 특정 회계사를 지정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규정을 위반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특히 대기업의 경우 대부분 빅4(삼일·안진·삼정·한영)를 채택하고 있는데다, 금융당국이 지정 감사인을 선정할 때 컨설팅 등 비(非)감사부문 계약이 있는 1~2곳의 회계법인을 제외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정 감사인이 어디가 될지 예측이 가능해 이 같은 대응이 용이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움직임이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의 도입 취지를 훼손할 수 있다며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한 회계법인 관계자는 "구조적으로 빅4에 쏠린 감사 시장에서 또 다시 빅4 중심의 주기적 지정제를 구현해 제도적 허점을 만들었다"며 "단순히 회계법인 간판만 바꿔달고 동일한 감사 담당자가 감사를 하게 된다면 기업과 감사인 간 유착 관계를 해소하고 회계 투명성을 제고하려는 법 취지가 실현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