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이변’은 일어나지 않았다. 미국의 행동주의펀드인 엘리언매니지먼트가 현대자동차와 현대모비스(012330)에 제시한 고배당 지급과 사외이사 선임안이 주주총회에서 모두 부결됐다.

22일 치러진 현대차와 현대모비스의 주총에서 주주들은 압도적인 표차로 주요 안건에서 모두 회사측의 손을 들어줬다. 엘리엇과의 주총 표 대결에서 압승을 거둔 현대차와 현대모비스는 당초 우려했던 고배당 지급 가능성이 사라지게 돼 큰 짐을 덜게 됐다.

주총을 통해 주주들의 지지를 확인함에 따라 향후 정의선 현대차그룹 총괄 수석부회장을 중심으로 한 그룹 지배구조 개편 작업도 한층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 현대차·모비스, 배당과 사외이사 선임안 모두 사측이 압승

이원희 현대차 사장(가운데)이 22일 서울 양재동 본사에서 열린 주주총회를 진행하고 있다.

현대차는 이날 오전 9시 서울 양재동 본사에서 주총을 열고 이사회가 제안한대로 보통주 1주당 3000원을 배당하기로 결의했다. 찬성률은 86%로 집계됐다.

엘리엇은 현대차에 이사회가 제안한 배당금의 7배가 넘는 보통주 1주당 2만1967원을 배당하라고 요구해 왔다. 이에 대해 글로벌 양대 의결권자문사인 ISS와 글래스 루이스, 국내 의결권자문기관 등은 모두 엘리엇이 요구한 배당 요구가 지나치게 많아 회사의 성장성을 저해한다는 이유를 들어 반대의견을 제시했었다.

현대차 주주들은 사외이사 선임 안건에서도 회사측의 손을 들어줬다. 이날 주총에서 진행된 표결에서 주주들은 77~90%의 찬성률로 이사회가 추천한 윤치원 UBS 그룹 자산관리부문 부회장과 유진 오 전 캐피탈그룹 인터내셔널 파트너, 이상승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등 3명을 사외이사로 선임하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추천한 존 Y. 류 베이징사범대 교육기금이사회 구성원 및 투자위원회 의장, 로버트 랜들 매큐언 발라드파워시스템 회장, 마거릿 빌슨 CAE 이사 등 3명의 선임안은 부결됐다.

현대차 직원들이 사외이사 선임 안건에 대한 개표를 진행하고 있다.

현대모비스(012330)도 배당금 지급 규모와 사외이사 선임 등 주주총회의 주요 안건에 대한 표결에서 사측이 미국의 행동주의펀드인 엘리엇매니지먼트에 모두 승리했다.

현대모비스는 이날 서울 역삼동 현대해상 빌딩에서 열린 주총에서 이사회가 제안한대로 보통주 1주당 4000원을 배당하기로 결의했다. 찬성률은 69%였다.

엘리엇은 현대모비스에 이사회가 제안한 배당금의 6배가 넘는 보통주 1주당 2만6399원을 배당하라고 요구한 바 있다. ISS와 글래스 루이스는 현대차와 마찬가지로 현대모비스도 엘리엇의 배당 요구액이 지나치게 많다는 의견을 내놨다.

사외이사 선임 안건에서도 현대모비스 이사회가 추천한 브라이언 D 존스 아르케고스캐피탈 공동대표, 칼 토머스 노이만 전 오펠 최고경영자(CEO) 등 2명이 모두 주주들의 선택을 받았다.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추천한 로버트 크루즈 카르마오토모티브 최고기술책임자(CTO)와 루돌프 윌리엄 폰 마이스터 전 ZF 아시아퍼시픽 회장 등 2명의 선임안은 부결됐다. 이사 정원을 늘리자는 엘리엇의 제안도 주총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 정의선 부회장 중심으로 그룹 지배구조 개편 가속화 전망

현대차와 현대모비스의 이번 주총은 어느 정도 예상된 결과였다는 평가가 많다. 주주들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의결권자문사들 뿐 아니라 두 회사의 주요 주주인 국민연금마저도 엘리엇의 제안에 대해 반대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당초 현대차그룹이 가장 우려했던 일은 엘리엇이 제안한 인사가 사외이사로 선임되는 안건이 통과되는 것이었다. 엘리엇은 사외이사진에 진입할 경우 이사회에 들어가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경영에 참여할 계획이었지만, 주총에서 단 한 명의 사외이사도 배출하지 못했다.

지난 1월 2일 치러진 현대차그룹 시무식을 주재하는 정의선 부회장

금융시장 관계자들은 이번 주총이 사측의 압승으로 끝나면서 향후 정의선 총괄 수석부회장이 중심이 된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작업이 가속화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현대차와 현대모비스는 이날 주총이 끝난 뒤 이사회를 열어 정의선 부회장을 대표이사로 선임하기로 했다.

이번 주총은 그룹 지배구조 변경 계획 발표를 앞두고 마지막으로 열리는 주총이 될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부터 그룹 지배구조 개편 계획에 반대해 온 엘리엇이 당초 예상보다 큰 힘을 갖지 못한 것으로 드러난 데다, 이번 주총을 통해 국민연금을 비롯한 주주들의 지지를 확인하게 돼 현대차그룹은 지배구조 개편에 더욱 속도를 낼 것으로 관측된다.

강성진 KB증권 연구원은 "이번 주총의 주요 안건 표 대결이 사측이 엘리엇에 큰 표차로 승리함에 따라 현대차그룹은 일반주주의 지지에 대해 낙관적 가정을 갖고 지배구조 변경을 준비할 가능성이 커졌다"며 "정의선 부회장이 핵심 지배기업의 지분을 직접 취득하고 지배구조 변경을 조기에 마무리하는 공격적인 계획을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