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신종자본증권(영구채)을 회계상 자본이 아닌 부채로 분류해야 한다는 의견을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B)에 제출했다. 영구채를 부채로 인식하게 되면 부채 비율이 급증해 자본잠식에 빠지는 기업이 등장해 파장이 커질 전망이다. 금감원이 이를 대비해 기업들에게 지난해부터 영구채 발행을 자제할 것을 당부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20일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IASB가 부채와 자본 구분이 모호한 영구채에 대한 분류 기준을 만들기 위해 각국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며 "IASB가 제시한 부채와 자본의 특성에 근거하면 영구채는 부채로 분류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봤다"고 말했다.

국제회계기준(IFRS)을 제·개정하는 국제 기구 IASB는 최근 금융상품 표시 회계기준(IAS32) 개정 작업을 하면서 회원국 의견을 취합하고 있다.

중요한 쟁점 중 하나인 영구채에 대해서 그동안 금감원은 부채 성격이 있지만 원금상환 의무가 없어 유권해석을 통해 회계상 자본으로 인정해왔다. 하지만 IASB가 ‘금융 부채’의 개념을 새롭게 제시하면서 금감원의 판단도 180도 달라졌다. IASB는 현금이나 다른 금융상품을 청산에 앞서 지불해야 하고, 성과나 주가에 상관없이 보유자에게 특정 금액의 수익을 약속해야 할 경우 금융부채라고 봤다. 특히 영구채 가운데서도 누적 방식의 이자를 지급하는 영구채의 경우 부채로 인식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입장이다.

전 세계 각국의 의견을 취합하고 충분한 논의 절차를 거쳐 회계기준 개정까지는 최소 2~3년이 걸리기 때문에 당장 이슈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관련 업계에서는 IASB의 영구채가 부채로 분류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보고 있다.

이에 따른 업계 충격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한 회계 전문가는 "IASB의 영구채 관련 프로젝트는 오래 전부터 진행됐고 금감원도 관련 사실을 인지해 지난해부터 기업들에게 영구채가 부채로 분류될 가능성을 대비해 발행을 자제해달라는 당부를 해 온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영구채 발행 규모는 여전히 높다.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영구채를 발행한 국내 기업은 모두 73곳으로 발행 금액은 총 29조5338억원에 달한다.

이들 기업이 영구채를 부채로 분류할 경우 부채비율이 평균 51.9%포인트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SK해운은 부채비율이 8297.4%포인트, 신세계건설은 197.5%포인트 증가한다. 대우조선해양과 대한항공도 부채비율이 각각 557.5%포인트, 230.0%포인트 높아질 전망이다.

2022년 부채를 시가평가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새 국제회계기준(IFRS17) 도입을 앞두고 영구채 발행을 늘린 보험업계도 대책이 시급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