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총액이 8218억원에 달하는 제약회사 케어젠(214370)이 회계법인으로부터 감사의견 거절을 받은 배경은 해외 업체와 맺은 공급계약의 신뢰성 부족 때문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1월 신외감법(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도입 이후 회계법인이 디지털포렌식을 통해 계약서 신뢰성을 검증하는 추세인 만큼, 앞으로 케어젠처럼 '의견 거절'을 받는 상장사는 더 나올 것으로 보인다.

케어젠은 감사의견 비적정설을 묻는 조회공시 답변에 "외부감사인으로부터 일부 해외매출 및 매출원가의 정확성에 대한 의구심을 해소할 수 있도록 외부 전문가를 선임해 조사(디지털 포렌식 등 포함)할 것을 요구받았다"고 밝혔다.

진홍국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회계법인은 케어젠의 해외 공급계약을 의심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회사는 이의신청을 할 계획인데, 이의신청이 받아들여지려면 해외에서 발주자가 믿을만한 계약서를 다시 보내줘야 한다"고 했다. 디지털포렌식이란 PC나 노트북, 휴대폰 등 각종 저장매체 또는 인터넷상에 남아 있는 각종 디지털정보를 분석해 범죄 단서를 찾는 수사기법을 말한다.

◇"범죄자 취급, 기분 나쁘다"지만…점점 활용되는 디지털포렌식

19일 증권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신외감법 도입에 따라 감사인이 느끼는 부담은 상당히 큰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 기밀 정보도 요구할 수 있을 정도로 권한이 세졌지만 부실감사를 했을 경우 담당 회계사는 물론 회계법인 대표도 해임 및 직무정지되는 제재 근거가 마련됐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가장 주목받게 된 영역이 매출채권이다. 매출채권은 받을 어음이나 외상매출 등 당장 현금 유입은 없지만 앞으로 받게 될 자금을 말한다. 과거에는 계약서만 있으면 넘어갈 수 있었지만, 올해 들어서는 디지털포렌식 등으로 매출계약이 실제로 어떤 과정을 거쳐 신뢰성 있게 추진됐는지 검증해야 하는 것이다. 디지털포렌식을 요구받았던 한 상장사 최고재무책임자(CFO)는 "개인 휴대폰까지 제출하라고 한다"면서 "범죄자로 의심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상당히 불쾌했다"고 했다.

디지털 포렌식 도입은 찬반양론이 팽팽하다. 일단은 긍정적 측면이 있다. 지난해 9월 상장폐지된 성지건설이 대표적인 예다. 외부감사인인 한영회계법인은 성지건설에 대해 "회사측이 발행한 전환사채(CB) 자금이 대주주로 흘러들어간 정황이 포착됐다"면서 의견 거절을 냈다. 회사 측은 이에 불복해 소송이 진행 중이다.

문제는 시간이다. 지난해 9월 상장폐지 결정이 내려졌던 감마누, 넥스지 등은 상장폐지 실질심사 기간 도중 디지털포렌식 자료 제출을 요구받았는데, 자료 분석에 너무 긴 시간이 걸려 데드라인을 지키지 못했다. 감마누의 한 소액주주는 "디지털포렌식을 요구하려면 그것에 맞게 재감사 기간 등도 충분히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견거절 잇따를 듯…상폐는 최대 1년 유예

이날 기준 의견거절이 나온 상장사는 케어젠과 크로바하이텍, 라이트론등이다. 하지만 감사보고서는 주주총회 일주일 전까지만 제출하면 된다. 아직 감사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은 기업 중 상당수가 회계법인과 회계처리를 놓고 이견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올해는 최소 30개 이상의 상장사가 의견거절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주가가 급락한다고 해도 저점이라고 생각해서 섣불리 매수하지 말 것을 권고한다. 또 재무제표가 부실한 기업은 특히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올해는 감사의견 거절이 떠도 바로 상장폐지 절차를 밟지 않는다. 최대 1년간 상장폐지가 유예되며, 다음해 감사의견 적정을 받으면 실질심사를 거쳐 거래가 재개된다. 자본시장의 한 관계자는 "감사인과의 이견 하나만으로 상장폐지되는 건 부당할 수 있다고 본다"면서 "상장사 입장에서는 재감사를 받든지 아니면 시간을 두고 지정감사를 받든지 선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