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에 당선되면 ‘아마존, 페이스북, 구글, 애플을 분할(divesture)하고 규제하겠다."

하버드 법대 교수(경쟁법 전공) 출신으로 민주당 대선주자로 부상하고 있는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매사추세츠)이 실리콘밸리의 ‘빅 포’로 불리는 아마존, 페이스북, 구글, 애플 규제’ 공약을 지난 8일 발표, 미국의 정계와 실리콘밸리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연방거래위원회(FTC) 산하에 아마존, 페이스북 등 거대 IT 기업을 타깃으로 한 태스크포스 팀을 발족시킬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유럽연합(EU)의 잇딴 반독점 위반 혐의 조사와 수억달러에 달하는 과징금 부과, 노조 결성과 윤리 경영 주장 등 내우외환에 시달리는 실리콘밸리 IT 기업들이 미국 정치를 양분하는 공화당, 민주당 양당의 협공을 받으면서 기술 혁신과 독점, 자율 경쟁과 규제 논쟁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미국 민주당 대선 주자인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이 대선에서 당선되면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 애플 등 ‘빅 포’ 기업들을 분할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 워런 의원, "혁신과 경쟁 갉아 먹는 기업 쪼개야"

워런 의원은 20세기 후반 이후 기술 혁신의 총아로 등장한 ‘빅 포' 기업들이 ‘글로벌 공룡 기업'으로 변모하면서 후발 주자, 경쟁기업들에 대한 ‘불법 인수합병'을 통해 시장 경쟁을 제한하고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제한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워런 의원은 페이스북의 인스타그램, 왓츠앱 인수합병, 아마존의 홀푸드 인수합병, 구글의 웨이즈(Waze·지도 제작 스타트업 기업), 더블 클릭(DoubleClick) 인수 합병을 대표적인 불법 인수합병 사례로 지목했다.

워런 의원은 온라인 기저귀 판매사인 ‘다이퍼스 닷컴' 강제 매각을 예로 들며 "아마존이 아마존 마켓플레이스에서 파는 타사 상품을 베껴 자사 브랜드 버전으로 판매, 소기업들을 몰락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워런 의원은 "모든 기업을 규제하자는 것이 아니라 연간 250억달러 이상 수익을 내는 플랫폼 운영 기업, 즉 대중에게 제3자를 연결해주는 온라인 마켓 플레이스 등을 운영하는 기업들이 분할과 규제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워런 의원은 "애플은 플랫폼을 운영하면서 앱스토어에 자사 앱을 팔고 있다.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며 "구매자와 판매자 정보를 모두 가지고 있는 애플이 자사 제품을 경쟁사 보다 더 유리하게 배치할 수 있는 권한 등 절대적인 이점을 누리고 있고 소비자 선택권은 제한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구글은 2017년과 2018년 유럽연합의 반독점법 위반 등으로 77억달러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선다 피차이 구글 CEO는 “안드로이드 생태계가 위협 받고 있다"며 반발했다.

◆ 최대 정유사, 통신사,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사 쪼갠 미국의 반독점법

미국의 독점 기업에 대한 기업 분할과 규제 역사는 1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산업이 고속 성장하던 1890년 미국 의회는 기업 트러스트와 독점을 금지하는 셔먼법(Sherman Act)을 제정했고, 1914년에는 클레이튼법(Clayton Act)과 연방거래위원회법을 통과시켰다. 대공황 이후인 1936년에는 클레이트법을 확대, 강화한 로빈슨 패트먼법(Robinson-Patman Act)을 만들었다.

1903년 출범한 미 법무부 산하 독점금지국(반독점국)은 당시 미국 최대 기업인 스탠더드 오일을 34개 회사로 쪼개라고 명령했다. 철도 회사들을 무차별 인수, 석유 수송망을 장악한뒤 차별적 운송 요금을 물리는 등 반독점법을 위반, 소비자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이유였다. 같은 해 미국 담배 시장의 90%를 독점하던 ‘아메리칸 토바코'도 16개 회사로 쪼개라는 명령을 받았다.

1948년 법무부는 파라마운트 등 대형 영화사들을 상대로 한 반독점 소송에서 승소, 영화 제작, 배급, 상영 등 수직 계열화를 통해 영화 산업을 지배하던 할리우드 5대 메이저 영화사(파라마운트, MGM, 워너 브러더스, 20세기 폭스, RKO 픽처스)의 독과점 구조를 깼다.

1984년 당시 세계 최대 통신사였던 ‘AT&T’가 22개 지역 기업(베이비 벨)으로 쪼개진 것도 법무부의 반독점 제소 때문이었다.

최근에도 엑슨과 모빌 합병(1998년·803억달러), AT&T와 T 모바일 합병(2011년·150억달러), 유에스 에어웨이의 아메리칸 에어라인 인수합병(2012년·110억달러), 컴캐스트와 타임워너 합병(2014년·450억달러) 등 초대형 기업 인수합병(M&A) 시도가 반독점법 위반으로 제재를 받았다.

한때 미국 전화 시장의 80%를 차지했던 세계 최대 통신기업 AT&T는 미 법무부의 반독점법 소송으로 1984년 1월 AT&T그룹(Ma Bell)과 7개의 지역 전화 사업자(Baby Bell, 니넥스, 벨 아틀란틱, 아메리테크, 벨사우스, 사우스웨스턴 벨, US 웨스트, 퍼시픽 텔레시스)로 분할됐다.

◆ 실리콘밸리 기술 기업 ‘사면초가’

‘빅 포’ 기업들은 전전긍긍하고 있다.

당장 애플은 지난 13일 음악 스트리밍 기업 스포티파이에 의해 반독점법 위반 혐의로 소송을 당했다.

대니얼 에크 스포티파이 CEO(최고경영자)는 "애플이 앱스토어 결제 시스템을 이용하지 않는 회사들의 앱 업데이트 출시를 막고 경쟁 기업들의 앱을 시리, 홈팟, 애플워치 서비스에서 이용하지 못하게 막고 있다"며 "애플은 앱스토어에서 선수와 심판으로 활동하며 경쟁자들에게 불이익을 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애플 등 플랫폼 기업에 대한 분할과 규제의 당위성을 역설한 워런 의원의 주장을 빼다박은 논리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을 향해 규제 공세를 펴고 있는 유럽연합의 공격은 갈수록 거세지고 있고 자동차, 철강 등 제조업 중심지인 ‘러스트 벨트(자동차, 철강 등 전통 산업의 중심지)’와 자영업자를 핵심 지지층으로 하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갈등의 골도 깊어지고 있다.

최근 ‘기술주 붕괴론’ 등 불길한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2001년 닷컴 버블 붕괴 이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잘나가던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안팎에서 불거지는 잇딴 악재에 어떻게 대처할 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