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진 셀트리온(068270)회장이 직접 제작한 첫 번째 영화로 화제를 모은 ‘자전차왕 엄복동’이 처참한 흥행 성적을 거두자 셀트리온 투자자들 사이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본업인 제약·바이오 영역에서의 주가 흐름도 부진한데, 굳이 다른 분야에 손을 대 불안감을 증폭시키냐는 것이다. 일부 소액주주들은 엔터테인먼트 사업 철회까지 주장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엔터 사업이 셀트리온 기업가치에 미치는 영향이 아주 미미해 걱정할 만한 상황은 아니라고 했다.

셀트리온이 자체 제작한 첫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의 한 장면

◇뿔난 주주들 "주가 회복부터"

12일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지난달 27일 개봉한 자전차왕 엄복동의 누적 관객 수는 이달 10일 기준 16만8782명으로 집계됐다. 누적 매출액은 12억7800만원이다. 같은 날 개봉한 ‘항거:유관순 이야기’의 관객 수가 104만명을 돌파한 것에 비하면 초라한 숫자다. 두 영화의 제작비가 각각 150억원, 10억원인 사실을 감안하면 자전차왕 엄복동의 실패는 더 아프게 다가온다.

기대작의 충격적인 흥행 참패 소식에 셀트리온 주주들은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자전차왕 엄복동은 셀트리온홀딩스가 지분 100%를 보유한 셀트리온엔터테인먼트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셀트리온홀딩스의 최대주주는 지분 94%를 가진 서정진 회장이다. 지주사(홀딩스)와 화장품 계열사인 셀트리온스킨큐어가 이 영화 제작비 전액을 댔다.

한 소액주주는 인터넷 주식투자 커뮤니티에 "손익분기점이 400만명인데 관객 수는 17만명을 밑돈다. 앞으로 이런 말도 안 되는 투자는 서 회장 사비로 하라"고 적었다. 또 다른 주주는 "한 우물을 꾸준히 파도 쉽지 않은 현실에 문어발식 사업 확장을 하려는 것인가. 그냥 본업인 바이오시밀러(바이오 복제약)에 더 집중했으면 한다"고 썼다.

셀트리온 주가의 부진한 움직임은 영화 제작을 바라보는 주주들의 시선을 더 차갑게 만들고 있다. 11일 유가증권시장에서 셀트리온은 전거래일보다 0.49%(1000원) 하락한 20만5000원에 마감했다. 사흘 연속 약세다. 지난해 3월 이 회사 주가는 40만원에 접근했으나 1년 만에 반토막이 났다. 올해 최저치(종가 기준)는 1월 17일에 기록한 19만5500원이다. 한 개인 투자자는 "영화 만들 시간에 주가 끌어올릴 아이디어나 짜라"고 했다.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오른쪽)이 2015년 3월 10일 충북 청주에서 열린 셀트리온제약 오창공장 준공식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다. 이날 행사 진행은 영화배우 이범수씨(가운데)가 맡았다. 이씨는 현재 셀트리온엔터테인먼트 공동대표로 재직 중이다.

◇셀트리온 엔터 투자 지속된다

투자자들은 불안해하고 있지만, 엔터 사업은 서정진 회장이 제법 오랜 기간 공들여 키우고 있는 영역이다. 어느날 갑자기 1회성 이벤트로 자전차왕 엄복동 제작·배급을 결정한 게 아니라는 의미다. 제약·바이오업계 한 관계자는 "서 회장이 다방면에 관심이 많다는 사실을 업계 사람은 다 안다"며 "엔터 사업도 그중 하나"라고 했다.

셀트리온엔터테인먼트의 전신은 2012년 1월 설립된 드라마 제작사 ‘드림이앤엠’이다. 드림이앤엠은 KBS 드라마 ‘왕가네 식구들’과 MBC 드라마 ‘내 생애 봄날’, JTBC 드라마 ‘청춘시대’ 등을 제작했다. 서 회장은 2015년 2월 드림이앤엠 매니지먼트 사업부문 총괄 책임자로 배우 이범수씨를 영입하고 2017년 3월 회사 이름을 지금의 셀트리온엔터테인먼트로 바꿨다. 이씨는 현재 셀트리온엔터테인먼트 공동대표로 재직 중이다.

사명 변경과 함께 영화 분야까지 보폭을 넓힌 셀트리온엔터테인먼트는 자전차왕 엄복동에 앞서 리암 니슨과 이정재 주연의 영화 ‘인천상륙작전’에도 투자했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대우자동차 출신인 서 회장은 타고난 사업가라서 돈을 벌 수 있는 곳이라면 굳이 바이오가 아니어도 뛰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셀트리온의 덩치를 감안할 때 엔터 사업은 그리 우려할 만한 규모가 아니라고 진단했다. 엄여진 얼터너티브투자자문 이사는 "셀트리온 시가총액은 유가증권시장 4위에 해당하는 26조원"이라며 "150억원 투자한 영화가 망했다고 기업 밸류에이션(가치 대비 주가)에 변화가 생기지는 않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