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사모펀드(PEF) 10위권인 텍사스퍼시픽그룹(TPG)은 지난달 46억달러(약 5조2000억원) 규모의 '아시아 7호 펀드'를 조성해 중국·인도·한국 등에서 투자 기업 물색에 나섰다. 5년 전에 조성한 33억달러의 '아시아 6호 펀드'보다 40% 늘어난 금액이다. 또 다른 글로벌 사모펀드인 베인캐피털도 작년 12월 새로운 아시아 투자 펀드를 조성했는데, 글로벌 자금이 몰리는 바람에 35억~40억달러였던 목표를 뛰어넘어 46억4000만달러가 모였다.

굵직한 대형 글로벌 사모펀드들이 초(超)저금리로 넘쳐나는 글로벌 자금을 모아 아시아 시장에 눈독 들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11일 본지가 글로벌 컨설팅 업체 맥킨지앤컴퍼니(이하 맥킨지)로부터 단독 입수한 연간 사모펀드 분석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아시아 지역 밖에서 조성된 아시아 투자 사모펀드의 규모는 409억달러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2015년 92억달러가 조성됐던 것을 감안할 때 3년 만에 4.5배로 덩치가 커진 것이다.

일러스트=양인성

글로벌 사모펀드는 7~8년 정도의 장기 투자를 한다. 단기 차익보다는 미래 성장성이 높은 지역과 기업을 선점했다가 가치가 올랐을 때 매각해 수익을 높이는 전략을 쓴다. 그만큼 '돈 냄새'를 맡는 '투자 후각'이 뛰어나다. 결국 글로벌 사모펀드가 아시아 성장 전망을 보고 돈 보따리를 들고 찾아오는 것이다.

◇금융·IT·부동산까지… 전방위 투자

글로벌 사모펀드들은 금융·IT(정보통신기술)·제조업·부동산 등 아시아의 다양한 산업 분야에 투자를 확장하고 있다. 최근 아시아 투자에 가장 적극적인 글로벌 사모펀드는 자산 규모가 750억달러에 달하는 텍사스퍼시픽그룹(TPG)캐피털이다. 지난달 46억달러 규모의 '아시아 7호 펀드'를 조성한 TPG캐피털은 한국과도 연관이 깊다. TPG는 자회사인 뉴브릿지캐피털을 통해 1999년 옛 제일은행을 인수해 2005년 이를 스탠다드차타드은행에 매각해 커다란 차익을 올린 바 있다. 2003년에는 하나로텔레콤을 AIG 등과 공동 인수했다가 2007년 이를 SK텔레콤에 다시 매각하기도 했다. 2016년엔 한국에 사무소를 내고 이듬해 카카오의 자회사 카카오모빌리티 지분에 5000억원을 투자해 지분 30.3%를 취득하는 등 국내에서도 보폭을 넓히고 있다.

자산 규모 130억달러인 칼라일그룹 역시 지난해 6월 '아시아 파트너스 5호' 펀드에 65억5000만달러를 조성하며 아시아 투자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 펀드도 당초 목표였던 50억달러를 훌쩍 뛰어넘는 금액을 유치했다. 아시아 유망 기업 인수를 노리는 칼라일그룹은 작년 4월 TPG캐피털과 함께 중국의 IT 기업 '바이두(百度)'에 19억달러를 투자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베인캐피털(자산 규모 950억달러)도 지난해 12월 46억4000억달러의 신규 아시아 투자 펀드를 조성해 주로 중국과 일본·인도·호주에 본사를 둔 중견 기업에 투자할 예정이다. 베인캐피털은 지난해 5월 컨소시엄을 조성해 일본의 제조업체 도시바(東芝)메모리를 약 2조엔(약 20조원)에 인수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블랙스톤(자산 규모 340억달러)은 지난달 아시아 부동산 투자의 일환으로 한국의 '스타필드 하남' 쇼핑몰과 중국의 쇼핑몰 두 곳 등 총 3개의 아시아 지역 쇼핑몰에 총 4억8000만달러를 투자했다. 이 거래로 블랙스톤은 스타필드 하남의 지분 17.15%를 보유하게 됐다.

◇투자 매력 포인트는 아시아의 높은 잠재성장률

지난해 조성된 아시아 투자 사모펀드 409억달러 중 331억달러는 미국의 대형 사모펀드를 통해 조성됐고, 74억달러는 유럽 지역을 통해 유입된 것으로 나타났다. 2015년에 미국과 유럽에서 조성된 아시아 투자 사모펀드 규모는 각각 69억달러, 16억달러에 불과했었다. 불과 수년 전만 해도 대형 글로벌 사모펀드들의 관심 지역은 북미와 유럽 시장이었지만 이제는 중국·인도·베트남·말레이시아 등 아시아로 옮겨지고 있다. 맥킨지에 따르면 아시아에 투자하는 사모펀드는 2013년 이후 연평균 9%씩 성장하고 있다.

아시아에 투자하는 사모펀드가 급성장하는 것은 아시아 신흥국들의 잠재성장률이 다른 지역보다 월등히 높기 때문이다. 이용진 맥킨지 한국사무소 시니어파트너는 "북미 지역의 메가펀드(자산 규모 50억달러 이상)들이 자본을 배분하는 차원에서 최근 높은 성장률이 지속되고 있는 아시아 투자 비중을 늘리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IMF(국제통화기금)의 최근 경제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중국(6.2%), 인도(7.4%), 아세안(5.3%)의 성장률 전망치는 미국(2.5%)이나 유로존(1.6%) 국가보다 훨씬 높다. 아시아국 정부들도 외국인 투자 유치에 적극적이다. 아세안 국가들은 지난해 블록 내 모든 관세를 폐지해 사모펀드로 하여금 동남아 지역을 넘나드는 전략을 수립할 수 있게 했다. 중국 역시 지난해 금융업과 자동차 중공업, 전력 등 지금까지 문을 닫고 있던 분야에 외국인 투자를 허용하는 등 제도 개혁을 진행 중이다.

박석중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이미 거대한 성장을 이룬 북미 시장이나 최근 경기 침체 양상을 보이고 있는 유럽 시장은 사모펀드 입장에선 매력이 떨어지는 지역이기 때문에 아시아를 주목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