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의 유일한 성장 엔진인 반도체 시장에 대한 경고음이 더 커지고 있다. 미국의 반도체 시장조사기관인 WSTS (세계반도체무역통계)는 지난 20일(현지 시각) 발표한 보고서에서 "올해 반도체 시장 규모는 작년보다 3% 줄어든 4545억4700만달러(약 511조3600억원)를 기록하고,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14.2% 감소한 1355억5700만달러로 축소될 것"이라고 밝혔다. WSTS는 작년 11월만 하더라도 세계 반도체 시장은 2.6% 성장하고,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0.3% 하락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불과 3개월 만에 전망치를 대폭 내렸다는 것은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하강 속도가 그만큼 빠르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라고 했다.
이에 따라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60% 이상을 장악한 한국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실적은 물론이고 한국 경제 전반이 충격을 받을 가능성이 커졌다. 반도체는 한국 수출의 2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만 폭락… 그 이유는
메모리 반도체의 공급 과잉 현상과 가격 하락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대만의 시장조사업체인 D램익스체인지는 "작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공급 과잉 현상이 심각해지면서, 기업의 재고도 늘어났다"고 밝혔다. 핵심 수요처였던 클라우드(가상 저장공간)용 서버 업체들이 주문을 확 줄이면서 반도체가 창고에 쌓여간다는 것이다. SK하이닉스는 작년 4분기 기준 재고자산 규모가 1년 전보다 67.5% 늘어난 4조4230억원이었다. 삼성전자 반도체 재고도 10조원이 훌쩍 넘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의 주력 반도체인 D램 가격은 작년 10월 이후 27% 하락했다. 업계에서는 2분기에 가격이 15% 더 하락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 반도체 기업에 대한 견제 움직임도 거세다. 미·중 무역 전쟁의 합의 과정에서 중국이 미국 반도체를 6년간 2000억달러 이상 사들이겠다고 밝히면서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역풍을 맞을 우려가 커진 것이다.
◇기업들 "충분히 버틸 수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실적 전망치도 내려가는 중이다. 금융조사업체인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해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에 대한 증권사들의 전망치는 작년보다 35% 하락한 38조원이다. 이익 하락분 중 대부분은 반도체에서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SK하이닉스 영업이익도 작년의 절반 수준인 10조원 안팎일 것으로 증권사들은 전망하고 있다.
이는 매달 발표되는 수출 실적에서 확인되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이달 1~20일 집계된 반도체 수출은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27.1% 감소했다. 작년 12월 8.3%, 1월 23.3%이었던 전년 동기 대비 하락폭이 더 커지는 중이다.
단, 우리 반도체 기업들은 "현재 하강 국면은 버텨낼 수 있으며 하반기엔 반등 가능성도 있다"는 입장이다. 지난 1월 문재인 대통령과 기업인들과 대화에서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언급했던 '진짜 실력'을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시장에서 독점적인 지위를 가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이익 감소는 피할 수 없겠지만, 과거처럼 생존을 건 극단적인 가격 경쟁은 벌이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 반도체 업계 고위 관계자는 "지금 보면 하락폭이 가파르지만 시장 상황은 2016년이나 2010년 초반의 메모리 하강 국면보다는 훨씬 나은 편"이라며 "아무리 나빠도 2017년보다는 시장 규모가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여기에 스마트폰에 탑재되는 D램·낸드플래시의 대용량화에 인공지능(AI)·자율주행차 등의 메모리 반도체의 수요가 급증하면서 예상보다 빨리 시장이 회복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