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박승철(33)씨는 요즘 밤마다 컴퓨터 사양을 맞춰보는 재미에 푹 빠졌습니다. 미혼인 박씨의 소소한 취미는 퇴근 후 즐기는 게임 한 판입니다. 6년 전 취업 직후 구매한 PC가 슬슬 '삐걱삐걱'하는 와중, D램과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가격이 한창 비싸던 때의 '절반'이 됐습니다. 박씨는 "이참에 컴퓨터를 넉넉하게 업그레이드할 생각에 즐겁다"고 했습니다.
최근 D램과 낸드플래시메모리 가격이 급속도로 하락하며 삼성전자(005930), SK하이닉스(000660)등 국내 반도체 업체들의 실적이 악화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소비자 입장에서 반도체 가격 하락은 곧 '물가 하락'입니다. 지난 2년간 고공행진하던 메모리 가격에 컴퓨터 부품 구입을 미루던 사람들이 "지금이 적기"라며 쾌재를 부르고 있습니다.
밀려드는 D램·SSD 구입에 부품 판매업체들도 호황입니다. 전자제품 가격비교 사이트 다나와 관계자는 "보통 1~3월은 방학을 맞아 수요가 늘어나는 시기지만, 최근 메모리 가격 하락으로 사이트 방문자가 예년보다도 급증하고 있다"며 "올 1월 판매량이 역대 1월 판매량 최고치를 경신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용산 전자상가를 오가는 택배차량도 확연히 늘어났다"고 전했습니다.
◇ D램·SSD 가격 1년 전 '절반'... 휴대전화도 용량 늘어
요즘 메모리는 가격이 하루가 다르게 내려가 미리 구매한 소비자들은 배가 아플 정도입니다. 국내외 '표준'인 삼성전자 D램 가격은 고점대비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다나와에 따르면 지난 1월 22일 5만8300원이던 삼성전자 DDR4 8GB PC4-21300(2666mhz) 램 최저가격은 지난 14일 5만3370원을 기록, 3주만에 5000원(8.5%)가량 떨어졌습니다. 지난해 4월 9만9270원으로 최고점을 찍었는데 10개월여만에 절반(46%) 가격이 됐습니다.
SSD의 사정도 비슷합니다. 다나와 판매순위 2위인 삼성전자의 860 EVO(500GB) 가격은 지난해 3월 20만2300원에서 지난 14일 기준 10만590원으로 떨어졌습니다. 1년 만에 절반 이상(50.3%) 하락한 모습입니다. 절반 용량(250GB) 제품이 지난해 3월에 10만7500원이었는데, 1년 사이에 같은 가격으로 2배 용량의 제품을 구입할 수 있게 됐습니다.
메모리 가격 하락의 여파로, 휴대전화에서도 고용량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메모리 가격이 한창 고점을 향해 달리던 지난해 2월 출시된 갤럭시S9은 4GB D램과 64GB~256GB 내장메모리를 탑재했습니다. 그러나 오는 20일(현지 시각) 미국에서 공개하는 갤럭시S10은 6~12GB D램에 128GB~1TB 내장메모리를 갖출 것으로 예상됩니다. D램과 내장메모리 모두 한단계 '업그레이드' 됐습니다.
◇ 메모리 가격 하락 상반기 내내 이어질 듯
컴퓨터 업그레이드를 생각하는 소비자들은 조금 더 기다리셔도 될 것 같습니다. 전문가들은 반도체 가격 하락이 상반기 내내 이어질 수 있는 만큼, 현재 가격도 '최저점'이 아니라고 분석합니다.
D램은 보통 분기 단위로 계약이 이뤄져 매 분기 첫달에 가격이 요동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반도체 가격 하락세가 이어지며 월 단위 계약이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이수빈 대신증권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D램의 높은 재고 수준이 아직 해결되고 있지 않다"며 "지난해 4분기를 대표하는 2018년 10월 PC D램 계약 가격은 9월보다 10.4% 하락했고, 11월에도 3.5% 추가 하락하는 월 단위 계약이 발생했다"고 분석했습니다. 올해 2~3월에도 추가적인 가격 하락이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시장조사기관 디램익스체인지(DRAMeXchange) 또한 1분기 D램 가격이 19.5% 떨어지고, 2분기에도 하락세가 이어지면서 12.9% 내려간다고 예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