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정권 시절인 1998년 옛 정보통신부·한국전자통신연구원·KT 등이 공동으로 한국정보통신대학원대학교(ICU)를 설립했다. 정보통신 분야의 고급 인재를 육성한다는 취지아래 국내 유일의 IT(정보기술) 특성화대학을 표방했다. 하지만 ICU는 설립 초기부터 카이스트와 성격·기능이 중복된다는 지적이 많았다.

ICU는 새천년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 의원 출신인 허운나씨가 총장을 맡은 후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의 공격을 받으며 예산 지원이 줄었다. 결국 카이스트와 통합 문제를 놓고 2년 넘게 진통을 겪다 이명박 정권 시절인 2009년 카이스트와 통합되며 역사 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오는 2022년 개교를 목표로 설립 준비중인 한전공대를 놓고 과거 ICU처럼 될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달 전남 나주 부영 골프장 일원을 최종예비후보지로 선정했지만 천문학적인 설립 비용을 적자 기업인 한국전력이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다. 기존 공대들과 차별화가 어려운데다 문재인 대통령 공약으로 세워지는 학교라 향후 정권 교체시 지원이 끊기면 문을 닫을 것이라는 비관론이 나오고 있다.

한전공대 최종예비후보지로 선정된 전남 나주 부영CC 일원.

1. 지금도 에너지 인력양성 충분…나주, 학생 유치에 불리

박맹우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탈원전으로 한전이 파산할 위기를 맞을텐데, 전력사업에만 올인해도 부족할 판에 왜 천문학적인 돈을 써가면서 교육사업에 뛰어드냐"면서 "세계적인 에너지특성화 대학을 만든다고 했는데, 울산, 대전, 포항, 광주, 대구 권역별로 특성화 대학이 잘 구비돼 있고 에너지 파트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광주에는 이미 광주과학기술원(GIST)라는 세계적 명문 공대가 있다.

교육계에선 대학 정원이 해마다 급감해 사립대 수십곳이 도산할 지경인데, 이런 상황에서 4년제 대학을 새로 만드는 것은 황당한 발상이라고 지적한다.

특히 나주에 한전 본사가 있긴 하지만 대학을 설립해 우수 학생을 유치하기에는 지리적 여건이 불리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전공대 입지선정위원회는 지난달 전남 나주 부영골프장 일원을 한전공대 최종예비후보지로 선정했다.

2. 설립비(5000억)+운영비, 적자기업이 어떻게 감당하나

에너지특성화 대학을 목표로 하는 한전공대는 설립 비용만 5000억원이 들 것으로 예상된다. 총장 연봉 10억원 이상, 학생 1000여명의 학비·기숙사비를 무료로 제공해 연간 운영비가 600억~7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한국전력이 작성한 2019년 재무위기 비상경영 추진계획(안)에 따르면 한전은 올해 2조4000억원의 영업손실이 날 것으로 예상했다. 원전 안전 강화와 신재생에너지 사업자에 주는 보조금 등이 원인이다.

야당에선 적자 기업인 한전이 무슨 돈으로 5000억원의 비용을 감당할 수 있겠냐고 질타한다. 자유한국당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위 소속 의원 일동은 지난달 "한전공대 설립을 위한 최종용역보고서도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부지부터 선정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면서 "급히 먹는 떡은 체하기 마련인데, 누적 부채만 114조8000억원(지난해 9월 기준)인 한전의 경영여건이 더욱 악화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3. 2012년 설립한 원자력대학원대학교는 어쩌나

한전은 지난 2012년 원전 수출에 필요한 인력을 양성한다는 취지로 한국전력국제원자력대학원대학교를 설립한 이력이 있다. 현재는 한국수력원자력이 운영을 맡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탈원전 정책 이후 관심이 끊기면서 입학생이 줄고 정원 축소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한전공대가 생기면 한전국제원자력대학원대학교가 설자리는 더욱 좁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원자력업계에서는 상당수 명문대에 원자력 관련학과들이 있는데 정부의 입김으로 설립되는 한전공대에 과연 원자력 관련학과가 설치될 것인지 의문을 제기한다. 에너지특성화 대학인데 원자력 전공이 없다는 것은 절름발이식 교육·연구 밖에 안된다는 지적이다.

4. 대선 공약으로 설립...정권 교체시 지원 축소 불가피

한전공대는 지난 2017년 이낙연 국무총리가 전남도지사 시절 문재인 대통령 후보의 선거 공약으로 건의해 채택됐다. 훗날 정권이 바뀌면 ICU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듯이 한전공대 역시 지원 축소 압박을 받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이종배 자유한국당 의원은 "한전공대가 한전의 숙원사업인가? (대통령 선거 공약이라도) 현재 상태(재정)가 어렵다면 중단하는 것이 옳다"고 했다.

이덕환 서강대 교수는 "경찰대도 적폐 사례로 문을 닫는데, 한전공대 나오면 한전이 직장을 보장하냐"면서 "학연은 한국병으로 불리는데, 돈도 없는 회사가 일자리를 못찾아 고통받는 젊은이들을 좌절에 빠지게 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