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 〈권리금 없음〉. 02)3443-○○○○.' 30일 오후 서울 강남의 최고 상권으로 꼽히는 '가로수길'의 대로변 빈 상점 입구에 이런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어봤다. 건물주 측은 "실평수 120평 상가인데 관리비 포함 2640만원이던 월세를 2200만원까지 깎았는데도, 지난달 디저트 가게가 나간 후론 선뜻 들어오겠다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지역 중개업소 관계자는 "2010년을 전후해 가로수길이 뜬 이후 이런 불황은 처음"이라며 "돈 쓰는 사람은 눈에 띄게 줄었는데, 최저임금은 해마다 팍팍 오르니 버티질 못한다"고 말했다.

상가 공실률이 역대 최고 수준으로 치솟고 있다. 작년 4분기 기준 전국 중·대형 상가(330㎡ 이상) 공실률이 10.8%를 기록했다고 한국감정원이 30일 밝혔다. 2013년 통계를 내기 시작한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소규모 상가 공실률은 5.3%로 전 분기보다는 0.3%포인트 내렸지만, 여전히 고공 행진이다.

상권의 몰락은 서울과 지방, 고가(高價) 상권과 저가 상권을 가리지 않았다. '명품의 메카'로 통하는 서울 청담동 공실률(이하 중·대형 기준)이 1년 만에 1.5%에서 11.2%로 급등했고, 도산대로도 4%에서 10%로 올랐다. 동대문 상권 공실률도 10.9%에서 14.6%로 높아졌다. 제조업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지방 상권은 심각한 상태다. 한때 전자제품 수출을 견인했던 경북 구미산업단지 상권 공실률은 33.1%, 울산 신정동은 31.8%다.

공실이 늘면서 임대료도 하향세를 보이며, 전국 상가 3.3㎡당 평균 임대료는 작년 2분기부터 9만6200원→9만6100원→9만5700원으로 내리고 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경기 침체와 온라인 쇼핑 확산으로 매출은 줄어들고 인건비 등 비용은 늘어남에 따라 자영업자들이 폐업하는 것"이라며 "그 결과가 공실률 상승과 임대료 하락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