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에게는 '1세대 여성 기업인'이라는 말이 따라다녔다.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의 장녀인 이 고문은 1979년 호텔신라 상임이사로 취임해 경영 일선에 뛰어들었다. 1983년 한솔제지의 전신인 전주제지의 고문을 맡았다. 이 고문은 배포와 섬세함까지 갖춰 부친인 이병철 회장을 빼닮았다는 평가를 많이 들었다. 이 때문에 아버지 이병철 회장의 각별한 사랑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주제지는 1991년 삼성그룹에서 분리돼 독립경영에 나섰고 1992년에는 사명을 순우리말인 지금의 '한솔'로 바꾸며 한솔그룹 시대를 열었다. 비슷한 시기에 장남인 이맹희씨의 아들(이재현 CJ 회장)은 제일제당(현 CJ)을, 차남인 이창희씨는 새한(소멸)을, 5녀인 이명희씨는 신세계를 가지고 각각 삼성에서 독립했다.
지금은 한솔이 규모가 크게 축소됐지만, 한때는 10대 그룹을 넘보던 수준이었다. 한솔은 1996년 22위로 처음 공정거래위원회의 대규모 기업집단에 이름을 올렸다. 활발한 M&A(인수·합병)를 통해 IT(정보기술)·금융·레저 등으로 영역을 확장해 2000년 재계 11위까지 규모가 커졌다.
이 고문은 한달에 한두번 출근할 뿐 대부분의 회사일은 구형우 한솔제지사장, 정용문 한솔PCS사장등 전문경영인에게 맡겼다. 하지만 PCS사업, 강원도 원주의 종합레저타운 '오크밸리'사업, 그룹 신사옥사업등 주요현안은 직접 챙겼다. 특히 PCS 사업은 광고판 교체를 직접 지시할 정도로 주요 관심사였다.
이 고문은 생전 오크밸리 사업에 특히 애착을 보였다.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고문은 "80여 생을 살면서 창작의 기쁨을 느낀 적이 정확히 세 번 있었다"며 "선친께서 세웠던 서울신라호텔을 맡았을 때, 나의 생각을 녹여 제주신라호텔을 만들었을 때, 그리고 오크밸리를 만들고 키워 나가는 바로 지금이다"고 했다.
그러나 PCS 사업이 발목을 잡았다. PCS 사업은 기지국 건설 등 투자는 계속해야 했지만 매출은 크지 않았다. 이 여파로 재무구조가 취약해진 한솔그룹은 1997년 외환위기가 닥치자 2000년대 초반 사업을 접었다.
그룹 규모가 줄어들면서 재계 순위는 낮아졌다. 한솔이라는 이름은 재계에서 옅어져만 갔다. 그러던 한솔이 다시 스포트라이트를 받게된 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맹희씨 간 상속 분쟁이 터진 뒤부터다. 이 고문이 개입했기 때문이다.
삼성 창업주인 고(故) 이병철 회장의 3남과 장남인 두 사람은 2012년 2월부터 상속 재산을 놓고 분쟁을 벌였다. 이맹희씨가 동생 이건희 회장을 상대로 7000억원대 상속재산 반환을 요구하면서 촉발된 이 소송은 두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2주 뒤 이건희 회장의 누나인 이숙희씨가 소송에 가세하며 범(汎)삼성가 분쟁으로 확대됐다. 한 달 뒤에는 이건희 회장의 둘째 형인 고 이창희씨의 며느리 최모씨와 손자 2명까지 상속재산 반환 소송에 가세했다. 소송액수만 4조원이 넘었다.
그때 이건희 회장의 첫째 누나인 이인희 한솔 고문은 이 소송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사실상 이건희 회장 편에 선 것이다. 이 고문은 2013년 2월 1심 재판이 끝난 뒤 "이번 판결로 집안이 화목해지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1심을 이건희 회장이 승소했기에 이인희 고문의 언급은 이건희 회장 손을 들어준 것이다. 2심 선고에서도 이건희 회장이 승소하자 이맹희씨는 지난 2월 대법원 상고를 포기해 2년에 걸친 상속재산 소송은 막을 내렸다.
이 고문은 칠순이 넘은 나이에도 일주일의 절반을 골프장에서 보낼 정도로 골프를 즐겼다. 일주일에 사흘 정도 경기 여주의 '클럽700'에서 골프를 쳤다고 한다. 동생인 이명희 신세계부회장과 이화여대 정보통신대학원 동문들과 팀을 이뤘다. 조동혁, 조동만, 조동길 3형제를 불러 가족대항 골프대회도 열었다고 한다.
이 고문에게는 '국내 1호 여성 아트 컬렉터(수집가)'라는 수식어도 뒤따른다. 이 고문이 직접 세운 한솔뮤지엄에는 40여년간 수집하며 정이 듬뿍 들었던 작품들이 전시됐다. 전시실은 그의 호를 따 '청조(淸照)갤러리'로 명명됐다. 컬렉션 중에는 박수근, 이중섭, 김환기 등의 작품은 물론이고 정규, 이쾌대, 등 여간해선 접하기 힘든 한국 근ㆍ현대 작가의 수작이 대거 포함됐다. 종이회사의 특성을 살려 종이를 활용해 작업하는 국내외 작가 작품을 각별히 챙겼다.
고인은 내 유일한 여성장학재단인 '두을장학재단'의 이사장으로 활동하며 여성 인재 육성에도 힘썼다. 이 고문은 모친인 고(故) 박두을 여사의 유지를 받들어 삼성가 여성들이 함께 설립한 두을장학재단의 맏어른으로 많은 여성 인재들을 발굴하고 지원했다. 두을장학재단은 지난 17년간 약 500명의 학생에게 장학금을 전달, 대한민국 여성파워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
이 고문의 자녀로는 조동혁 한솔케미칼 회장, 조동만 전 한솔그룹 부회장, 조동길 한솔그룹 회장, 조옥형 씨, 조자형 씨가 있다. 이 고문의 빈소는 삼성서울병원에 마련됐고, 영결식 및 발인은 2월 1일 오전 7시 30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