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원요? 그게 뭔가요? 그걸 보여주면 저희가 영화표를 할인해 드린다고요? 처음 들었는데 잠시만요…."

서울 노원구에 있는 롯데시네마 수락산점에서는 작년 하반기 지역화폐 '노원(No Won)' 앱이나 회원카드를 보여주면 영화표를 2000원 할인해주는 행사를 벌였다. 그런데 행사 기간 6개월 동안 '노원'을 쓴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영화관 직원조차 '노원'이 뭔지 몰랐다. 인근 대형 서점 노원문고는 '노원' 가맹점으로 구청에서 홍보한 곳이지만, 작년 3월부터 올 1월 말까지 '노원'으로 결제된 금액은 15만원에 불과했다. 점장 정모씨는 "사용자가 일주일에 한두 명 있을까 말까 한다"고 했다.

작년 지역화폐 '시루' 출범 직후 가맹점으로 등록한 경기도 시흥의 J마트는 아직 매출 상승 효과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이곳 직원은 "우리만 뒤처지는 것 같아 일단 가맹점으로 가입했지만, 시루로 결제하는 사람은 거의 못 봤다"고 말했다.

◇난립하는 지역화폐, 올해 2조 뿌린다

전국 지자체들이 '노원' '시루' 같은, 시·군·구 안에서만 유통되는 '지역화폐'를 앞다투어 발행하고 있다. 현재 지역화폐를 발행 중인 곳과 올해 안에 새롭게 발행 예정인 곳까지 합하면 총 120여 곳이다. 전국 243개 광역·기초자치단체의 절반이다. 2015년 892억원에 그쳤던 발행액은 지난해 3714억원, 올해는 2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종이에 인쇄된 형태에서 최근엔 '모바일 머니'나 'QR코드' 방식까지 등장하고 있다. 하나같이 '지역경제 활성화', '소상공인 살리기'를 목적으로 내걸고 있다. 그런데 제대로 된 경제성 분석 없이 보조금 살포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올해 지역화폐 발행액 2조원은 행정안전부의 '목표치'다. 행안부는 목표 발행액의 4%인 800억원을 지자체에 지원금으로 주기로 하고, 지난 22일 국무회의에서 상반기 집행 금액 349억원을 승인받았다. 지역마다 적게는 3%에서 최대 10%가량 할인해서 지역화폐를 파는데, 할인액의 상당 부분을 중앙정부가 대주면서 발행을 독려하는 것이다. 작년에는 군산과 거제 등 고용·산업 위기 지역에만 100억원이 지원됐다. 행안부 지역금융지원과 관계자는 "지역화폐 발행은 이번 정부 국정과제"라며 "올해 국가 지원 계획이 알려지니까 발행하겠다고 나서는 지자체가 급증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앞서 지역화폐를 도입한 곳 중엔 폐지했거나 폐지를 앞둔 곳도 있다. 2014년 말 '강화사랑 상품권'을 도입했던 강화군은 작년 7월 상품권 판매를 중단했다. 그간 3~5%씩 할인 판매를 하느라 재정 손실금이 10억원 발생했는데 정작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는 전혀 체감하지 못할 정도로 미미했기 때문이다. 강원도는 2017년 '강원상품권' 480억원어치를 찍어냈는데 법인과 개인이 산 것은 10%도 안 됐고 90%를 도 예산으로 되샀다. 도 의회는 "전형적인 예산 낭비 사례"라며 강원상품권 폐지를 논의하고 있다. 강화군 관계자는 "일부 가맹점이 할인 판매하는 상품권을 사서 현금화하는 '상품권 깡'을 하는 사례가 왕왕 있었고, 군 공무원들에게 매월 얼마씩 할당 판매를 해 내부에서도 불만이 많았다"고 말했다.

◇예산 낭비 사례로 전락…官에서 찍고 官에서 90% 되사기도

행안부는 "지역화폐의 경제 효과를 예측하거나 분석해보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지역 소상공인 소득 증대와 골목경제 살리기라는 좋은 취지에 세금을 쓰겠다는 것인데 나쁠 게 없지 않으냐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병태 KAIST 경영공학부 교수는 "지역화폐는 일종의 보호무역주의 같은 것"이라며 "일부 소상공인에게 보조금을 살포하는 효과는 있을지 모르지만, 지역 내 사람들이 (다른 지역의) 더 좋은 제품이나 질 좋은 소비재를 구매할 선택의 기회를 잃게 된다"고 지적했다. 아동수당마저 지역화폐(성남사랑 상품권)로 지급받는 성남시가 그 예다. 성남 주민 중 상당수는 "인터넷이나 대형마트 등 더 싸고 선택의 폭이 넓은 곳에서 원하는 물건을 살 수 없다"며 불만을 토로한다.

정치경제연구소 '대안'의 조혜경 연구위원은 "해외 지역화폐나 99년 대전에서 시작된 '한밭레츠'는 지역에서 자생한 것이지 관(官) 주도로 찍어낸 게 아니다"라며 "소비자 수요와 상관없이 예산 따라 찍어낸 지역화폐는 지자체장이 바뀌거나 시간이 지나면 결국 사라지고 말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