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베이거스의 新기술 직접 봐서 좋지만 규모는 아쉬워"

"여기 전시회 하는 데 맞아요? 티켓 끊는데도 없고 무료인가? 뭐? 12시부터 연다고요? 커피나 마시면서 기다려야겠구먼."

29일 오전 10시 30분쯤 ‘한국판 CES(Consumer Electronics Show)’가 열리는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전시장을 찾은 김모(58)씨는 일단 발길을 돌려야 했다. 이날부터 사흘간 일정으로 열리는 한국판 CES가 첫날은 오전 10시가 아닌 낮 12시부터 일반 관람객이 입장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었다.

29일 오전 비공개로 진행된 ‘한국판 CES’ 간담회에서 삼성전자 김현석(사진 오른쪽) 사장이 ‘CES를 통해 본 미래기술 트렌드’를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제일 앞줄 가운데 자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경청하고 있다.

이 시간 전시장 안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하는 이른바 ‘비공개 혁신 콘서트’가 열리고 있었다.

미 CES에 참석했던 김현석 삼성전자 소비자가전(CE)부문장(사장)이 ‘CES를 통해 본 미래기술 트렌드’에 대해, 정민교 대영채비 대표가 ‘CES에서 본 스타트업의 미래’에 대해 각각 10분 이내로 프레젠테이션하고, 이후 20여분간 참석자들이 자유 발언을 주고받는 간담회가 열린 것이다. 이 자리에서는 한국 ICT산업에 대한 평가와 기업·정부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제언이 오갔다고 한다.

문 대통령이 CES에 관심을 가지면서 열린 ‘한국판 CES’가 VIP(대통령을 지칭)를 위한 가전‘쇼’에 그쳤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날 행사는 시작 전부터 ‘청와대 주도로 개최 열흘 전쯤 급조된 전시회’로 홍보 아닌 홍보가 됐다.

실제 이 자리에는 문 대통령뿐 아니라 주최 측인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모두 참석했다. 기업 측에서도 삼성전자의 김현석 사장, 송대현 LG전자 가전 담당 사장, 박진효 SK텔레콤 ICT기술센터장, 한성숙 네이버 대표 등이 참석했다.

문 대통령이 간담회를 마치고 전시회장을 둘러보는 동안 끝까지 자리를 지킨 김현석 삼성전자 사장과 박진효 SK텔레콤 ICT기술센터장은 "CES에서 보여줬던 것의 10분의 1밖에 못 보여줘서 아쉽다"고 말했다.

◇ ‘미니 CES’…직접 볼 수 있는 건 좋지만 규모 작아 실망

창립 20주년 만에 미 CES에 첫 참석했던 네이버는 ‘한국판 CES’에 부스를 차렸다. 7개 관절로 섬세한 동작이 가능한 로봇 팔 ‘앰비덱스’가 부스 정중앙에 비치돼 있는 것도 꼭 같았다.

삼성전자의 ‘더월(The Wall)’, LG전자의 ‘롤러블(돌돌 말리는) TV’ 등 CES에서 화제를 모았던 제품 앞에는 인파가 십여명 이상이 몰렸지만, 일부 미디어 관계자들을 제외하고 보면 관람객은 손에 꼽을 만큼 한산했다.

네이버의 로봇팔 앰비덱스가 정중앙에 비치돼 있는 네이버 부스. 오른쪽으로 석상옥(맨 오른쪽) 네이버랩스 로보틱스 헤드와 회사 관계자가 서 있다.

석상옥 네이버랩스 로보틱스 헤드는 "학생들이 무료로 전시회장을 찾아 로봇을 만져보고 꿈을 키울 수 있다는 점이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행사장을 찾은 대부분 관람객들은 한국판 CES의 개최 취지에 대해 대체로 공감하면서도 전시회 규모에 대해서는 실망하는 경우가 많았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서 스타트업을 운영 중이라는 박모(33)씨는 "과거 대기업에 일할 때 CES 등 해외 전시회를 찾았었는데, 이날 전시는 규모 면에서 ‘미니어처’ 수준"이라고 말했다.

방학을 맞은 아들·딸 두 자녀와 함께 수원에서 전시장을 찾은 진재인씨는 "라스베이거스를 가지 않고도 기술 발전을 체험할 수 있어 좋았다"면서도 "‘한국판’은 좀 아담한 것 같다"고 말했다.

관리 측면에서 실망감을 나타낸 시민도 있었다. 과거 TV 관련 산업에 종사했다는 최종욱(75)씨는 "파주에서 왔는데 아쉬운 점 많다"면서 "입구 안내자나 부스 직원들의 기술적 설명이 부족해 실망했다"고 말했다.

◇ 청와대가 벤치마킹한 美 최대 가전쇼 ‘CES’는

‘한국판 CES’의 벤치마킹 모델인 본 CES는 전 세계 160개국 4500여개 이상 기업이 참여하는 글로벌 최대 가전쇼다. 지난 1월 8일부터 11일까지 나흘간 열린 올해 CES에는 우리나라 기업도 317개사가 참가했다. 한국판 CES에 참가한 한국 기업이 40여개에 그친 것과 비교하면 참가사 규모만으로도 10배가 크다.

29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한국판 CES’ LG전자 부스. LG전자의 롤러블 TV 앞에는 이날 가장 많은 인파가 몰렸지만, 대다수가 취재진·블로거 등 미디어 관계자들이었다.

이처럼 수많은 인파가 CES로 몰려가는 것은 기술이 어떻게 혁신할지를 볼 수 있는 장이기 때문이다. 올해는 5세대 이동통신(5G), 인공지능(AI) 로봇, 롤러블·폴더블(화면이 접히는) 등 차세대 디스플레이가 두각을 드러냈다.

익명을 요구한 한국판 CES 참가 기업 관계자는 "지난 1월 초 CES에 차렸던 그대로 부스를 꾸몄기 때문에 정보기술 트렌드에 관심있는 관람객들은 볼 만할 것"이라면서도 "인건비 등 전시하는 데 들어간 비용 대비 관람객들은 관계자 위주인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