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 수도권에만 아파트 23만여가구가 분양될 예정이지만, 현금 넉넉한 무주택자가 아니라면 청약에 당첨되더도 집값을 조달하기 쉽지 않을 전망이다. 무주택자 기준이 엄격해진 데다 금융권이 가계 대출에 소극적인 입장이기 때문이다.
건설사들은 기업 차원에서 청약자들에게 금융 관련 지원책을 마련하기 어렵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이 때문에 청약자들은 높은 경쟁률을 넘었더라도 이전보다 빡빡해진 중도금 집단대출, 주택담보대출 등 금융권 규제 문턱까지 넘어야 한다.
부동산114 집계에 따르면, 올해 수도권 아파트 신규 분양은 23만1997가구다. 지난 해 물량의 두 배가 넘는다. 청약 열기와 맞물려 민간 아파트 평균 분양가는 상승 곡선을 그리는 중이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자료를 보면, 서울 지역에서 신규 분양된 민간아파트의 평균 분양 가격 등을 집계해 산출한 분양가격지수는 2018년 12월말 기준 120.7을 기록했다. 1년 전보다 10.3% 상승했다.
이달 청약 결과가 발표된 '위례 포레자이'는 평균 분양 가격이 3.3㎡당 1820만원으로 주변 시세보다 1000만원 정도 낮아 '로또 아파트'로 불리며 흥행에 성공했다. 전용면적 95~131㎡인 중대형 면적으로만 구성돼 발코니 확장 등을 추가하지 않더라도 기본 5억2000만~7억2000여만원을 마련해야 한다. 위례 포레자이는 공공택지를 민간 분양으로 진행해 그나마 분양가가 낮게 책정된 경우다. 민간택지에 분양되는 물량은 이보다 더 비싼 값에 공급될 수밖에 없다.
아파트 분양 가격은 갈수록 오르지만 청약자들이 집값을 마련할 금융 여건은 녹록지 않다. 정부가 가계 대출에 고삐를 당기고 있어, 주택담보대출은 물론 건설사 보증으로 이뤄지는 중도금 집단대출의 금리나 상환 조건 등을 유리하게 협상하기도 어려워졌다는 분석이다.
수도권에서 신규 아파트 분양 사업을 진행 중인 한 중형 건설사 관계자는 "2~3년 전만 해도 은행이 중도금 집단대출을 유치하려고 서로 경쟁하는 분위기였는데, 금융당국이 금융권의 가계 대출을 옥죄면서 요즘은 분위기가 완전 달라졌다"며 "집단대출 협약을 맺어주는 것만으로도 건설사들이 은행에 고마워해야 할 정도"라고 말했다.
김부곤 금융감독원 은행감독국 팀장은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대로 오는 2021년까지 가계 신용 증가 속도를 명목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수준으로 맞춘다는 게 정부 방침"이라며 "금융당국은 금융권 전체의 가계 대출 총량 증가율을 제한할 뿐이고, 각 은행이 정부 지침에 준해서 연간 계획을 수립할 때 가계 대출 신규 유치 목표를 개별적으로 정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한국은행이 공동으로 발표한 2018년 12월 기준 금융시장 동향 자료를 보면, 지난해 연간 가계대출 증가율은 5.9%다. 금감원이 새마을금고 등 자료까지 집계하기 시작한 지난 2015년(109조6000억원) 이래 가장 적은 액수(75조1000억원)가 늘었다. 지난해 실질 GDP 증가율은 2.7%이고, 명목 성장률은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
건설사들은 분양할 때 청약자에게 분양권도 1주택으로 간주된다는 점 등을 확실히 인지시키고, 현재 금융권 대출 유무와 주택담보대출이나 중도금 대출 요건 등을 꼼꼼히 따져보도록 안내하는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올해 수도권에 아파트를 1만가구 이상 분양할 예정인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사실상 정부가 대출을 받아서 집을 사지 말라는 건데, 건설사가 어떻게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며 "(자금) 여력이 있는 사람만 청약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무주택 청약자이거나 1주택자인 경우에도 가진 자금이 현재 거주 중인 집의 전세보증금 정도에 불과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분양권만 보유해도 1주택자로 간주되는 정책에 따라, 부부 합산 소득이 1억원이 넘는 1주택자에게는 도시주택보증공사와 주택금융공사 등의 분양 보증요율이 상향 조정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이전에는 계약금만 마련하면 1주택 이상 보유자도 중도금 대출을 받을 수 있었고 분양권을 팔 수도 있었지만, 지난 해 발표된 9·13 부동산 대책으로 주담대와 분양권 전매가 어려워지면서 실수요자 이외에 현금이 진짜 많은 경우가 아니면 청약을 하기 힘든 구조가 됐다"며 "실수요자가 청약에 당첨되더라도 중도금 대출을 안 받아도 될 만큼 현금을 보유한 경우는 드물 것"이라고 말했다.
분양권을 처분하려고 해도 시장 상황이 녹록지 않다. 서울 대부분 지역에서는 시세 대비 분양가 비율에 따라 민간택지 공급주택에는 1년 6개월~4년 동안 전매를 할 수 없다. 공공택지의 경우에는 의무 거주 기간까지 1~5년이나 된다. 서울부동산광장 통계에 따르면 지난 달(2018년 12월) 기준 분양권·전매권 거래건수는 132건으로, 직전 해 같은 기간의 20% 수준으로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