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의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참여를 설득하기 위해 25일 마련된 문재인 대통령과 양대 노총 위원장의 청와대 면담은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났다. 문 대통령은 "국민들이 바라는 건 사회적 대화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뤄 노동권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라고 민노총을 설득했지만 김명환 민노총 위원장은 참여 의사 대신 7대 요구 사안을 내밀었다. 그는 "이를 바로잡지 않고 (경사노위) 대화에 들어오라는 건 무리한 요구"라고 했다. 정부 소식통은 "민노총이 자신들 요구 사항만 앞세우면서 면담은 평행선을 달렸다"고 전했다.

◇한노총 "우리는 들러리인가"

문 대통령은 이날 "최저임금, 노동시간, 노동 안전 등에서 노동권의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게 사회적 인식이지만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할 수는 없다"며 민노총의 대화 참여를 거듭 촉구했다. 그러나 김명환 민노총 위원장은 "탄력근로 기간 확대 문제는 최저임금 결정구조에 더해 노정(勞政) 간 가장 심각한 갈등 요소"라며 "무작정 사회적 대화에 들어오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라고 했다. 문 대통령의 '대화 참여' 요청에 정부의 노동 정책 수정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답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오후 청와대에서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이날 문 대통령은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과도 만났다. 문 대통령이 양대노총 위원장과 면담한 건 지난해 7월 이후 처음이다.

민노총은 이날 김용균씨 사망사고 문제 해결을 비롯해 ▲고(故)김용균씨 문제 해결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 확대 반대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 반대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제주영리병원 허가 취소 ▲전교조 합법화 및 공무원노조 해직자 복직 ▲광주형 일자리 반대 등 7대 요구 사항을 전달했다. 정부로선 상당수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안들이다. 이 때문에 "이날 면담이 청와대 의도와는 달리 민노총의 기(氣)만 살려줬다"는 지적이 나왔다.

청와대·정부의 과도한 '민주노총 챙기기'가 한노총의 반발을 부르면서 현재 노사정 대화 구도까지 흩트릴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됐다. 김주영 한노총 위원장은 이날 "오늘 이 자리가 민노총의 (대화 참여를 위한) 자리임을 잘 안다"면서 "그러나 민노총이 참여해야지만 사회적 대화가 이뤄지는 건지 냉정하게 생각해봐야 한다"고 했다. 김주영 위원장은 "대통령께서 민노총 참여 여부와 관계없이 사회적 대화를 하겠다는 의지가 있는지 말해달라"고도 했다.

대통령 면담에 앞서 한노총은 오전 열린 경사노위의 한 회의체 회의장을 박차고 나가면서 '사회적 대화 탈퇴' 가능성을 내비치기도 했다. 이성경 한국노총 사무총장은 청와대 면담 뒤 "오늘 민노총의 경사노위 참여를 설득하려는 자리를 만들면서 한국노총 위원장을 부른 건 사실상 들러리로 세운 것 아니냐"고 했다. 여권 관계자는 "민노총 설득도 힘든데 한노총의 불만까지 겹쳐 첩첩산중"이라고 했다.

◇민노총 '반대'에 靑·與 피로감 누적

'친(親)노동자 정부'를 표방한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당시 노조를 위한 정책 공약들을 잇달아 내놨었다. 실제 문재인 정부는 해고 요건 완화 등 '양대 지침' 폐기,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최저임금 대폭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 노동계 요구를 거의 그대로 들어줬다. 그럼에도 민노총은 촛불집회 참여를 통해 문재인 정부 출범에 기여했다는 점을 내세우며 번번이 새로운 '계산서'를 내밀었다. 민노총은 2017년 10월 문 대통령이 주재하는 노동계와의 만찬 행사 당일 전격 불참을 통보했다. 올해 초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신년 인사회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정부 정책에 힘을 실어달라" "노정(勞政) 간 갈등이 있더라도 사회적 대화의 틀은 유지해 달라"며 민노총에 이해를 구했지만, 민노총의 '실력 행사'는 더 심해졌다. 정부가 출범 초 노동계 요구를 일방적으로 수용한 것과 달리, 민노총은 광주형 일자리와 탄력근로제 확대 등 어려운 경제 상황을 고려해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에 대해 어떤 양보도 하고 있지 않다. 이날도 민노총은 경사노위 참여 의사를 명확히 밝히지 않은 채 요구 사항만 늘어놨다.

청와대와 여권에선 민노총에 대한 피로감이 상당한 분위기다. "'대선 공신'을 자처하는 민노총이 정부 정책 기조까지 흔들면서 자기 이익만 챙기려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민노총을 대놓고 '압박'할 수도 없다는 것이 정부 고민이다. 정부의 핵심 지지층인 노동계를 적으로 돌리기는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청와대 관계자는 "민노총 등을 설득할 방안을 계속 찾는 것 외엔 딱히 방법이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