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재무적 요소뿐 아니라 지속가능성에 영향을 미치는 비재무적 요소까지 고려하는 사회책임투자(Socially Responsible Investment·SRI)가 전세계 금융투자업계의 핵심 키워드로 각광받고 있다. 선진 금융시장에 비해 SRI 문화가 덜 무르익은 한국에서도 환경(Environmental), 사회적 책임(Social Responsibility), 지배구조(Governance) 등의 비재무적 요소를 투자기업 선별의 중요 잣대로 활용하는 기관투자자가 점차 늘고 있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여성의 사회·기업 참여도를 일컫는 '성 다양성'에 주목하는 투자자가 잇달아 등장해 눈길을 끈다. 정부도 여성 친화적인 기업에 혜택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분위기 조성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로리 하이넬 SSGA 부CIO가 23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ESG 투자 세미나에 참석해 성 다양성을 고려한 투자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여성 임원 30%로 늘리면 수익성 15% 증가"

미국 자산운용사 스테이트 스트리트 글로벌 어드바이저스(SSGA)에서 글로벌 부(副)최고운용책임자(CIO)를 맡고 있는 로리 하이넬은 23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ESG 투자 세미나에 참석해 "성 다양성을 존중하는 회사는 실적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SSGA는 지난해 말 기준 2조5100억달러(약 2832조원) 규모의 자산을 굴리는 세계 3대 운용사 중 한 곳이다.

SSGA에서 운용전략에 대한 감독·관리·혁신 등을 담당하는 하이넬 부 CIO는 성 다양성과 기업 실적의 상관관계가 여러 연구를 통해 입증됐다고 소개했다. 그는 "강력한 여성 리더십을 보유한 기업의 자기자본이익률(ROE)이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36.4%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는가 하면 여성 임원 비중을 30%로 늘리면 여성 임원이 전혀 없을 때보다 수익성이 15%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고 했다.

SSGA는 2017년부터 전세계 기업을 대상으로 여성 임원 수 확대를 촉구하는 '두려움 없는 소녀(Fearless Girl)'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하이넬 부 CIO는 "캠페인을 시작한 후 지금까지 총 329개 기업에서 여성 이사회 멤버를 임명했거나 임명하기로 결정해줬다"며 "SSGA의 성 다양성 확산 성과와 글로벌 투자경험을 한국에도 공유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 동석한 심재환 한국투자신탁운용 멀티전략본부장은 "미국·유럽 등에서는 ESG 투자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으나 한국은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며 "SSGA와 협업해 장기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투자 솔루션을 선보이겠다"고 했다.

조선DB

◇정부도 "여성 비율 높으면 국민연금 투자"

성 다양성에 대한 국내 자본시장의 고민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메리츠자산운용은 지난해 12월 여성 고용지표를 투자 판단의 근거로 활용하는 '더우먼펀드'를 업계 최초로 출시한 바 있다. 상품 개발을 직접 챙긴 존리 메리츠운용 대표는 "유망 업종 내에서 여성 친화적이거나 개선 의지가 큰 기업을 선별해 투자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메리츠운용은 운용의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해 여성 문제 전문가 5명을 감독이사로 선임하기도 했다. 리 대표는 "여성은 불법 행위에 덜 관대하기 때문에 기업 지배구조 개선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말했다. 더우먼펀드의 설정 이후 수익률은 5.63%(신한아이타스 기준)다.

정부도 업계의 이런 움직임에 힘을 실어주는 분위기다. 여성가족부는 올해 중점 추진 과제로 민간 기업의 '여성 고위관리직 목표제'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기업이 자율적으로 정한 여성 임원 비율 목표를 달성하면 정부가 인센티브를 준다는 내용이다. 인센티브는 국민연금·공무원연금 등 공적연기금의 투자를 늘리는 방식으로 제공된다.

일각에선 기업 문화가 다소 수직적인 국내 현실을 고려해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하이넬 부CIO 역시 "기업마다 속한 산업 환경이 다르고 여성 관련 정책이 다른데 무리한 성 다양성 강요는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며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