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과방위) 법안심사소위가 유료 방송 시장에서 특정 기업의 시장점유율을 제한하는 합산 규제를 재도입하기로 잠정 의견을 모으면서 논란을 빚고 있다. 현재 유료 방송 시장 1위인 KT에서 자회사 위성방송인 KT스카이라이프가 분리되기 전까지 합산 규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폐지된 규제를 되살리려는 것은 규제 완화 방침에 역행하는 데다 주무 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합산 규제 부활에 반대하고 있다. 통신·케이블 업계에서는 시장점유율 규제가 유선방송 사업자 간 인수·합병을 통한 자율적 시장 재편을 방해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말 합산규제 관련 법안이 과방위 법안심사소위에 상정되자 인터넷TV와 케이블TV 간 인수·합병 움직임도 잠잠해져 버렸다. 방송 업계 관계자는 "가입자와 매출이 감소세를 보이는 위기의 케이블TV 업계를 인터넷TV가 인수해 시장을 재편해야 하는데, 왜 국회가 폐지된 규제를 만지작거리면서 문제를 더 꼬이게 만드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7개월 전 폐지된 규제 재도입 논의… 정부는 사실상 반대
국회 과방위 법안심사소위 위원장인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은 22일 법안심사소위를 마친 뒤 "위원들의 대다수 의견은 KT에서 KT스카이라이프가 독립되기 전까지 합산 규제를 어느정도 재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2월 임시국회에서 논의를 더 진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날 국회 과방위는 합산 규제를 2~3년간 연장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방송법 개정안 심사를 진행했다. 원래 합산 규제는 2015년 6월 유료 방송 시장의 독과점을 막자는 취지에서 3년간 한시적 효력을 갖는 일몰(日沒) 조항으로 도입됐다가 지난해 6월 말 자동 폐지됐다. 하지만 일부 의원이 "방송의 다양성을 지키기 위해선 합산 규제 부활이 필요하다"면서 관련 법안을 발의해 결국 법안 심사가 시작된 것이다.
주무 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합산 규제 재도입에 부정적이다. 민원기 2차관은 지난해 11월 말 합산 규제 부활 법안이 상정됐을 때 과방위 법안심사소위에 출석해 "미국에서는 시장점유율 규제가 법원에서 무효 결정을 받았고, 영국과 독일도 이런 규제가 없다"며 "일몰된 법을 다시 (도입)하는 건 신중해야 한다"고 했다. 유영민 과기정통부 장관도 그동안 합산 규제 폐지에 대해 "시장의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말해왔다. 공정거래위원회 역시 앞서 국회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시장점유율은 사업자 간 경쟁 과정을 통해 나타나는 결과이므로 이를 사전에 제한하는 것은 시장경제 원리에 배치된다"고 밝혔다.
◇자율적인 M&A 움직임에 '찬물' 우려
규제 재도입은 유료 방송 업계의 자율적 사업 재편을 저해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인터넷TV를 이끄는 통신업계는 지난해 6월 말 합산 규제가 효력을 상실하자 케이블TV 인수를 적극 검토해왔다. KT는 지난해 11월 초 3분기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투자자 전화 회의)에서 "자회사인 KT스카이라이프가 케이블TV 업계 3위인 딜라이브 인수를 검토 중"이라고 했으며, LG유플러스는 작년 3분기 콘퍼런스콜에서 국내 최대 케이블TV 업체인 CJ헬로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말 합산 규제 부활 법안이 상정된 뒤 통신업체들이 속도 조절에 들어간 모양새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합산 규제 부활 여부에 따라 인수·합병 전략이 완전히 달라지는 만큼 일단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예컨대 현재 인터넷TV와 위성방송을 모두 보유한 KT가 딜라이브를 인수한다면 시장점유율이 37.3%로 오르게 되는 만큼 합산 규제(33.3%)를 위반하게 된다.
통신·방송 업계는 기업 간 인수·합병을 통해 시장을 재편할 길은 열어달라는 입장이다. 하현회 LG유플러스 부회장은 지난 21일 기자들에게 합산 규제 부활에 대해 질문을 받자 "입법기관에서 합리적으로 판단할 문제"라면서도 "유료 방송 시장의 재편이 잘 이뤄지고, 업계 경쟁이 유발되도록 국회가 많은 의견을 들어달라"고 했다. 박정호 SK텔레콤 사장 역시 "우리 입장은 중립"이라면서도 "시장이 작동하도록 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본다"고 했다.
☞합산 규제
유료 방송 시장에서 특정 사업자의 시장점유율이 33.3%를 초과할 수 없도록 한 규제 조항. 독과점을 막자는 취지였지만 인수·합병을 통한 유료 방송 시장 재편을 가로막는다는 지적도 받아왔다. 2015년 6월부터 3년간 한시적 효력을 갖는 일몰(日沒) 조항으로 도입된 뒤 지난해 6월 말 자동 폐지됐다. 하지만 국회에서 재도입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