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3 대책 여파로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이 약세를 보이는 가운데, 전세금도 12주 연속 하락했다. 특히 전세 수요가 몰리는 강남·서초·송파·강동 등 이른바 '강남 4구'가 하락세를 주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올해는 예년보다 많은 아파트 입주가 예정돼 있기 때문에 전세가격 약세 현상이 상당 기간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매매·전세 동반 하락… '입주 폭탄'이 만든 기현상

22일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세금 주간변동률은 작년 10월 29일부터 이달 14일까지 12주 연속 하락했다. 아파트 매매가격도 11월 12일 이후 10주 연속 떨어졌다. 집값이 안 오르면 사람들은 집값 하락을 우려해 매매보다 전세를 선호한다. 수요가 늘면 가격은 오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2010~2013년 4년 동안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떨어졌지만 전세는 올랐다. 매매가와 전세금이 같이 떨어지는 최근의 상황을 두고 '비정상적'이라는 말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새 아파트 대거 입주가 만들어낸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작년 서울 아파트 입주는 3만9500가구로 5년 평균(3만1800가구)보다 24.2% 많았다. 부동산 정보업체 부동산114는 올해 서울 새 아파트 4만2936가구의 입주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했다. 2014년 이후 최대 규모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 부동산 자문위원은 "과거 집값 하락기에는 새 아파트 입주가 없어서 전세금이 치솟았지만 최근에는 전세 수요를 소화하고 남을 정도로 새 아파트 입주가 많기 때문에 전세도 같이 떨어지는 것"이라며 "올해도 새 아파트 입주가 많기 때문에 전세금은 약세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이창무 한양대 교수는 "전셋집을 찾는 사람에게는 올해가 기회"라고 했다.

입주가 몰리는 지역은 전세금을 낮춰도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는 '역전세난' 조짐도 있다. 4월까지 입주가 진행 중인 송파구 헬리오시티는 9510가구에 달하는 물량 부담 때문에 전세금이 떨어지고 있다. 작년 3월 전용면적 84㎡의 전세 호가는 8억~9억원대였지만 지금은 5억원대 후반까지 떨어졌다. 헬리오시티 입주 여파로 송파구 아파트 전세금은 일주일 사이 0.23% 하락했다. 인접한 강남구(-0.22%), 서초구(-0.29%), 강동구(-0.35%) 모두 서울 평균(-0.12%)보다 큰 폭으로 전세금이 떨어졌다.

역전세난 우려가 가장 큰 곳은 강동구다. 부동산인포에 따르면 올해 강남 4구(강남·서초·송파·강동) 입주 예정 아파트는 1만6094가구인데, 이 중 1만1051가구가 강동구에 몰려 있다. 9월 4932가구 규모 고덕 그라시움이 입주하고 래미안 명일역 솔베뉴(6월·1900가구), 고덕 롯데캐슬 베네루체(12월·1859가구) 등 다수의 대단지가 입주 예정이다.

역전세난 장기화 가능성은 낮아…재건축 이주 물량이 관건

전문가들은 입주 증가에 따른 전세금 하락이 한동안 지속되겠지만 역전세난이 발생해도 장기화될 가능성은 낮다고 전망한다. 새 아파트 입주가 무한정 늘어날 수 없고, 재건축에 따른 이주 수요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 2008년 잠실에서는 엘스, 리센츠 등 신축 아파트 1만8000가구의 입주가 몰리며 30평대의 전세금이 2억원대 초반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입주가 마무리된 후 시세는 빠르게 회복됐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올해와 내년까지는 서울 새 아파트 입주가 많지만 재건축·재개발 규제 여파로 2021년 이후에는 다시 입주가 급감할 전망"이라며 "입주가 몰린 지역은 단기적으로 전세금이 떨어질 수 있지만 과거 잠실 사례를 볼 때 역전세난이 장기화될 가능성은 낮다"고 했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송파구 미성아파트 등 재건축 예정 아파트의 이주 수요도 있기 때문에 강남 4구 입주 충격이 오래가진 않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