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기업들의 전환사채(CB)와 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 메자닌 발행액이 5조원을 웃돈 것으로 나타났다. CB 및 BW는 당장은 부채이지만, 주가가 오를 경우 CB는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고 BW는 주식 발행 권리를 행사할 수 있어 주가에 부담으로 작용한다.
메자닌 발행 급증은 지난해 4월 출시된 코스닥벤처펀드 영향으로 풀이된다. 코스닥벤처펀드는 코스닥시장 활성화를 위해 코스닥 신규 상장기업 공모물량의 30%를 우선 배정하는 혜택을 준 대신, 운용자산의 최소 절반을 코스닥기업 주식(공모주 포함)에 투자하도록 한 펀드다.
그런데 투자 대상에는 코스닥기업 주식뿐 아니라 CB, BW도 포함됐다. 코스닥벤처펀드 매니저들은 변동성이 큰 주식보다 CB, BW 투자를 선호했고, 이 영향으로 이자율이 0%에 가까운 메자닌 발행이 잇따랐다. 이 메자닌이 수시로 주식으로 전환돼 시장에 매물로 나오고 있어 주가에 부담을 주는 상황이다. 증권업계에서는 정부 개입으로 시장의 수급이 왜곡된 사례라고 지적한다.
23일 NH투자증권에 따르면, 지난해 메자닌 발행액은 약 5조원으로 전년대비 52% 넘게 증가했다. 기존에 발행됐다가 주식으로 미전환된 물량을 포함하면 전체 메자닌 잔액은 10조원을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헤지펀드·코스닥벤처펀드 인기에…이자율 낮은 메자닌 발행 남발
메자닌 발행액은 2015년까지만 해도 1조원을 밑돌았으나 2016년 이후 빠르게 성장했다. 헤지펀드가 인기를 끌고 증권사 프랍트레이딩이 메자닌을 선호하는 현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난해 출시된 코스닥벤처펀드의 매니저들이 메자닌 물량을 구하면서 품귀 사태가 빚어졌다.
한 코스닥벤처펀드 매니저는 "코스닥 주식을 사라고 만든 펀드이지만, 매니저 입장에서는 펀드의 절반을 코스닥 종목으로 담는 것은 위험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고 했다. CB나 BW는 일단 기업이 채무불이행에 빠지지 않는 이상 최소 원금은 건질 수 있고, 주가가 오를 경우 전환해 차익을 내면 돼 펀드 매니저들이 선호할 수밖에 없다.
코스닥벤처펀드 설정액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3조원을 넘는다. 지난해 4월 출시 한달만에 2조원 넘게 몰렸다. 코스닥벤처펀드가 인기를 끈 이유는 공모주의 30%를 무조건 벤처펀드에 배정하는 혜택 때문이다. 현재는 공모주에 대한 인기가 많이 사그라들었으나 작년 초만 해도 분위기가 달랐다. 2016년 말 상장한 바이오 기업 신라젠(215600)이 공모가의 10배 이상으로 치솟으면서 지난해 초만 해도 코스닥 공모주에 대한 열기가 뜨거웠다.
문제는 지난해 이후 발행된 메자닌의 상당액이 이자율 0%로 발행됐다는 점이다. 수요가 급증하면서 발행기업 측에서 굳이 이자를 지급하지 않아도 돈이 몰린 탓이다. 작년 하반기에만 삼천당제약(000250), 대원, 대창솔루션(096350), 바이로메드등이 이자율 0%로 CB나 BW를 찍었다.
한 코스닥기업 관계자는 "회사가 당장 망할 곳만 아니라면, 이자율 0%를 내걸어도 기관이 큰 관심을 갖는다"면서 "기관 입장에서는 원금보장형 주식 상품인 셈"이라고 강조했다.
◇주가 양호하면 전환 물량 쏟아져…코스닥 투자한다면 예의주시해야
메자닌은 유상증자와 달리 시장에서 당장 유통 물량으로 잡히지 않는다. 하지만 언제든 주식으로 전환될 수 있어 물량 규모를 예의주시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실제 이미 발행된 CB, BW가 한꺼번에 주식으로 전환돼 주가가 폭락한 사례가 있다. 에이프로젠 KIC(나라케이아이씨)가 이 같은 경우다.
에이프로젠 KIC는 지난해 말 주가가 7800원이었으나 지난 3일 발행주식총수와 비슷한 4213만여주가 추가 상장된다고 공시하자 주가가 사흘 연속 20% 넘게 급락해 3350원까지 떨어졌다. CB 및 BW 투자자들의 발행가는 2172원에 불과했다. 시세의 절반도 안되는 가격으로 CB, BW를 발행할 수 있다 보니 투자자들이 대거 전환에 나서 주가가 폭락한 것이다.
에이프로젠 KIC는 또 200억원 규모의 제15회차 CB 전환가가 7280원에서 3105원으로 조정됐다고 지난 21일 공시했다. CB와 BW는 주가가 하락하면 전환 및 행사가가 최대 70% 하향 조정될 수 있다. 가격이 조정되면서 전환가능 주식수는 274만여주에서 644만주로 급증했다.
최근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상어가족 캐릭터 상품을 제조 및 판매해 상어가족 수혜주로 분류되는 토박스코리아도 지난 16~17일 153만여주 규모의 CB, BW가 주식으로 전환된다는 공시가 나온 이후 15% 가까이 하락했다.
최창규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코스닥지수가 최근 반등을 보이고 있으나 지난해 5월 800포인트를 상회했다는 점을 떠올리면 아직 갈길이 멀다"면서 "추가적인 반등은 메자닌의 주식 전환과 이에 따른 오버행이슈(잠재 매물 우려)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에 코스닥 투자는 메자닌 발행 여부를 꼼꼼히 확인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