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가 국내 첫 영리병원으로 허가받은 제주도 녹지국제병원의 투자 배후에 한국인인 홍성범 서울리거미용성형병원 총원장이 있다며 녹지국제병원의 인허가가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현행 법에 따라 제주도 영리병원은 외국 자본만 투자가 가능하고 외국인 환자만 받아야 하는데, 국내 자본이 녹지국제병원에 우회 투자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의료·종교·노동·시민사회단체 등 98개 단체가 모인 의료민영화저지범국민운동본부는 16일 서울 중구 정동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녹지국제병원 사업계획서에 결정적 하자가 있고, 국내 자본의 우회 투자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고 주장하며 "제주도와 문재인 정부는 제주영리병원 허가를 즉각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의료민영화저지범국민운동본부가 16일 서울 중구 정동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제주영리병원 철회를 주장했다.

원희룡 제주도특별도지사의 녹지국제병원 개설 허가 절차에 문제가 있으며, 법으로 금지하고 있는 국내 자본의 우회 투자 의혹이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현행법상 순수 외국 자본으로만 영리병원 투자가 가능하다.

이 단체는 국회 정의당 윤소하 의원실을 통해 보건복지부에 요청한 자료를 근거로 제시했다. 의료사업 허가를 받기 전 제출해야 하는 사업계획서에 '병원사업 경험'이 반드시 포함돼야 하는데, 이 자료에 따르면 녹지그룹이 낸 사업계획서에는 해외투자협력업체인 중국 비씨씨(BCC)와 일본 이데아(IDEA)'의 업무협약(MOU)만 있다. 즉, 녹지그룹은 의료사업 경험이 전무한 부동산전문개발회사라는 주장이다.

신인수 민주노총 법률원장(변호사)은 "제주 영리병원은 위법하다"며 "허가 요건 중에는 유사 사업 경험이 있어야 하며 외국인 만이 제주도에 영리병원 만들 수 있는데, 이번에 허가받은 녹지그룹은 부동산 전문개발회사이지 병원사업 경험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

또 국내 의료기관이 녹지그룹을 우회 투자한 것이라는 의혹도 제기했다. 제주도 조례 15조 2항 등에서 국내 의료진과 의료기관의 영리병원 우회 진출을 금지하고 있다.

이 단체는 녹지그룹의 사업계획서를 보면 병원네트워크인 중국의 비씨씨(BCC)와 일본의 이데아(IDEA)가 영리병원 환자 송출과 사후 관리를 맡는다고 돼 있는데, BCC와 이데아 모두 사실상 한국 의료진과 의료기관이 핵심이라고 주장했다.

전진한 무상의료운동본부 정책위원은 "녹지국제병원의 제2투자자는 지분율 5.6%의 ' 중국 BCC로, BCC 소속 최대 규모의 병원이 바로 휴젤 창업자이자 전(前) 대표인 홍성범 전 BK성형외과 원장이 설립 운영하는 '서울리거'(전 '세인트바움') 성형 영리병원이고, 이데아 의료네트워크 중 하나인 동경미용외과는 서울리거병원의 일본 대표로, 사실상 '홍성범과 관련된 네트워크'"라고 주장했다.

즉, 홍성범 원장이 설립한 서울리거병원이 BCC를 매개로 영리병원인 녹지국제병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구조로, 순수 외자 투자 영리병원이 아니라는 게 이들이 주장하는 핵심 의혹이다.

의료민영화저지범국민운동본부가 제시한 녹지국제병원 사업 구조.

전 위원은 "국내 영리병원의 꿈을 키워온 국내 의료진들과 의료기관 등의 국내 법인들이 외국자본이라는 탈을 쓴 BBC와 이데아의 핵심 실체"라며 "제주도와 박근혜정부, 문재인 정부의 보건복지부는 사업계획서도 제대로 보지 않고 영리 병원을 승인·허가해줬다"고 주장했다. 그는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수첩에서도 '국내 자본 우회 투자 문제를 해결하라'는 박근혜 지시가 나왔다"며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시가 문재인 정부에도 그대로 살아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신인수 변호사는 "국내 의료기관이 녹지그룹에 우회 투자했다는 의혹에 대해 녹지그룹과 제주도 모두 제대로 된 해명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제주도청은 우회 투자 의혹에 대해 "인허가 절차에 문제는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으며, 원희룡 도지사도 시민단체의 질의에 아직까지 답하지 않고 있다.

제주도는 지난달 25일 "보건복지부는 지난 2015년 12월 제주도로 보낸 공문에서 외국의료기관인 녹지국제병원의 사업 시행자인 '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유한회사'는 자본금 2000만 달러인 외국인 투자법인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며 우회 투자 논란에 선을 그은 바 있다.

의료민영화저지범국민운동본부는 "제주도에서 녹지국제병원 허가를 철회하지 않을 경우, 영리병원 허가 취소 소송과 함께 원희룡 제주지사와 전현직 보건복지부장관을 직무유기로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녹지국제병원도 '허가'라는 산을 넘었지만 아직 향배가 불투명한 상태다. 제주도에 따르면 녹지국제병원은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개원 의사를 밝히지 않고 있다. 병원 문을 열지 않으면 청문회가 열리고 의료사업 허가가 취소될 수 있다.

지단 달 5일 의료사업 허가를 받은 제주녹지국제병원은 2015년 12월 보건복지부로부터 사업계획 승인을 받았다. 총 사업비 778억원을 투입해 2017년 7월 서귀포시 동흥·토평동 일대 헬스케어타운 부지에 47병상 규모의 병원 건물을 준공했다. 당초 의사 9명, 간호사 28명, 간호조무사 10명, 국제코디네이터 18명 의료팀과 행정직 134명을 채용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개원을 앞두고 수십명의 인력이 빠져나간 상태다. 의료법에 따라 녹지국제병원은 허가 후 90일 이내인 오는 3월 4일까지 개원하고 진료를 개시해야 한다.

☞ 영리병원 구분
의료법에 따라 우리나라는 면허를 소지한 의사 개인 또는 비영리법인만 병원을 경영할 수 있다. 대학병원,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등은 대기업이 세웠다고 하지만 모두 비영리법인이다. 서울아산병원은 비영리법인인 아산복지재단이 설립·운영하고 있으며, 삼성서울병원은 사회복지법인 삼성생명공익재단이, 강북삼성병원은 의료법인 삼성의료재단이 설립·운영하고 있다. 비영리법인인 병원은 진료수익 등 이익을 병원 내부에 쌓아둬야 하며, 이를 설립 당시 투자한 주주들에 배당할 수 없다. 반면, 영리병원의 경우 주주들로부터 투자를 받을 수 있고 병원의 수익을 주주들에게 배당을 해줄 수 있다. 제주 녹지국제병원도 설립 종자돈이 중국 부동산개발업체로부터 나왔고 병원에서 생기는 이익을 배당으로 그 회사가 받아갈 수 있는 구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