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후 4시쯤 서울 경복궁 동편주차장은 대기업 임직원과 취재기자 등으로 꽉 들어차 북적였다. 수은주가 뚝 떨어졌다. 맹추위에 코가 벌겋게 달아올랐지만 모두 '정위치'를 지켰다.

30분쯤후, 대기업 총수들을 태운 관광버스가 주차장에 들어섰다. 기업 직원들이 경로 확보를 위해 인간띠를 만들기 시작했다. 직원들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5일 청와대에서 열린 '2019 기업인과의 대화' 행사 후 경복궁 동편주차장으로 복귀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취재진이 몰려들자 멋쩍은 듯 웃음을 짓기도 했다.

첫번째로 버스에서 내린 것은 허창수 GS 회장이었다. 허리를 숙여 취재진을 한번 바라보고 걸음을 이어갔다. 황창규 KT 회장, 손경식 CJ 회장, 최정우 포스코 회장, 신동빈 롯데 회장,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박정원 두산 회장이 뒤를 이었다. 얼굴을 살짝 아래로 한 총수들은 지체하지 않고 차량에 올랐다. 1분이 채 안걸렸다.

손 회장은 총수들 가운데 유일하게 이날 행사의 분위기를 전했다. 손 회장은 '어떤 건의를 했나'라고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저는 상법개정안하고 공정거래법 기업에 부담이 안 되도록 해달라고 건의했다"면서 "거기에 대한 구체적인 코멘트는 없었다"고 했다. 현장 분위기를 묻는 질문에는 "전반적인 분위기는 화기애애했고 다들 좋게 좋게 이야기 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두번째 버스는 주차장 진입에 애를 먹었다. 첫번째 버스에서 내린 총수들 의전차량과 관광버스 11대가 몰린 까닭이다. 거북이 걸음을 하는 버스 안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몰려든 취재진에 어색한 듯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이 부회장 옆자리에는 최태원 SK 회장이 앉아 있었고, 뒤쪽에는 현대차 정의선 부회장과 구광모 LG 회장이 나란히 앉았다. 이들 총수들은 간담회 이후 문재인 대통령과의 산책으로 복귀 시간이 늦어졌다.

오후 4시50분쯤 버스 문이 마침내 열렸다. 총수들은 바로 내리지 않았다. '스크럼'을 짜듯 한 데 모여 무언가를 상의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가장 먼저 버스에서 내려 왼편으로 향했다. 뒤이어 최태원 회장이 굳은 얼굴로 같은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뒤로 이 부회장이 머리를 살짝 숙인 채 오른쪽으로 기습적으로 나왔다. 이 부회장은 표정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옅은 웃음을 짓고 있었다. 취재진이 두갈래로 나누어졌다. 뒤이어 나온 구광모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도 각각 다른 방향으로 찢어졌다. 총수들은 출발할 때와 마찬가지로 말을 아꼈다.

15일 청와대에서 기업인과의 대화 행사를 마치고 신동빈 롯데 회장과 박정원 두산 회장이 경복궁 동편주차장에 정차한 버스에서 내리고 있다.

재계 총수들이 이례적으로 한자리에 모이는 이날 행사에 관심이 집중됐다. 청와대로 출발하기 전 총수들의 '사전 집결지'였던 대한상의 회관에는 오전 11시쯤부터 취재진과 주요 그룹 관계자 등 수백명이 몰렸다. 상의측은 주요 기업인들이 입장하는 경로를 따라 차단봉을 설치하는 등 안전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진땀을 뺐다.

이날 간담회는 격식을 허문 채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의 제안으로 참가자들은 상의를 탈의한 채 간담회를 진행했다. 좌석은 세계지도 구조물을 바라보고 세 구역으로 나눠 둥글게 배치됐다. 기업인들은 혁신성장을 위한 '규제 해소'를 정부에 건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은 "정부가 여러분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고 현장의 어려움을 신속하게 해소하는 데 힘쓰겠다"고 화답했다.

박용만 회장은 "민감한 이슈를 포함해 기업들이 하고싶은 이야기들을 허심탄회하게 말씀드렸다"며 "즉답을 할 수 없는 간단치 않은 이슈가 많았는데 현장의 목소리가 잘 전달됐으리라고 생각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