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 지역 수신(受信)의 36%를 점유하고 있는 DGB금융그룹이 10개월째 공석인 대구은행장 선임을 놓고 내홍을 겪고 있다. 현 금융지주 회장이 자회사인 은행의 행장을 겸직하려 하자, 일부 경영진과 노조가 '과도한 권력 독점'이라며 반발하는 성명을 내는 등 단체 행동에 나섰다. 15일 은행 이사회가 임원후보추천위원회(임추위)를 열어 지주 회장의 은행장 겸직 안건을 논의하는데, 안건이 통과되지 않을 경우 지주 차원에서 '주주 제안권'을 행사해 주총을 여는 방안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구은행에 무슨 일이
지주 자회사최고경영자후보추천위원회(자추위)는 지난 11일 회의를 열고 2020년 12월 31일까지 김태오(65) 현 DGB금융그룹 회장의 대구은행장 겸직을 결의했다. 자추위는 "지난 10개월간 이어진 대구은행 경영 공백을 더는 지속할 수가 없어 대구은행에서 추천한 은행장 후보자 2명을 포함한 6~8명의 자질을 종합 심의했다"며 "그 결과, 달리 마땅한 후보를 찾기 어려워 김태오 현 지주 회장이 한시적으로 은행장을 겸직하는 게 가장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대구은행은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표면적으로는 김 회장이 대구은행이 아닌 타행 출신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작년 6월 취임한 김 회장은 2011년 DGB금융그룹 출범 이후 첫 외부 출신 수장이다. 1978년 외환은행에 입사해 하나금융지주 최고인사책임자(CHRO) 부사장, 하나은행 고객지원그룹 총괄 부행장, 하나생명 대표이사 등을 지냈다. 경북 왜관 출신으로 경북고,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전임 박인규 회장이 채용 비리와 비자금 조성 등 혐의로 구속되며 물러난 자리에 취임한 김 회장은 '폐쇄적 조직 문화 탈피' '공정한 인사' 등을 취임 일성으로 내세우며 대대적 물갈이 인사부터 단행했다. 그간 그룹 내에서 발생한 비자금 조성과 채용 비리 등의 사건·사고가 특정 학맥 위주로 짜인 폐쇄적 인사 때문이라는 지적을 의식한 것이다.
◇경북고 Vs 대구상고 뿌리 깊은 파벌 싸움
겉으로는 김 회장의 '출신 은행'을 거론하고 있지만 이번 행장 겸직 갈등의 바탕에는 '출신 학교' 파벌 싸움이 자리하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김 회장 취임 후 단행된 지난해 7월 인사에서 물러난 임원 11명 중 9명이 대구상고·영남대 출신으로 직전 박인규 회장 겸 대구은행장인 '박인규 라인'으로 분류된다. 최근까지 대구은행의 주도권을 잡아온 이들은 경북고 출신인 신임 김 회장과 사사건건 대립 양상을 보였다. 작년 5월 대구은행장으로 내정됐다가 스스로 물러난 김경룡 전 DGB금융 부사장 역시 '물갈이 대상'으로 분류된 대구상고·영남대 출신이다. DGB그룹 관계자는 "대구은행이 지역 기업이다 보니 이 지역 양대 명문고인 대구상고와 경북고 출신이 많고, 특히 여타 은행처럼 상고(商高) 출신들의 입김이 센 것도 사실"이라고 전했다. 대구은행 내 경북고 인맥도 역대 은행장 11명 중 4명을 배출했다.
부점장급 이상 간부 사원들로 구성된 대구은행 노조는 14일 성명을 내고 "노조와 전 임직원, 지역사회는 지주 회장과 은행장 겸직을 결단코 반대한다"며 "내부 출신 후보자를 선출하지 않을 경우 전 직원과 함께 강력 투쟁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지주는 은행이 반발해도 별수 없이 겸임 절차를 강행하겠다고 밝혔다. 지주 측은 "은행의 100% 주주인 지주 자추위에서 은행장 후보 추천 고유권을 갖고 있다"며 "은행 임추위는 지주 자추위에서 추천받은 후보자에 대해 법규상 자격 기준 적합 여부만 따질 수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DGB그룹 내분에 대해 금융위 관계자는 "지주 회장의 행장 겸직이 절차상 하자는 없는 걸로 보인다"면서도 사태를 예의 주시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