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처 출신 홍 부총리, 기재부 핵심 보직에 예산처 출신 배치
정책·세제는 재경부, 예산·재정은 예산처 출신이 맡던 관행 깨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작년 12월 28일부터 4차례에 걸쳐 1급(차관보·실장급) 2명, 본부국장 7명을 교체하는 인사를 순차적으로 단행했다. 취임 후 첫 인사였다. 공석인 차관보와 국제경제관리관 등 1급 두 자리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국실장급 인사가 마무리돼 '홍남기호(號) 기재부'의 진용구축이 마무리된 것이다.
홍 부총리의 첫번째 국·실장급 인사였던 이번 인사에 대해 기재부 안팎에서는 'EPB(구 경제기획원)가 철옹성을 쌓았다'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예산 편성과 경제개발전략 등을 수립한 경제기획원의 역사를 계승한 기획예산처 출신들이 기재부의 주요 정책을 결정하는 경제정책라인을 장악했기 때문이다.
경제정책라인은 경제정책국과 정책조정국, 경제구조개혁국, 장기전략국과 이들 국을 총괄하는 차관보 보직을 의미한다. 역대 정부에서 경제정책라인은 주로 재무부의 역사를 계승한 재정경제부의 금융·거시정책통(通)들이 국·실장으로 배치됐다. 그렇지만, 홍 부총리가 단행한 이번 인사에서 경제정책라인의 주요 국장 보직을 예산처 출신들이 차지했다. 거시경제정책을 수립하는 경제정책국장 자리에는 재경부 출신 이억원 국장(행정고시 35회)이 선임됐지만, 나머지 국장 보직은 예산처 출신이 배치된 것이다.
규제혁신과 혁신성장 정책을 책임지는 정책조정국장은 예산처 복지전략팀장을 거친 한훈 국장(35회)이 선임됐고, 최저임금 등 노동·복지정책 등을 관장하는 경제구조개혁국장도 예산처 출신 우병렬 국장(35회)이 대외경제국장에서 자리를 옮겼다. 중장기 발전전략을 수립하는 장기전략국장에 우범기 국장(35회)이 유임됐기 때문에 경제정책라인 4국 중 3국이 예산처 출신 국장으로 채워진 셈이다. 정책라인 4국을 총괄하는 차관보에는 방기선 전 정책조정국장(34회)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예산처에서 정책기획팀장, 기재부에서는 국토예산과장, 복지예산과장, 경제예산심의관 등을 거쳤다.
이들은 모두 2008년 기재부 출범 이후에는 국·과장으로 예산, 재정정책 실무를 맡았다는 공통점도 있다. 이 때문에 재경부 출신들의 본산이었던 경제정책라인이 예산처 출신들에게 장악됐다는 반응도 나온다. 경제기획원 사무관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했고, 기획예산처 등에서 핵심 경력을 쌓은 홍남기 부총리의 이력이 이런 인사구도를 형성했다는 반응이 나온다. 홍 부총리는 경제발전 5개년 계획 등으로 한국 경제 성장을 이끈 경제기획원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는 점에 매우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기재부 내 다른 핵심 요직도 예산처 출신들의 몫으로 돌아가고 있다. 기재부의 대외협력업무와 내부 안살림을 책임지는 기획조정실장(1급)에 문성유 실장(33회)이 임명된 것이 대표적이다. 대표적인 예산통인 문 실장은 예산처 국방재정과장을 거쳤고, 기재부로 합쳐진 이후에도 예산총괄과장, 사회예산심의관 등 예산실 핵심 직위를 거쳤다.
문재인 정부의 신남방·신북방 정책을 관장하는 대외경제국장도 박충근 국장(34회)이 선임됐다. 박 국장은 기재부에서 대외경제총괄과장을 역임하기는 했지만, 기획예산처 농림해양예산과장, 재정사업평가팀장 등을 거쳐 예산처 출신으로 분류된다. 정부의 중장기 재정운용계획 등을 만들고 각종 재정개혁 이슈를 관장하는 재정혁신국장도 예산처 균형발전팀장 출신 백승주 국장(34회)이 선임됐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인사구도가 기획재정부의 고질적인 칸막이 문화를 없애는 인사실험이라는 반응도 나온다. 기획예산처와 재정경제부가 통합된 2008년 이후 정책·세제·국제금융은 재경부 출신이, 예산·재정·공공정책은 예산처 출신이 담당한다는 역할분담이 칸막이처럼 존재했었다. 이 때문에 예산처와 재경부가 통합된 기재부의 화학적 융합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받았다. 이번 국·실장 인사가 칸막이 해소를 통한 융합을 모색하다는 차원에서 의미가 있다는 반응이다.
예산처 출신들이 경제정책라인에 집중배치된 반면, 재경부 출신은 예산·재정·공공정책 부문에 고루 배치됐다. 연간 162조원에 이르는 보건·복지·노동 예산 대부분과 국민연금 등 연금재정을 책임지는 예산실 복지예산심의관에 재경부 출신 류상민 국장(35회)이 배치된 것이 대표적이다.
류 국장은 기재부에서 국제기구과장, 외환제도과장, 국제금융협력총괄과장 등 국제금융 분야에서 경력을 쌓았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청와대 경제수석실 선임 행정관 등으로 근무했기 때문에 현 정부 핵심 국정과제인 복지분야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게 선임 배경으로 지목된다.
대형 국책사업에 대한 예비타당성조사 관련 정책을 관장하는 재정관리국장에도 재경부 출신 윤성욱 국장(35회)이 임명됐다. 그는 기재부에서 정책조정총괄과장을 거쳐 혁신성장본부에서 선도사업1팀장 등을 역임했다. 경제활성화에 대한 재정사업의 역할을 극대화할 수 있는 조정역할이 기대된다는 반응이다.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정책 기획 등을 담당하는 공공혁신심의관에 경제정책국 미래전략과장, 물가정책과장을 거친 이용재 국장(35회)을 배치한 것도 융합형 인사로 평가된다.
하지만, 이 같은 인사실험에 대해 세종시 관가 안팎에서는 '신선한 실험이지만, 전문성 부족으로 문제점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게 관건'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한 기재부 출신 전직 고위 관료는 "부처 내 칸막이를 제거한다는 것은 관료주의적 병폐를 제거한다는 차원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많지만, 국장급 고위 관료 인사에 필요한 전문성에 대한 고려가 충분히 이뤄졌는지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있다"면서 "전문성이 부족한 정책적 판단으로 혼선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