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국내 은행들의 주가는 거의 망한 회사급입니다."(자문사 대표 A씨)
KB금융, 하나금융, 우리은행 등 한국 대표 은행들의 평균 주가순자산비율(PBR)은 평균 0.49배. PBR은 주가와 주당 순자산을 비교한 수치로, PBR이 낮을수록 저평가돼 있다는 뜻이다. A씨는 "우리나라 은행들의 PBR이 0.5를 깨고 내려갔다는 것은 그만큼 시장에서 잊히고 관심도 없다는 얘기"라며 "주주(株主)들이 지금 기업을 청산시키고 나눠 가져도 현재 주가 대비 돈을 더 많이 받아갈 수 있는 정도의 형편없이 낮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금융업이 공포에 질렸던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때에도 은행 PBR은 0.53배가 넘었다. 김은갑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은행 업종의 올해 예상 PBR은 0.47배로 더 낮아질 전망"이라며 "경기 둔화와 대출 금리 규제 등 심적 피로가 쌓인 상황이어서 주가가 의미 있는 상승을 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역대 최상급 순익 냈지만 주가는 28% 하락
금융지주사·은행들의 작년 실적은 역대 최대치를 기록할 전망이다. 7일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KB금융·신한지주·하나금융·우리은행 등 4사의 2018년 순이익(예상치)은 11조2492억원으로, 전년 대비 13% 증가했다. 역대 최상급 실적이지만 주가는 맥을 못 추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작년 초 한때 1014선까지 올랐던 KRX은행 지수(금융지주사 9곳 주가로 만든 지표)는 7일 727.97로, 작년 고점 대비 28% 하락했다. 같은 기간 19% 떨어진 코스피 지수보다 크게 나빴다. 개별 회사로는 하나금융이 작년 고점 대비 37% 떨어지면서 낙폭이 가장 컸고 7일엔 52주 최저가 기록도 갈아치웠다. KB금융과 신한금융도 각각 34%, 28% 떨어졌다. 은행들은 그동안 대출 영업을 확대해서 수익을 챙겨왔는데, 정부의 대출 억제책에 더해 내수 경기 악화로 은행 빚을 갚지 못하는 취약 차주가 늘어 연체율이 오를 것이란 우려 때문에 주가 상승에 제동이 걸리는 모양새다. 한정태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 인하나 가산 금리 인하 등과 같은 현 정부 규제책은 은행 주주나 기업에는 좋은 국면이 아니다"라면서 "은행주는 실적 정점과 맞물리면서 주식 시장에서 소외도 지속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따뜻한 이불 속 국내 은행들
국내 은행들은 예전보다 이익 규모가 크게 늘었지만, 큰 덩치 덕분이지 수익력 자체가 좋은 건 아니다. 2017년 글로벌 100대 은행을 기준으로 계산해 보면, 한국 6대 은행의 자기자본이익률(ROE)은 7.95%로, 나머지 은행 94곳의 평균 ROE(9.86%)에 크게 못 미친다. 권흥진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은행들이 금융 중개 서비스를 수행하기에 필요한 최소한의 수익성(ROE 기준 약 8%)을 올리지 못하면, 자기자본비율을 유지하기 위해 외부에서 높은 비용으로 자본을 조달해 대출 금리가 높아지고 대출 조기 회수 우려도 높아진다"고 말했다.
김기주 KPI투자자문 대표는 "은행주는 지금 따뜻하게 먹고 사는 안전한 이자 수익 위주 장사에, 디지털로 넘어가지 못한 구시대적 사업 형태, 금융 당국 규제와 지배 구조 불확실성까지 겹치면서 저평가받고 있다"고 말했다. 미래 정체성을 담은 큰 그림을 제대로 그리지도 못한 위기 상황에서 노사 갈등 문제까지 생기면서 주가 상승은 더 요원해졌다.
외국계 운용사 출신 B씨는 "국내 은행들은 미국 은행처럼 부가가치가 높은 투자은행(IB) 업무를 하지 않고 기껏해야 예대 금리 차이나 수수료 수입으로 이익을 내는데, 이를 고려한다면 1억원에 육박하는 직원 연봉은 매우 높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국민은행 파업 이슈에서 드러났듯이, 시중은행 종사자들은 과점 체제에서 편하게 돈을 벌면서도, 자기 이익에만 집착하는 모럴해저드 상황이 심각하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는 투자자들은 은행주를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7일 미국발 훈풍에 코스피 지수는 전날 대비 1.34% 오르며 상승했지만, 국내 금융지주·은행주들은 크게는 5% 선까지 하락하며 약세로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