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천년 고도(古都)로 유명한 교토(京都)에 최근 IT 기업 설립이 붐을 이루고 있다. 지난해 4월 교토 중심가 시조가라스마 거리에 전자제품 업체 파나소닉이 디자인 센터 '파나소닉 디자인 교토'를 세운 게 시작이다. 두 달 후엔 일본 최대 모바일 메신저 라인도 같은 동네에 '라인 교토'를 설립했다. 일본의 스마트폰 앱 개발사와 온라인 블로그 서비스 업체·인터넷 광고 업체 등 크고 작은 IT 관련 기업들도 인근에 '교토 오피스'를 잇따라 냈다. 이 지역은 교토역과 관광 명소인 기온 사이에 위치해 호텔이 새로 많이 들어선 지역이다. 교토는 IT 기업 유치를 위해 어떤 혜택도 내걸지 않았고, 오히려 관광도시로서 개발 규제가 많고 임대료 부담도 만만치 않다. 그런데도 교토가 IT 기업들의 선택을 받는 이유는 뭘까.
◇IT 기업, '살고 싶은 교토'로
일본의 유명 구인구직 업체 '리쿠르트'는 2019년을 관통할 키워드로 '인재 쟁탈'을 선정했다. 일손 부족 문제에 시달리는 기업들이 신규 채용에 만족하지 못하고, 서로의 인재를 뺏는 쟁탈전을 벌인다는 것이다. 실제 일본 구인구직 플랫폼들의 광고를 보면 직장을 찾는 사람에겐 '더 좋은 회사로 전직하자', 사람을 구하는 기업들엔 '빠르고 확실한 채용을 담보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IT 업계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2030년 IT 업계에 최소 41만명, 최대 79만명의 인력 부족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예측했다. 특히 인공지능(AI)·빅데이터·사물인터넷(IoT) 관련 고급 인재는 2020년에 이미 4만8000명이 부족할 것이라고 추산했다.
일본의 '정신적 수도'로 불릴 정도로 전통 고도 이미지가 강한 교토에 IT 업체가 몰리는 것도 이 같은 '인재 확보 경쟁' 때문이다. 한 해 관광객만 2000만명이 몰리는 교토라는 도시의 '브랜드'가 직원 채용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실제 라인 교토의 지난 6월 엔지니어 채용 공고엔 1000명의 지원자가 몰렸는데, 이 중 800명이 외국인이었다고 한다. 라인 측은 "외국인 엔지니어들은 '일본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교토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큰 것 같다"고 요미우리신문에 말했다.
파나소닉도 마찬가지로 "채용 제안에 처음에 난색을 표하던 유럽 출신 디자이너가, 교토에 디자인 센터를 만든다는 설명을 듣고 수락했다"고 했다. 도쿄 시부야에 본사를 둔 명함 데이터화 및 관리 서비스 업체 '산산(sansan)'도 지난 10월 혁신연구소를 교토 유명 관광지 가와라마치에 만들었다. 100년 역사의 일본 전통 목조 건축물을 개조해 만든 사무실로, 일본식 정원까지 딸려 있다. "역사와 문화의 거리 교토에 이런 사무실이 있다는 점이 외국인 엔지니어들에게 높이 평가받고 있다"고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전했다.
교토가 도쿄보다 IT 기업 숫자가 적은 반면 교토대·도시샤대·리쓰메이칸대 등 명문대가 몰려 있는 것도 장점이다. NTT 데이터, NEC 등 일본 유명 회사 6곳은 아예 교토대와 손잡고 올해부터 디지털 인재 육성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로 했다. 6개사가 1년에 총 3000만엔을 기부해 학부생과 대학원생·사회인을 대상으로 AI와 IoT 기술 활용법, 시스템 기획 등 실무를 가르친다는 구상이다.
◇대기업 파격 연봉, 신흥 기업은 해외로
대기업들의 경우 IT 인재를 모셔오기 위해 '높은 연봉'을 내세우고 있다. 일본은 직장 규모나 직종별 연봉 차이가 적은 편이다. 연공서열을 중시하는 전통 때문이다. 하지만 AI나 IoT 등의 산업 발달로 IT 인재 부족 현상이 심각해지자 이야기가 달라졌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시스템 개발 업체 NTT데이터는 IoT 분야의 고급 인재 채용을 위한 별도의 인사제도를 신설했다. 2000만~3000만엔(2억~3억원)의 파격적인 연봉은 물론 성과금 비중을 높였다. 이 회사의 평균 연봉은 820만엔(약 8200만원)이다. 라인 역시 AI와 IoT 분야의 젊은 엔지니어들에게 연봉 1000만~2000만엔을 지불하고 있다. 일본의 지마켓에 해당하는 의류 판매 사이트 조조타운은 지난해 4월 최고 연봉 1억엔(약 10억원)을 내세워 인재 채용에 나서기도 했다.
'머니 게임' 대신 베트남과 인도 등 해외로 눈을 돌리는 기업들도 나왔다. 중고 물품 매매 사이트인 신흥 IT 대기업 메루카리는 지난 10월 신입사원 100명 중 32명을 인도 출신으로 뽑았다. 구글 최고 경영자를 배출한 명문대인 인도공과대 출신을 포함해 모두 AI 전문가들이다.
입사 오리엔테이션 자리에는 인도 출신 신입사원들의 부모까지 초대해, 대표가 직접 자사의 미래 비전을 소개했다. 가계부 휴대폰 앱 개발사인 머니포워드는 이달 내 베트남 인재 채용을 위한 베트남 사무실을 개소할 예정이다. 현재도 베트남·중국 출신 엔지니어 7명을 고용한 상태라고 한다. 라쿠텐 역시 인도공과대학 내에 설치된 일본 기업과 인도 학생 교류 시설의 스폰서로 나섰다. 라쿠텐이 신규 채용하는 엔지니어는 80%가량이 외국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