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2025년이 되면 국민 5명 중 1명이 65세 이상인 '초고령 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처럼 오랜 시간 노부모 간병과 부양비 부담으로 가정이 뒤틀리고, 자식들의 집과 병원을 오가다 요양병원이나 시설에서 생을 마감하는 노년을 주변에서 흔히 보게 될지도 모른다. 정부는 이 같은 불행을 막기 위해 지난해 11월 노인이 지역 사회에서 돌봄(요양)을 받는 '커뮤니티케어(지역사회 통합 돌봄 서비스)'를 올해부터 순차적으로 실시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자식이 부모를 부양하는 유교적 사회가치가 지배하는 한국 사회에서 커뮤니티케어는 아직 낯선 의제이다. 조선비즈는 2019년 새해를 맞아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사회복지 모델을 실현한 영국과 '평등과 분배'의 나라 덴마크의 커뮤니티케어 현장을 살펴보고 우리는 고령화 사회를 어떻게 준비하고 맞이할지 고민해 봤다.

2018년 12월, 영국 런던 시내 거리를 걷고 있는 노인.

◇ 아프면 병원·시설로 격리? NO! 살던 곳에서 편하게 진료와 돌봄받아

지난해 12월, 영국 런던 템스강 남쪽 서덕(Southwark)지구에 위치한 2층짜리 집 앞. 작업치료사 캐롤라인이 초인종을 누르자 백발 머리의 70대 할아버지 톰(가명)씨가 의료용 목발을 짚고 현관으로 나와 반겼다. 바로 전날에는 다른 물리치료사가 할아버지 댁으로 와 톰 할아버지와 함께 집 밖으로 나가 걷기 연습을 했다.

톰 할아버지가 이들과 인연을 맺은 지는 약 한 달이 됐다. 톰 할아버지는 10월 말 킹스컬리지종합병원에서 고관절 교체술을 받고 11월 중순에 퇴원해 아직은 거동이 어려운 상태였다. 병원에서 퇴원한 톰 할아버지의 회복과 요양(돌봄)을 이어 맡는 건 가족도, 시설도 아닌 바로 지역사회(커뮤니티·Community)였다.

종합병원에서 톰 할아버지의 입원 및 퇴원 경과를 주치의(GP·General Practitioner)에게 이메일로 알리는 한편, 할아버지가 거주하는 지역사회에도 통보한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가이스&세인트 토마스 영국국가보건서비스(NHS) 파운데이션 트러스트(Guy's and St Thomas' NHS Foundation Trust·GSTT) 소속 서덕지구통합돌봄지원팀(Intermediate Care Southwark 이하 ICS팀)이 톰 할아버지와 같은 서덕 지역 노인 환자들에 대해 돌봄(요양)을 제공한다.

수술 직후만 해도 외출은커녕 집에서 계단을 오르내리거나 화장실에 가 변기에 앉는 것도 두려워했던 톰 할아버지는 ICS의 돌봄 속에서 이제 제법 혼자 할 수 있는 게 늘었다. 처음엔 매일 하루에 2~3번씩 요양보호사가 할아버지 집으로 왔지만, 내주부터 주 3회로 방문 횟수를 줄이기로 했다.

ICS팀은 서덕 지역에 사는 고령 노인의 집을 매일 방문해 다양한 돌봄 통합 서비스를 제공한다.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사회복지사, 요양보호사 등 110명이 일하는데, 노인 환자마다 팀으로 꾸려진다.

이들은 지역 고령 환자들이 스스로 거동하고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화장실과 거실, 계단, 주방 등 주거 공간 곳곳에 필요한 시설과 도구를 지원·설치해주고, 건강 상태 회복 등을 통합적으로 관리해준다. 이를 통해 노인들이 병원이나 민간 요양시설에 의존하지 않고 지역사회 안에서, 자신의 주거 공간 안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다. 물론 노인이 내야 하는 비용은 없다. 이른바 '커뮤니티 케어'다.

작업치료사 캐롤라인이 톰(가명) 할아버지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2층 계단을 더욱 쉽고 안전하게 오를 수 있는 장비를 설치하기 위해 줄자로 확인하고 있는 캐롤라인.

이날 캐롤라인은 "(전날 방문한) 물리치료사가 2층 계단을 더 쉽게 오르내릴 수 있도록 도구를 설치해야 할 것 같다고 얘기했다"면서 2층으로 오르는 계단 사이 공간의 치수를 쟀다.

노인 돌봄에 투입된 전문인력은 매뉴얼화돼있는 질문 몇 가지로 단순히 확인하고 넘어가는 식의 행정적 서비스를 하는 게 아니다. ICS팀은 노인 개개인의 병력, 가족관계, 이웃, 종교생활, 취미활동 등 각종 정보를 모두 파악해 돌봄계획(케어플랜·care plan)을 짜고, 최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다른 요양보호사와 물리치료사 등 전문인력이 함께 투입돼 연속적으로 돌봄 서비스를 제공해준다. 신체적 불편과 정신적 불안도 살펴 '의료'와 연계시켜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한다.

톰 할아버지에게 커뮤니티의 돌봄 서비스에 대해 평가해달라는 말에 "10점 만점에 10점"이라고 답하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할아버지의 건강 상태가 회복돼 통합 돌봄 서비스가 종료되면 톰 할아버지는 주거 공간 안에서 스스로 생활하게 된다. 또 톰 할아버지의 건강 및 의료는 기존의 주치의(GP)가 맡는다.

ICS팀을 이끄는 총책임자인 GSST NHS 파운데이션 트러스트 소속 자 오브라이언(Jar O'Brien)씨는 "조기에 요양치료사를 보내 노인 환자가 하루 빨리 스스로 일상을 영위하도록 하는 게 가장 바람직한 결과"라며 "이게 안 된다면 보조기구를 설치해 기구들을 활용해 독립 생활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이것도 안 되면 최후 수단은 우리가 계속 도와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 "통합돌봄서비스 시행 1년, 노인 60% 자립 가능"

영국 런던 서덕지역에서 의료와 돌봄을 연계·통합한 '서덕지구통합돌봄지원팀(ICS) 서비스'를 운영하기 시작한 것은 이제 1년째로 아직 초기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이전에는 의료와 돌봄 조직이 분리 운영돼왔다.

ICS팀의 지난 1년간 서비스 운영결과를 분석한 결과, 제법 의미 있는 결과가 나왔다. NHS가 1년간 ICS팀 서비스 평가에 따르면, 하루에 두, 세번씩 매일 요양사들이 찾아가야했던 서덕 지역 거동이 불편한 노인의 60%가 서비스 종료 후 더 이상 돌봄서비스가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스스로 생활할 수 있게 됐다.

ICS팀 통합돌봄서비스를 받고 있는 서덕 지역 노인의 평균 연령대가 75~85세다. 병원에서 퇴원한 뒤 당장 누군가의 도움없이는 생활하기 어려웠던 고령 노인 10명 중 6명이 지역사회의 도움으로 다른 요양시설에 가지 않고 자신이 살던 곳에서 노후 생활을 계속 할 수 있게 됐다는 얘기다.

이러한 결과가 하루 아침에 나올 수 있었던 건 아니다. 영국은 2026∼2028년 노인 인구 비중이 20%를 돌파해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측된다. 영국 정부는 2001년 의료와 돌봄 서비스를 통합하는 내용의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영국 보건부가 의료와 돌봄을 통합하는 내용을 담은 법령을 제정하고, 법령 하에 NHS 5개년 계획(의료)과 케어액트(care act 요양 계획)가 발표되면서 각종 정책과 제도로 이어졌다.

특히 영국은 최근 '커뮤니티케어'를 더 강화하는 식의 개혁을 점진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기조에는 고령화로 인해 증가하는 의료비 지출과 재정 부담을 해소해보려는 영국 정부 의지가 짙게 깔려있다.

자 오브라이언(Jar O'Brien) ICS 총책임자(왼쪽)를 비롯한 영국 런던 서덕지구 통합돌봄서비스를 제공하는 가이스&세인트 토마스 영국국가보건서비스(NHS) 파운데이션 트러스트(Guy's and St Thomas' NHS Foundation Trust·GSTT) 소속 서덕지구통합돌봄지원팀.

자 오브라이언 ICS팀 총책임자는 "기존 의료·돌봄 분리 체제도 90%의 사람들에게는 괜찮을 수는 있지만, 건강이 안 좋고 통합적인 돌봄이 필요한 10%의 경우 분리된 체제로 인해 케어(돌봄)를 제대로 못 받아 생기는 문제가 크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특히 고령화로 인해 이 '10%'의 비중과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의료와 돌봄 통합 필요성을 강조했다.

'전문인력이 상당수 투입되는 데다 상당 기간 소요될 수 있는 만큼 서비스에 드는 비용이 너무 많은 것 아니냐'는 질문에 자 오브라이언 총책임자는 "그렇지 않다"며 "노인이 초기에 치료받고 처음부터 제대로 자립할 수있도록 하는 게 오히려 비용을 줄이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노인들이 아예 거동을 못해 더 많은 도움이 필요한 상태에 이르거나 건강 상태가 악화될수록 국가와 사회, 가정, 개인에게 훨씬 더 많은 비용 부담이 생긴다는 의미다.

자 오브라이언 총책임자는 통합돌봄지원, 커뮤니티케어에 대해 "오렌지 안에는 개별 과육 하나하나가 쪼개져 있지만 결국 하나의 오렌지(열매)이지 않느냐"며 "분리돼 있던 의료와 돌봄을 통합·연계하는 돌봄통합서비스 제도 역시 하나의 열매로 만드는 것"이라고 비유했다.

한편, 암과 같은 중증질환 등 위험군 노인 환자는 일반 통합돌봄서비스팀이 아닌 간호팀, 전문완화의료 인력으로 구성된 'NHS 소속 스페셜케어팀(@Home·Pal@Home)'이 맡는다. 이들은 일반적인 ICS에서 감당할 수 없는 중증질환자에 대한 재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특수팀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지역사회 통합돌봄지원서비스 종료 후에도 건강상태가 나빠지거나 자립이 어려운 지경에 이른 노인에 대해서는 NHS와 계약 형태인 민간돌봄업자로 구성된 '사회복귀지원팀(Rehab suppport worker)'에서 노인을 목욕 시켜주고, 노인이 거주하는 집에 편의 보조 기구를 설치해주는 등의 돌봄 서비스를 제공한다.

☞커뮤니티케어(Community Care)
커뮤니티케어는 돌봄(Care)을 필요로 하는 노인 등이 자택이나 그룹홈 등 지역사회(Community)에서 통합 돌봄 사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탈(脫)가족화', '탈(脫)시설화'가 핵심으로 이미 영국, 미국, 일본 등 주요 선진국에서는 이같은 서비스 체계를 운영 중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1월 20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지역사회 통합 돌봄(1단계 노인 커뮤니티케어) 기본계획'을 보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2019년 6월부터 2년간 선도사업을 실시해 노인, 장애인, 정신질환자 등 대상자별로 지역 여건에 맞는 다양한 커뮤니티케어 모델을 개발하는 등 커뮤니티케어 제공 기반을 단계적으로 구축해 2026년부터는 커뮤니티케어를 본격적으로 제공할 계획이다.

☞ NHS(국가보건서비스)
영국이 1948년 도입한 영국의 보건의료체계로 우리나라의 국민건강보험에 해당한다. 영국은 가입자가 건강보험료를 별도로 내는 게 아니라 100% 세금으로 운영돼 의료비를 국가가 모두 부담한다. 영국이 런던 올림픽 개막식에서 퍼포먼스를 선보일 정도로 자부심을 갖고 있는 제도다. 더 나은 의료 서비스를 받기 위해 민간 보험에 가입하는 사람도 있지만 국민의 90% 이상이 NHS 의료혜택에 의존한다.

☞ 영국의 노인 요양 체계
의학적 치료가 필요한 노인의 경우 의료 및 돌봄 비용을 NHS에서 모두 지불하는 게 원칙이다. 여러 질환을 앓고 있고 병원에서도 뾰족한 치료법이 없는 치료 마지막 단계에 이른 고령 환자가 요양시설로 가는 경우에도 NHS에서 비용을 모두 부담한다. 지역사회 도움에도 불구하고 홀로 자립할 수 없고 장기요양(돌봄)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단계에 이를 경우 민간 돌봄업자가 돌봄을 맡게된다. 민간시설은 노인의 재정 능력에 따라 노인이 직접 부담하나, 재정 능력이 없을 경우 지방정부에서 부담하게 된다. 개인이 원할 경우 본인이 비용을 부담해 민간시설을 이용할 수 있으나 비용이 1주에 600~700파운드(약 100만원), 치매가 있는 경우 1주에만 1000파운드(약 142만원) 이상으로 비싼 편이다.

☞영국의 의료 전달 체계
영국의 의료전달체계는 주치의(GP), 즉 일반의가 담당하는 '1차의료'와 전문의와 종합병원이 담당하는 '2차의료'로 구분된다. 모든 국민은 자신의 거주 지역 내 1차 진료 의사를 자신의 주치의로 등록해야 한다. 주치의는 약사, 지역간호사와 의견을 교류한다. 주치의(GP)는 독립된 개인사업자이지만 GP조직을 꾸려 NHS와 계약을 맺기 때문에 사실상 NHS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2차의료는 NHS소속 병원으로 우리나라의 종합병원에 해당한다. GP가 판단해 환자를 전문의가 있는 2차병원으로 보낸다. 병원은 NHS파운데이션트러스트에서 1년마다 예산을 받아 운영하며, 남은 예산은 병원 운영에 재투자할 수 있다. 영국에서는 병원과 약국 수, 거리 등에 대해서도 법령으로 정하고 있어 개인이 마음대로 병원·약국 등을 개설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