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3M은 1902년 창업 후 포스트잇, 스카치테이프 등 6만여종의 제품을 선보인 혁신 기업이다. 3M은 '고객을 위한 혁신'을 거듭하며 연간 300억달러(약 34조원) 이상의 매출과 20%가 넘는 영업이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은 1984년 한국3M에 말단 사원으로 입사, 한국인 최초로 미국 3M 본사 2인자인 수석부회장까지 지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는 '혁신의 종착점은 고객에게 이익이 갈 수 있는 혁신'이라는 철학을 갖고 글로벌 시장 공략에 앞장섰다. 2011년부터 2017년까지 해외사업부문을 총괄하던 시절 1년의 반 이상을 해외에서 보내며 전 세계 3M 고객을 만났다.

신 부회장은 남다른 추진력과 열정으로 다양한 제품, 다양한 고객, 다양한 시장을 직접 보고 체험하는 등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최고경영자(CEO)이기도 하다. 3M 재직시절 새벽 4시에 하루를 시작해 이메일과 세계 뉴스를 살피며 회사에 가장 먼저 출근하는 것을 고집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지난해 6월 취임 후 LG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수 있는 외부 인재 영입에 주력했다. 강한 LG, 혁신의 LG를 만들기 위해 '순혈주의'를 타파하고 조직 내 긴장감을 불어넣겠다는 포석이다. 재계 관계자는 "그동안 LG는 기업문화가 보수적이며, 내부 인재를 중용한다는 이미지가 강했다"면서 "구광모 회장 체제에서 외부 인재를 영입하는 것은 그룹의 컬러와 조직문화를 바꾸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 3M 출신 신학철, LG화학 CEO로…컨설턴트 출신 홍범식, (주)LG 경영전략팀장에

기업에서 외부 인재를 영입할 때 기대하는 것이 '메기효과'다. 메기 한마리를 수조에 넣어두면 다른 물고기들이 살아남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면서 더 건강해진다는 것이다. LG그룹 안팎에서는 지난해 새로 영입된 인재들이 올해 어떤 활약을 하느냐에 따라 메기효과의 성패가 갈릴 것으로 보고 있다.

구 회장은 그룹의 컨트롤타워인 (주)LG의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 홍범식 사장, 김형남 부사장, 김이경 상무를 데려왔다. (주)LG 경영전략팀장인 홍 사장은 글로벌 컨설팅 기업 베인앤드컴퍼니코리아 글로벌디렉터(대표) 출신으로 그룹의 사업 포트폴리오 전략을 담당한다. 디지털 환경과 4차 산업혁명이 가속화되는 시점에서 필요한 혁신 전략을 비롯해 성장 전략, 인수합병 등 다수의 프로젝트를 수행한 경험이 있다.

(주)LG 자동차부품팀장인 김형남 부사장은 LG그룹에 드문 자동차 업계 출신이다. 기아차·르노삼성·한국타이어 등을 거쳤으며 자동차 산업에 대한 통찰력과 글로벌 네트워크를 보유했다. LG가 육성중인 자동차부품 사업의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계열사간 시너지 효과를 높이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주)LG 인사팀 인재육성 담당 김이경 상무는 글로벌 제약회사 머크(MSD)의 해외법인에서 약 12년간 근무했다. LG에 필요한 글로벌 인재를 육성하는 역할을 맡았다.

LG전자는 보쉬코리아 영업총괄 상무 출신 은석현 전무를 VS(자동차부품)사업본부로 영입했다. 은 전무는 17년간 보쉬 본사, 한국·일본 지사에서 기술과 영업·마케팅을 담당했다. LG경제연구원은 ICT(정보통신기술) 산업정책 연구담당으로 박진원 전 SBS 논설위원을 전무로 데려왔다.

LG는 외부인재 영입에 대해 "글로벌 경쟁력과 전문성을 갖춘 인재 영입을 통해 새로운 시각에서 고객가치 달성에 필요한 역량을 채우기 위한 의지"라고 설명했다.

◇ 새로운 시각에서 고객가치 달성…긍정적인 변화 기대

LG는 구본무 회장 시절에도 외부에서 계열사 CEO를 영입해 효과를 본 적이 있다. 차석용 부회장은 2005년 LG생활건강의 구원투수로 등장, 코카콜라(2007년), 다이아몬드샘물(2009년), 더페이스샵(2010년), 바이올렛드림(2012년) 등 2007년 이후에만 18건의 인수합병(M&A)을 성사시켰다. '후'로 대표되는 한방 화장품 브랜드 고급화를 이끌어, 지난해 매출 2조원을 달성했다.

이상철 전 부회장은 2010년 LG텔레콤과 LG데이콤·파워콤이 하나로 통합해 출범할 당시, SK텔레콤, KT와 비교해 3세대(G) 통신서비스 시장에서 열세였던 LG유플러스가 4세대(LTE) 시장에서 반전을 모색할 수 있도록 이끌었다. 'LTE 전국망 구축'과 'LTE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 출시' 등으로 가입자 1000만명 돌파와 시장점유율 확대에 성공했다.

구광모 회장 취임 후 외부에서 영입된 인재들 역시 LG그룹에 긍정적인 변화와 혁신을 이끌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다. 그러나 과거 남용 전 부회장이 LG전자 CEO로 재임하던 시절 요직에 외국인 임원을 앉히고 지나치게 맥킨지(글로벌 컨설팅 기업)에 의존했다가 실패, 외부 인재에 대한 경계감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구 회장은 지난해 말 외부 인재 수혈을 추진하면서도 그룹 내에서 잔뼈가 굵은 '부회장단'을 유임했다. 재계에서는 조직에 긴장감을 불어넣을 수 있는 쇄신(외부충격)과 불확실성이 많은 경영환경에 대비한 안정을 추구한 것으로 보고 있다.

LG화학 CEO로 박진수 전 부회장 대신 신학철 부회장이 투입된 것을 제외하면 차석용(LG생활건강), 권영수((주)LG), 한상범(LG디스플레이), 조성진(LG전자), 하현회(LG유플러스) 등 부회장단 5인은 자리를 지켰다. 일각에서는 구 회장이 무리하게 세대교체를 밀어붙이는 것보단 일정기간 아버지(구본무 회장) 시대 CEO들과의 동거를 택한 것으로 해석한다.

하지만 LG디스플레이가 올 상반기에 적자를 냈고, LG전자도 스마트폰 사업이 계속 적자를 내고 있는 상황에서 CEO에게 책임을 물리지 않은 것은 다소 미온적이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구 회장은 2019년 임원인사에서 신규 임원인 상무 134명을 발탁했다. 2004년 GS 등과의 계열분리 이후 역대 최대 규모다. 신규 임원 수가 2017년(100명), 2018년(94명)보다 30~40% 많아졌다. 구광모 시대를 이끌 미래 인재들을 대거 발굴·육성한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재계 관계자는 "구광모 회장이 외부 인재 영입에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거 같다"면서 "LG그룹의 DNA를 바꾸고 혁신을 이끌 인재가 추가로 합류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