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상용화되는 5G(5세대 이동통신) 주도권을 놓고 미국 동맹과 중국 대표 통신장비 업체인 화웨이의 갈등이 점점 고조되고 있다. 미국·영국 정부는 국가 안보를 이유로 화웨이를 시장에서 퇴출해야 한다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이에 맞서 화웨이는 이사회 의장과 회장까지 연이어 전면에 나서면서 화웨이의 기술력과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실적을 과시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대동맥으로 불리는 5G 통신망을 중국에 넘겨주지 않으려는 미국과 테크 분야에서 확고한 주도권을 쥐려는 화웨이가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는 것이다.

◇미·영 "화웨이는 국가 안보에 위협", 화웨이 "세계 불공정해도 꿋꿋이 나아갈 것"

화웨이의 궈핑(郭平) 순환 회장은 지난 27일 화웨이 임직원들에게 보낸 신년 메시지에서 "해외 정부의 불공정한 대우에도 불구하고 올해 매출은 작년보다 21% 성장한 1090억달러(약 121조6100억원)에 달할 것"이라며 "적대적인 일에도 낙담하지 말고 글로벌 리더십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궈 회장은 또 "화웨이가 없는 5G 시장은 스타 선수가 없는 NBA(미국 프로농구) 경기처럼 경쟁력을 잃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에 앞서 지난 25일 화웨이의 량화(梁華) 이사회 의장도 "서방으로부터 신뢰성을 의심받고 있는 상황에서도 올해 26건의 5G 장비 공급 계약을 맺는 성과를 냈다"고 말했다. 지난 1일 멍완저우 CFO(최고재무책임자)가 체포된 이후에도 4건의 계약을 추가로 맺었다는 것이다. 량 의장은 "향후 5년간 20억달러를 보안 기술 개발에 투자하겠다"고 밝히며 미국·영국이 제기하는 보안성 문제를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미국·영국의 압박 수위도 높아지고 있다. 영국의 개빈 윌리엄슨 국방장관은 지난 26일(현지 시각) "화웨이가 영국의 통신망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면밀히 들여다보고 있다"며 "중국이 때때로 악의적인 행동을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은 화웨이를 미국 전역에서 완전히 퇴출시킬 방안을 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통신은 27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내년 초 국가 안보에 위협을 제기하는 화웨이와 ZTE의 통신장비를 정부와 민간 기업들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을 발표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동맹국인 호주·뉴질랜드 정부는 화웨이를 5G망 구축 사업에서 배제하기로 했다. 주요 통신 업체들도 눈치 보기에 나섰다. 화웨이와 오랫동안 협력해왔던 독일의 도이치텔레콤, 일본의 소프트뱅크, 프랑스의 오랑주텔레콤은 "화웨이 장비 사용을 재검토하고 당분간 도입을 보류하겠다"고 밝혔다.

◇화웨이, 세계 통신장비 시장 석권… 5G 기술 경쟁력도 선두

하지만 통신 업계에서는 화웨이가 세계 통신장비 시장에서 갖고 있는 영향력을 감안했을 때 5G망 구축에서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본다. 미국의 시장조사 업체인 델오로그룹에 따르면 화웨이는 올 3분기 세계 통신장비 시장(유·무선 통합)에서 28%의 점유율을 기록해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화웨이는 세계 170여 국에서 독일 도이치텔레콤, 영국 보다폰, 스페인 텔레포니카 등 120여 통신 업체와 손잡고 20억명 이상에게 통신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이 같은 영향력을 바탕으로 화웨이는 5G 기술 개발도 주도하고 있다. 이미 세계 50여개 파트너사와 기술 제휴를 맺고 26건의 5G용 장비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통신 업계에서는 화웨이의 5G 장비 기술이 에릭슨·노키아·삼성전자 등과 비교했을 때 최소 3개월 이상 앞서 있다고 본다.

여기에 기존 LTE(4세대 이동통신)와 5G의 호환성 문제를 감안하면 화웨이 장비 배제는 더욱 어려워진다. LTE에서 5G로 전환할 때 장비 공급사가 달라지면 망 연결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별도 소프트웨어와 운영 기술을 개발해 적용해야 하는데 상당한 비용과 시간이 소요된다. 통신 업계 관계자는 "현재 미·중 무역전쟁의 여파로 주요 통신 업체들이 화웨이 장비 도입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지만, 두 나라 간 갈등이 봉합되면 다시 입장을 바꿀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