므누신 美재무장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감사와 축복의 날이어야 할 크리스마스를 세계 증시 악몽의 날로 만들었다. 크리스마스이브인 24일(현지 시각) 다우존스,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 나스닥 등 뉴욕 증시 3대 지수가 모두 3% 가까이 급락하자, 이튿날 개장한 일본 증시는 5% 넘게 폭락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크리스마스 연휴가 시작되는 12월에는 대체로 뉴욕 증시가 상승하기 마련인데, 이처럼 한꺼번에 증시가 내려간 것은 1931년 이후 87년 만에 처음"이라고 보도했다. 다우지수는 최근 20일 동안 16% 미끄러졌다.

미국 언론들은 세계 증시에 '공포의 성탄절'을 몰고 온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라고 분석한다. 며칠 사이 트럼프 대통령은 시장에 여러 개의 폭탄을 던졌다. 지난 20일에는 연방정부 셧다운(shutdown·일시적 업무정지)을 예고했다. 중남미 이민자를 막기 위한 국경 장벽 건설 예산 57억달러(약 6조4000억원)가 내년 예산안에 반영되지 않자 합의를 거부해 버렸다.

셧다운보다 더 큰 폭탄은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에 대한 공격이다. 블룸버그통신은 21일 트럼프가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을 해임하는 방안을 검토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의 공개적인 반대에도 연준이 지난 19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하자 아예 해임하는 방안을 모색했다는 것이다. 연준은 미국 경제뿐 아니라 세계경제의 균형추 역할을 한다. 미 연준 의장을 '세계경제 대통령'이라고도 부른다. 대통령이 마음대로 연준 의장을 자를 수 있다면 연준 통화정책의 신뢰도는 급격하게 무너질 수 있다. 정치권력이 연준을 뒤흔들 수 있다는 불안감에 시장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경제 매체 CNBC는 "월스트리트(시장)가 워싱턴(정치권)을 보고 겁에 질렸다"고 보도했다. 블룸버그는 "백악관발(發) 혼란이 투자자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고 했다.

민감한 시장의 반응에 뒤늦게 트럼프 참모들이 진화에 나섰다. 믹 멀베이니 예산국장은 23일 ABC에 출연해 "대통령은 연준 의장을 해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제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발언도 해임 논의를 한 것은 사실이라는 인상을 줘 불안감을 잠재우진 못했다.

여기에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은 23일 주요 6개 은행 최고 경영자들과 전화로 시장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논의를 한 것이 오히려 더 큰 폭탄이 됐다. 므누신은 통화 이후 "주요 은행이 개인과 기업에 대한 대출은 물론 다른 시장 운영을 위한 충분한 유동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시장은 이 내용을 전혀 다르게 받아들였다. CNN은 "시장 참여자들은 재무장관이 은행 CEO들과 통화할 정도로 은행의 건전성을 우려해야 하는 상황인지 의심하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월간 애틀랜틱은 골드만삭스 CEO 출신인 금융 전문가 므누신이 증시를 더욱 불안하게 한 행동을 한 것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이 있었거나, 핵심 인사이더만이 아는 또 다른 시장 악재(惡材)가 있을 수 있다는 해석을 제시했다.

므누신은 이어 24일 콘퍼런스콜 방식으로 '금융시장에 대한 대통령 워킹그룹'을 소집했다. 워킹그룹은 월스트리트에서 주가가 하루 만에 22.6%나 빠진 1987년 '블랙 먼데이' 직후, 워싱턴 정계와 월스트리트 금융권의 밀접한 조율이 필요하다는 취지에 따라 출범했는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이후로는 소집되지 않았었다. 워킹그룹 소집은 "당국이 개입할 정도로 문제가 심각하다"는 시그널을 전달하는 역효과를 낳았다고 금융권과 언론들은 분석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트럼프는 연일 '연준 때리기'를 하고 있다. 그는 24일 트위터에서 '우리 경제의 유일한 문제는 연준'이라고 했다. 또 '그들(연준)은 시장에 대한 감각도 없고, 강한 달러의 필요성을 이해하지 못한다. 연준은 장타를 날리지만, 퍼팅을 못해 스코어가 나쁜, 힘만 센 골퍼와 같다'고 했다. 이 트윗이 나온 후 뉴욕 증시는 하락폭을 더 키웠다. CBS는 경제분석기관 옥스퍼드 이코노믹스의 투자자 노트를 인용해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파월 의장을 해임하려 한다면, 금융 시장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극심한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했다.

☞금융시장에 대한 대통령 워킹그룹(Working Group on Financial Markets)

1987년 10월 증시 대폭락을 겪은 후 로널드 레이건 당시 대통령 행정명령으로 만들어진 회의체. 미국 금융시장의 위험 요인을 점검하고 대책을 조율하는 목적이다. 미 재무부, 연준, 증권거래위원회(SEC), 통화감독청(OCC),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등이 참여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이 회의체가 상시 운영됐다. 금융시장에서는 흔히 '폭락 방지팀'이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