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후 서울 중구의 한 중식당. 대기업과 백화점 사이에 있는 이곳의 저녁 예약은 1건에 불과했다. 점심 시간에도 1층 테이블에서 식사하는 손님 몇 명만 오갔을 뿐, 2∼3층 룸은 텅 비었다. 식당 주인 정모(35)씨는 "작년 연말에는 하루에 저녁 예약만 12∼15개씩 있었는데 올해는 10분의 1 수준"이라며 "매출이 작년보다 30% 넘게 준 데다 최저임금까지 올라 종업원 1명을 줄였다"고 말했다. 정씨는 "내년에 또 최저임금이 오르면 3대(代)째 이어온 가게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302만 곳에 달하는 한국 소상공인 업체들이 연이은 최저임금 상승으로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경기 침체로 매출이 계속 줄어드는 가운데 최저임금은 올해 16.4% 오른 데 이어 내년 1월 다시 10.9% 상승하면서 자영업자들의 생계에 직격탄을 날리고 있는 것이다. 자영업자들은 "올해 최저임금 상승으로 한계에 내몰린 상황"이라며 "다음 달부터 어떻게 생계를 꾸려나가야 할지 앞이 캄캄하다"고 말한다.
◇"버는 돈은 줄고, 쓰는 돈은 늘어… 장사 접어야 할 판"
21일 소상공인연합회의 최저임금 실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 대상인 소상공인 업체 1204곳의 평균 월 매출은 1560만원이었다. 이 중 57.2%는 월 매출이 1000만원 이하다. 이들 중 상당수는 매월 손에 쥐는 돈이 200만원도 채 넘지 못한다. 수익이 급감하면서 다음 달 최저임금이 또 인상되면 사업을 접겠다는 소상공인이 속출하고 있다. 강원도 강릉에서 편의점 두 곳을 운영하는 황모(35)씨는 "올해 말 계약이 끝나면 점포 하나는 정리할 것"이라며 "점포당 월 매출은 600만∼700만원 수준인데, 매달 600만원 가까이 되는 아르바이트생 인건비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고 말했다. 황씨는 나머지 한 곳에서도 아르바이트생을 내보내고 남편과 본인, 친정어머니가 각각 12시간, 6시간, 6시간씩 나눠 운영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이익은 줄고 고용 규모를 줄이는 자영업자도 늘고 있다. 소상공인연합회에 따르면 유급 종업원을 고용한 업체 683곳 중 '월평균 인건비가 늘었다'고 응답한 비율은 59%였다. 월평균 인건비 상승액은 36만7000원이었다. 또 응답자의 54.2%가 '올해 영업이익이 전년보다 줄어들 것'이라고 답했다. 이들이 예상하는 평균 영업이익 감소액은 1891만원에 달했다. 서울 마포구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김모씨는 "올해 월평균 소득이 250만원도 안 됐는데, 최저임금이 더 올라가면 아르바이트생들에게 줘야 하는 비용만 최소 50만원은 더 늘어날 것"이라며 "더 심각해지면 아르바이트생들은 내보내고 혼자 운영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제대로 된 실태조사 공개는 처음… 준비 없는 최저임금 인상
소상공인 업계에서는 최저임금 인상이 소상공인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보고서가 이제서야 나왔다는 점에 대해서도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작년부터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예정돼 있었지만 첫 실태조사 보고서가 올 12월에 공개된 것이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작년 4억원을 투입해 소상공인 업체 1만여 곳을 대상으로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실태 조사를 단행했지만 이를 공개하지 않아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중기부가 조사 결과를 은폐했다는 논란을 빚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11일 고용노동부 업무보고 자리에서야 실태 조사를 지시했다. 문 대통령은 "현장에서 체감해보니 최저임금 인상 속도가 너무 빠른가요"라며 "(최저임금 때문에) 실직한 일용직들을 실제로 면접 조사해본다든지 하는 방법으로 그 원인이 뭔지, 한번 제대로 정확히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소상공인과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정부가 대통령 공약을 지키겠다는 의지만 갖고 제대로 된 공론화 과정도 없이 무리하게 최저임금 인상을 추진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정원석 소상공인연합회 본부장은 "최저임금 인상과 관련해 피고용인 입장에서의 조사만 진행됐다"며 "이렇다 보니 영세한 소상공인들의 피해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대 이정희 교수는 "정부에서 정책을 만들 때는 파급 효과를 미리 추정하고, 이를 보완할 대책을 함께 마련하는 것이 기본"이라며 "최저임금 인상은 이런 과정 없이 진행돼 후폭풍이 컸다"고 말했다.